"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나는 이런 계획이 있어."
길었던 고민의 시간만큼 말을 고르고 골라 내뱉었다.
"그렇군요."
"재밌네."
너도나도 여기서도 저기서도 부르짖는 소통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되는 건 그런 찰나의 순간이다. 그 순간에는 상대에게 상처 받지만 좀 지나고보면 나의 많은 대화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된다. 나도 같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도.
소통, 공감, 이해는 불가능하다. 어떤 것을 인식하는 건 1+1=2와 같은 체계가 아니다. 누군가가 어떤 산황에서 판단을 내리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거창하게 말해서 그가 살아온 시간의 총체이며, 알고 있는 것의 총합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삶을, 그의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과 이해, 공감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아는 체하는 수많은 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이 상처받아왔는지, 지레짐작으로 타인을 재단하며 상처를 주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나보다 더 유능한 이들의 글을 빌린다. 김연수는 썼다. 나는 네가 하는 말들도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소라가 노래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사랑뿐만인가. 인생은 비극이다. 그대는 내가 아니고 나는 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는 요원하다.
인정하자.
죽을 때까지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슬그머니 하나 더 인정해본다.
죽을 때까지 나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랑과 연민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고.
당신의 눈물과 똑같은 의미의 눈물은
흘리지 못해도 당신의 눈물 때문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