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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Aug 09. 2016

수줍은 어린이를 이해해 보시겠어요?

1997년 3월 2일, 1학년 3반입니다!

코에 스치는 바람이 아직 매섭다. 울타리에 빙 둘러있는 키 작은 나무들은 처량하리만큼 앙상하다. 오늘은 2일, 유치원 선생님이 보고 싶은 아침이다.


"똑똑한 우리 수연이, 학교 가서도 잘할 수 있지요? 졸업 축하해 수연아" 지지난 주, 자그만 꽃다발을 들고 나는 3년간 몸담았던 유치원을 뒤로했다. 수연 어린이는 재능발표회마다 눈물을 꾹 삼켰다. 사람들 앞에 나서면 왜 이렇게 눈물이 차오르는지. 큰 찹쌀떡이 턱 걸린 듯 목구멍이 얼얼하곤 했다.


어린이가 더 큰 세상에 나왔다. 한 학년에 3반이 있는, 바닷가 동네 학교다.

여기가 학굔가요


운동장에 나란히 줄지어 섰다. 운동장 옆 어시장 비린내가 바람에 실려 건너온다.


뜅.땅.땅.띠띠. 땅.띠.띠.떼떼!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츠응성을 다할 거슬 구께 다지맙니다!


교장선생님이 연회색 구령대 위에 올라왔다. 키가 엄마보다 큰 6학년 말총머리 언니도 올라와 뭔가를 한다. "뜉뛭뛭 그래서 똫뛧뛧. 축하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멍청했나.


(엄마... 엄마 어디야)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여기서 나는 고아나 다름없다. 집이 코앞 14층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멍든 것 같이 얼얼하다.

(엄마) 집에가지마 베베~


"자~ 1학년 3반 어린이들!"

"네엡!"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1층 교실로 들어갈게요~ 잘 따라오세요"

"네~~"


신발주머니 손잡이를 꽉 잡아쥐었다. 1층 맨 끝에 있는 교실이 3반이란다. 건물 입구는 꿀꺽꿀꺽 아이들을 집어삼켰다. 이젠 내 차례였다.

학교 노잼

"엄마~ 엄마아"

엄마가 안 보인다.


"엄마! 엄마!!!!!!!"

"엄마 나 배 아파..."


엄마 손을 낚아챘다. 그렇게 내 '학교 체험' 첫날은 끝이 났다. 집은 신호등 건너 2분 거리였다. 집에 일찍 들어와서는 전화기를 쳐다봤다. 혹시 선생님이 집에 전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럼 뭐라고 얘기하지. 구토도 안 하고, 약도 먹은 건 없는데. 그냥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인데. 거짓말... 이었는데. 선생님이 내일 말 시키면 어떡하지)



사실 학교는, 친구들이랑 노는 곳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입학은 두려웠다. 새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앞으로 나는 친구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지, 저 불안한 눈빛들과 내 수줍은 눈빛은 섞일 수 있을지.


내 의지가 제한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화장실 문제가 제일 컸다.


학교생활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학교와 연을 끊고 한참 뒤에나 깨달을 수 있었다. 공부만 하려 했던 나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 생활은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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