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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Aug 10. 2016

2016년 폭염, 망할 누진세

급기야는 방바닥에 물을 흥건히 쳐발랐다.

여름 사랑녀

여름아 사랑해


내가 열심히 미는 별명이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특히나 사랑한다. 더위?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에어컨 바람이 여름철 문제점이라고나 할까.


각종 SNS에 나는 "여름아 사랑해"를 외치고 다녔다. 뭔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는 나는 '여름이라도 좋아한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용도로도 썼다. 아무튼 나는 여름을 열렬히 사모한다. 사모해왔다. 2016년 8월 전까지는.


'여름? 나도 좋아'

내 친구 연아 킴. 90년 가을 출생, 고대 09동기, 부천 출신, 몸무게 간신히 40kg대...여기까지가 우리의 어마어마한 공통점 임뉘다. 아! 그리고 앞머리 없음


다음 달 추석 송편 찜통을 예고한 건지, 2016년 8월 찜통더위가 찾아왔다. 아침에도 거실 온도는 30도를 웃돌았다. 바람은 또 왜 이리 안 부는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초강력 태풍 생각이 차라리 간절했다.

와, dog시원


2015년도 아니고 2017년도 아닌, 하필이면 2016년도 8월에 사람 2명이 집에 상주하고 있다. 25세 권모 씨(여), 낼모레 환갑인 권모 씨(남)이다. 권 씨(25)는 취준생, 또 다른 권 씨(50대 후반)는 반복되는 병치레로 지겨운 요양생활 중이다. 가정경제 중추가 돼야 할 사람 둘이 집에 틀어박혀있으니,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에어컨 전원 버튼에는 눈길조차 두지 못한다. 눈에 들어오면 켜고 싶어지잖아.


가장 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각인 오후 2시. 방 온도는 33도까지 올라간다. 33이라는 숫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 참았냐가 중요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 장장 5시간을 참고 또 인내했다. 각자 방에서 헥헥거리며 순간순간을 이겨낼 뿐이다.


권 씨(25)는 방에서 책을 읽었다. 짙게 내린 아이스커피는 30분도 안 돼 다 녹았다. 뭐 어쩌겠나. 미지근해지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혹시 거실은 시원할까? 답이 뻔한 물음을 가지고 방에서 나왔다. 식탁 의자에 털썩 앉은, 아빠 뒷모습이 보였다. 2년 전에는 대장암 4기, 2달 전에는 뇌졸중과 사투를 벌인 용사다. 그의 뒷목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뇌졸중 후유증에다가 찜통더위까지, 싸울 거리가 늘어난 그의 뒷모습은 처절했다. 더위를 잊으려 TV를 본다.



"에라이, 망할 누진세 누진세 누진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화낼 대상이 마땅치 않은 게 더 화가 났다. 한전이나 정부에 소송을 건다? 바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돈을 벌어와서 열심히 틀자? 어휴. 그게 맘대로 됩니까.


세탁실에서 대야를 들어 물을 담았다. 대야를 방에 가져와 바닥에 던졌다.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물을 얇게 펴 발랐다. 손바닥에 닿는 방바닥이 뜨끈뜨끈하다.


방바닥을 훔치면서 자연스레 터져 나왔다.

'미쳤네...'

쉐낏쉐낏


미친 짓에도 열기는 그대로였다. 권 씨 두 명은 밖에 나가기로 했다. 어린 권 씨는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자소서도 쓰려고 했으나 더워서 실패. 나이 든 권 씨는 몸을 움직이고, 언어훈련도 하며 자가 재활에 도전했으나 더워서 실패다.


동네 뒷산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열기, 습기에 풀벌레까지 까맣게 달라붙으니 탈출구가 없다. 차라리 이동 중 차 에어컨 바람에 숨통 트인다.

귀신보다 무서운게 더위라지요


저녁 6시.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기온은 33도.

햐.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하는 수 없이 에어컨 버튼을 꾹 눌렀다. 시멘트 벽까지 훈훈하게 달아오른 집은 쉽사리 시원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젠 책 글씨가 눈에 들어올 정도 여유는 생겼다.


이렇게 밤 11시까지 껐다, 켰다,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아픈 아빠에게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미안할 뿐이다. 에어컨을 트는 밤은, 아빠가 가장 쌩쌩한 시간이다.



"무슨 계절이 좋아?"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어온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여름'이다. 하지만 이젠 수식어가 붙는다.

"나? 초여름"(여름사랑. 참 징하다. 날씨는 여름탓이 아니잖아)


전 이제 한여름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어요. (왜 말이바뀌어 이눔아)



올해가 가기까지 수입원을 확정 지으리라. 내년 여름 아빠에게 틀어줄 '에어컨 적금'을 들어야 한다.

살려야 한다. 나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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