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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Sep 17. 2016

어차피 망한 인생, 즐기면서 사는 법

SWAG

"난 너랑 결혼할 거야"

"왜?"

"다른 사람 만나기 귀찮으니까. 언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아가나... 까마득하잖아"

"응? 나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다.


난 정말 그러고 싶었다. 상대 말대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다. 귀찮기도 했고. 여러 가지 결점이 있었음에도 현상유지가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에 이르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는 우르르 무너졌다.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건강마저 잃었다. 가장이라는 기둥에 균열 난 우리 가족은 휘청댔다.


가장 맥 빠진 사람은 나였다. '취직-결혼-출산'이라는 견고한 계획을 세워두고, 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였다. 내가 꿈꿨던 결혼 나이는 스물여섯이었고, 당시 나는 스물다섯.


결과는 이랬다.

취직: 대학원 1학기 한 뒤 우울증에 집에 처박힘
결혼: 할 사람 없어짐
출산: ?

-25살 중간정산 결과


12월 마지막 수업. 학교도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학교에만 들어서면 나쁜 기억들이 샘솟았다. 복학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이 조여왔다. 그때는 이렇게 내 인생은 끝이 나나보다 했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식은땀이 났다. 42kg. 건강체중으로 살이 오르는 게 목표일 때였다.


쥐고 있던 욕심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앞이 깜깜했던 2014년 5월. 그리고 2016년 9월. 벌써 두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대학원은 그만뒀으며, 아빠는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은 건강하다. 쥐고 있던 욕심들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아지는 데까지는 두 단계를 거쳤다.


1. 삶 포기하기(2014년 12월 - 2016년 5월)


14년 12월, 학교를 그만두고 마음 회복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노력 대부분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있었다. 계속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봤다. 놀고 싶을 때 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책 읽고 싶을 때 읽고, 누워서 유튜브 보고 싶으면 그렇게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젠 뭔가를 해야겠다! 는 생각도 찾아왔다. 이상하지. 아무튼 그래서 3월부터는 자소서를 막 썼다. 일산 암센터에서 아빠를 간호하며 썼던 자소서가 덜커덕 붙어 1차 면접, 2차 면접, 합격까지 갔다. 그렇게 내 첫 회사생활은 시작됐다.


일은 재밌었고, 잘한다는 소리도 곧잘 들었다. 일을 한지 어언 1년. 변화는 16년 2월에 찾아왔다. 스페인 출장이다.


출장을 다녀온 뒤 눈이 넓어졌다. 서양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그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다. 그냥 나를 나로서 봐줬다. 


한국을 떠야겠다! 는 생각이 나를 강타했다. 가지 않는다면 후회하면서 숨을 거둘 것 같았다. 대학생 때 미국에서 1년 살면서 외국이 나에게 더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한 터라 결정은 쉬웠다. 퇴사를 준비했다. 외노자 하층민이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2. 삶 기대하기(2016년 6월- ~)


이때부터였다. 삶을 기대하게 된 게. 결혼이고 뭐고 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좋은 사람 나타나지 않는 거, 억지 노력하지 말고 내가 좋은 거 하면서 사는 게 행복 아니겠냐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빠가 또 아프게 됐다.(인생은 수동태)

잠시 흔들렸다. '하 이렇게 내 인생 또 망해가는구나'


하지만 하루 만에 다시 살아났다. 어차피 내 인생 뜻대로 안 되는 거, 가까운 미래만 보자. 주어진 틀 안에서 '욕망'을 채워보자.


그렇게 욕망 가득한 여자가 됐다.


그렇게 욕망 가득한 인간이 됐다. 20대 초반에 품었던 욕망과는 다르다. 그때는 '안정'이라는 욕망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라는 욕망을 추구한다. 그때는 돈을 모으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돈을 재밌게 쓰는 데 마음을 둔다. 


즐기게 됐다. 인생의 불안함을. 엄청난 스릴을.

돌아오는 겨울-봄에는 누가 뭐래도 일본 여행을 갈 거고, 2017-2018에는 캐나다로 아니면 영국으로 떠날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기회도 찾아오고, 좋은 인연도 만나고 그러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억지로 노력하면 이상하게 더 엇나간다. 물 흐르듯이 그냥 살면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온다. 


이 유치한 명제가 언제 어떤 이유로 깨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은 이 문장을 꼭 붙들고 산다.


이젠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누구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이 인생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살 뿐이다. 내 인생은 내 손에 달려있으니까.


그리고 이것도 깨닫게 됐다.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는 걸.

https://youtu.be/4VxSjjtORb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런 얘길 했더니, 그 누군가가 그랬다. 

'이제 너도 늙었구나'


*소심한 관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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