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산타클로스를 몰라요"
크리스마스 전후, 그러니까 24일과 26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모두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당연히)
(그룹A)현실파
"내 친구가 엄마 아빠가 선물 숨기는 거 봤다는데?"
"내 친구는 밤에 실눈 뜨고 봤대. 엄마아빠가 방에 들어와서 선물 두고 나가는 거"
"야 아직도 몰랐냐? 엄마아빠가 산타야"
(그룹B)순수파
"아니야. 내가 창문 열고 산타가 들어온 거 봤다고"
보통 3~4학년이 되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산타의 기적이 깨지는 시점이다. 나도 이때쯤 산타의 진실을 알았던 것 같다. 학교 반 친구들에 의해.
문제가 있었다. 나는 산타를 모르는 척해야 했다. 왜냐고? 그걸 왜 물어?
당연히 선물 때문이지.
우리 집엔 나와 나보다 3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당연히 산타를 굳게 믿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동생은 선물을 받을 게 확실했다.
내가 문제였다. 산타클로스의 진실을 안 이상, 나는 산타 선물을 마음 편히 받을 수 없었다.
이 시즌이면 텔레비전에서도 불편한 주제가 오갔다. 어른들이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를 언급하곤 했으니까. 엄마 아빠랑 텔레비전을 보다가 산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스레 내가 더 뜨끔했다.
대략 1999년 2000년 당시의 기억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바보 같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유한다.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고, 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런 분명 비슷한 기억이 있을 테니까. (당신의 기억도 댓글에 남겨주면 고맙겠다. 그냥 궁금해서)
(어느 12월 중순 저녁) 엄마는 이제 내가 산타의 진실을 깨달은 걸 안 것 같았다. 엄마는 거실 옆 부엌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었고, 나는 거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엄: (저 멀리 세탁기 앞에서 젖은 빨래를 꺼내면서) "올해부터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동생만 받아야겠지?"
나: "왜?"
엄: "이제 다 컸잖아~(등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음. 엄마 입으로 산타가 본인이라는 이야기는 안 했음. 마지막 남은 동심을 지켜주려는 거였을까)"
나: (엄마가 이제 내 실체를 알아버렸음. 이제 선물 못 받을 각이 나옴. 짜증 나서 앉은뱅이책상 밑에 누워버림)
나: "아 왜? 산타클로스는 있잖아~"(이때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음. 산타클로스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음.
이유 1. 내가 성장하고 어린이 티를 벗으면서 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선물 등)이 줄어드는 게 싫었고
이유 2. 산타의 존재를 모르는 척한 영악한 어린이 었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되는 게 싫었음. 엄마는 이미 알았을 테지만.
난 한참을 떼를 쓰는 투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지나치게 긍정했다. 그리 기분 좋은 기억은 아니다. 눈물도 찔끔 흘렸다. 선물을 못 받는 것, 그리고 엄마가 나를 훤히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그 크리스마스에는 선물 같지 않은 산타선물을 받았다. 엄마 아빠는 항상 폴리 포켓 같이 특별하고 눈이 돌아갈만한 선물을 줬기에 이번 선물은 일부러 대충 고른 선물이라는 게 티가 났다.
평범한 곰인형이었다. 산타클로스가 나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였다. 크리스마스 아침 난 깨달았다. 이 선물이 마지막 선물이 되리라는 걸.
그 해 이후로 동생은 한두 해 더 산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산타클로스는 우리 자매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좋았던 점은, 더 이상 산타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시 편하고 기쁜 날이 됐다.
10살 무렵의 크리스마스는 불편했다. 되돌아간다면 좀 더 부드럽고 어른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