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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토르 Mar 12. 2017

비관적 낙관주의

글을 쓸 때 나는 나를 꽁꽁 숨기는 편이다. 내 진솔한 생각보다 권위적인 무언가에 기대곤 한다. 그러니 옆 매거진인 '드라마처럼 살아라'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드라마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부끄러워서 혹은 비판이 두려워서, 확신이 없어서. 무엇 때문이든 결국 내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단단하지 못한 내가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깨어난 작가의 포스를 찾는다는 글귀에는 속절없이 가슴이 뛴다. 이번에는 좀 더 내 글을 써보려한다. 아는 척, 있는 척, 해본 척 등을 하며 시덥잖은 글을 쓸 수도 있고, 어쩌다 한 문장 정도는 누군가가 공감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시시 때때로 변해서, 나의 생각을 글자로 옮겨둔다는 것이 겁나지만, 지금의 생각이 훗날의 반성거리가 된다고 해도 나는 써보려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세상은 엉망이라 생각하고, 내가 온전히 이해받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비관주의자이다. 타인의 충고와 조언에 고마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니가 뭘 알아'라고 발끈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를 수백번도 더 되뇌인다. 물론 그것을 겉으로 표내지는 않는, 제법 그럴 듯한 처세술을 갈고 닦으며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러나 또한 나는 퇴근 후 사람들과의 맥주 한 잔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드라마 속 삶을 보며 눈물 지으며, 그들이 부르짖는 가치에 동감하고, 촛불에 가슴이 뜨거워져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고도 믿는 낙관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매거진과 첫글의 제목을, 아주 거창하게 비관적 낙관주의라 명명했다. 혹 누군가 이 제목 때문에 여기에 그 이름도 유명한 철학자들이 등장할 것이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철학은 아는 척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지랭이인 내가 감히 조금 철학적인 단어를 선택한 것에 양해를 구한다.


엉망진창인 세상과 선택권 없이 고독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비관하지만, 그 때문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비결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한 주는 무사히, 한 달은 별탈 없이, 일년을 평탄하게 사는 것이 나의 작은 꿈이고, 그 평탄함 속에서 내가 평탄하지 않은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꽤 성공한 삶이겠다 생각한다.


이제 겨우 3주 남은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이제사 시작하면서, 결코 15편의 글을 완성할 수 없으리라 비관하지만,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 돌아올테니 기회는 또 있으리라 낙관하면서, 당선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어두고,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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