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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Aug 17. 2016

하루키를 만난 저는 '이렇게' 행복합니다

내향인의 무한 매력

"야, 저거 엄청 야한 책이래!"

"야 너 봤어?"

"아니. 근데 진짜 야하대!"


중학교 때였을거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 '해변의 카프카'가 엄청난 인기를 끌 시기였나 보다. 학교 도서관에도 이 책이 꽂혀 있었다. 아이들은 '야한 책'이라고 수군댔다.


당시 지하철에서 이 책 읽는 남자를 봤다. '야한거라 역시? 공개된 장소에서 용감한데'라는 생각이 쓱 지나갔다.


읽었냐고? 그때는 아니고 작년에 읽었다. '야하다'는 소문을 들었던 중학교 때는 차마 이 책을 손에 집지도, 도서관에서 눈길 하나 보내지도 못했다. 


2015년. 하루키를 좋아하고, (한 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 그를 신뢰하게 됐다. 그의 작품 스타일에도 어느새 익숙해졌고, 이 책에도 저절로 손이 갔다.


'야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왜 10대 청소년들 입에도 이 작품이 오르내렸는지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포르노는 절대 아니었다.


내향적인 한 남자를 만났다. 재즈를 신나게 좋아한다. 요리 솜씨도 제법이(겠지)다. 옛날에 재즈카페를 운영했거든. 말주변은 없다. 사람 만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운동파다. 달리기는 그의 일상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아, 결혼을 일찍 했다. 또 뭐가 있더라...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내 우울 인생은 그를 만나고 종을 댕~대앵~ 쳤다. '왜 나는...?'이라는 비관적인 질문에 그는 덤덤한 때로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내게 답을 던졌다. 


넌 참 매력적인 아이야. 이걸 한번 봐봐


그는 평범해 보이는 내향인을 주인공 삼아 다양한 이야기를 써낸다. 최근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도 이런 사람이다. 


쓰쿠루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간형이다. 30대 직장인. 결혼은 아직. 뭐 하나 특출난 건 없다. 특이점이 뭐가 있으려나... 이렇게 머리를 쥐어짜 봤자 생각나는 특징은 딱히 없다.


쓰쿠루는 상처를 품은 인간이다. 내향인은 대체로 문제점을 남과 잘 나누지 못해 상처를 오래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도 이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쓰쿠루는 마음 문제를 해결한다. 이 생각많은 내향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오래 고민했다. 여자 친구 조언이 그의 고민에 날개를 달았다. 이때부터 내향인 쓰쿠루의 진면목이 발휘했다. 


내향인은 '해야겠다 싶은 건' 반드시 해내는 뚝심을 가졌다. 내향인의 매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왜 나는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이 많을까...'

'왜 난 이렇게 진지하기만 하지...'

'왜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마음이 불편할까...'


이 고민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혔다. 세상은 외향인에겐 천국이었다. 내향인은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다. 루저였다.


어른들은 내향인을 답답해했다. "수연아, ㅇㅇㅇ(외향적인 그 어떤 것들) 게 해야지. 그러면 안돼"라고 나를 다그치곤 했다.


하지만 '내향인의 아이돌' 하루키를 만나게 되면서, 내 특성, 고민들은 곧 자랑으로 변했다. 나는 고민이 많아 인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내 진지함은 글쓰기에 유리하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는 누구보다 빼어나다. 나는 참 괜찮은 내향인이다. 하하.

하루키는 작품에 요리하는 장면을 자주 삽입한다. 요리는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고 천대하던 나는, 최근 작은 손을 꼼지락대며 무언가를 만드는 데 푹 빠졌다. 


여름이니까, 아이스커피다. 


모카포트에 곱게 간 커피가루와 물을 넣는다. 5-10분 약한 불에서 끓이면 에스프레소가 작은 주전자에 송송 모인다. 모인 에스프레소를 얼음잔에 조르륵 따르면 입에서부터 털구멍까지 온몸에 냉기가 도는 아이스커피 완성. 머리가 쨍-해지는 건 덤이다.


하루키는 일상의 즐거움도 덤으로 줬다. 그는 내가 행복해졌단 걸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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