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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Aug 08. 2016

어린이 놀래킨 오징어아저씨

울고 싶었다

시커먼 밤. 남자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함 사세요~ 함 사세요!!!!!"


(뭔 일 생겼나)

얼른 중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와 창문을 내다봤다. 시뻘건 등을 든 아저씨 무리다. 퇴근 뒤 한잔 한듯한 차림새. 양복 재킷은 간데없고, 와이셔츠 단추는 헤벌레 하다. 한 아저씨는 빨강 파랑 스트라이프 넥타이로 머리를 쨍긋 둘렀다.


"아이스크림 사러 마트나 갔다 올까?" 아빠다. 이건 분명 구경하고 싶어서 나가는 거다. 왜 이런 kukyung을 좋아하는지 참. 알 수 없는 어른이다. 오지랖에는 김흥국 아저씨 저리 가라다.


"어, 가자" 저런 분위기 난 싫다. 하지만 아빠가 괜히 싸움에 말려드는 게 더 싫다. 오지랖 넓은 아빠는 저 아저씨들한테 말 걸다가 괜히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안 나가면 아빠 혼자라도 나간다. 나는 장녀다. 아빠를 지켜야 한다. 반드시 말려야 한다.

뻥튀기 가면이라면 귀여울텐데, 왜 하필 징그러운 오징어야 ㅠㅠ, MBC



아파트를 빙 돌아 나왔다. 아저씨 무리가 저기 보인다. 아줌마들도 합세했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뭐라 뭐라 승강이를 벌인다. 싸움이 났다.


"아니, 저기요! 한걸음만 더 오시라고요"

"5만 원에 한걸음입니다. 더는 못 갑니다"(털썩 누워버림)


날강도다. 이건 생 깡패다. 이런 수법으로 순진한 여자들에게 돈을 뜯어온 게 분명하다. 이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술까지 멕인다. 여자들은 한껏 꾸미고 나왔다. 한 여자는 손가방을 들었다. 건달 앞에서 말이다.


가운데 아저씨는 끌려온 듯한 모습이다. 얼굴에는 괴상한 오징어 가면을 쓰고, 거북이 등딱지 같은 상자를 멨다. 비실비실 걷는다. 잘 걷지도 못한다. 주변 아저씨들은 오징어 아저씨를 옹호하면서 부추긴다. 얌마. 더 가지 말라고.

flickr


"자 이거 한잔 받으시고"

"어머, 조금만 따르세욧! 아아 조금만요"


술 취한 아저씨들은 마음이 시꺼멓다.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봐야겠다. 사건이 터질지도 모르니.


피해자 아줌마들은 아저씨들 수법에 이미 반쯤 홀린 상태다. 아줌마들 목소리도 커졌다. 아저씨랑 싸우면서도 웃는다. 술기운이 올랐다.



(싱글벙글. 생글벙그르르)

아빠, 왜 웃어? 아빠는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아빠가 이해가 안 된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쯧쯧. 어른이 되면 불법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왜 이런 난리통에 경찰은 안 오는지 모르겠다.



"아빠 빨리 가자. 아 빨리이!!"


안 되겠다. 여기 더 있다가는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꿈에 나올지도 모른다. 아빠 손을 잡아끌었다. 아빠 손에서는 고약한 담배냄새가 났다.


"엄마가 빨리 오랬어! 나 내일 학교 가야 된다고"


엄마 핑계를 대며 와락 겁을 줬다. 그제서야 아빠는 쓰레빠를 질질 끈다. "그래 가자" 아빠는 왜 아쉬워할까. 빨리 아침이나 와라.






한 번쯤 기록하고 싶었어요. 어린 눈으로 봤을 때는 무서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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