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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Oct 06. 2017

5년전 다닌 미국대학, 직장인 되고보니 이렇게 다르더라

2012-13 미국 뉴욕주 교환학생

"지금의 널 만든 때를 고르라면 언제를 택할래?"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2012년 8월-2013년 5월 미국 교환학생 시간을 고르겠다. 미국 교환학생은 내게 '생각하는 법'을 알려준 시간이다.


한국에서는 공부에, 친구들에, 가족에, 해야 할 일에 치여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바빴다. '이렇게 살다가 대기업 취직하고 결혼하고 사는 게 인생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재미없는 아이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재미없고, 인생도 지루했다. 당시 했던 연애가 날 더 근시안적으로 만들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고 정착해 그저 그렇게 같이 살 줄 알았거든.


미국에 오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친구도 없고, 차가 없으니 아무 데도 나갈 수 없었고, 수업도 12학점만 들었다.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다. 그래서 이렇게 에디터도 됐고.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23살) 나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왜 일찍 떠나지 않았냐고? 교환학생은 당연히 안될 줄 알았다. 성적은 3.5를 넘지 못했거든. 그런데 도전해보니 되더라. ㅋㅎㅋ)


내가 간 학교는 미국 뉴욕주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도시 버펄로에 있었다. University at Buffalo. SUNY Buffalo라고도 부른다. 뉴욕 주립대다. 이곳에 가기 전에는 버펄로가 어딘지 몰랐다. 버펄로라는 물소가 뛰어다니고 길거리에는 곰이 우구당탕 다녀서 총이나 후추 스프레이는 필수로 챙겨가야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무슨, 그냥 사람 사는 곳이더라. 한국으로 치자면... 대전 같은 도시랄까. 조용하고 사람 살고 학교가 있는 곳이다.


난 미국을 좋아한다.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캘리포니아에 사는 작은 이모 댁에 간 게 첫 기억이다. 이모 집은 2층에 화장실은 3개나 됐고, 거실을 가로지르며 2층으로 올라가는 소라 등껍질 모양 계단도 여전히 기억난다. 어딜 가나 공원이 있었고, 너른 땅에 사람은 적으니 굉장히 자유로웠다. 교환학생 떠나기 전 미국은 총 3번을 방문했고, 2012년 드디어 미국에 왔다. 그것도 9개월이나 살러온 거다. 호기롭게.



"미국애들은 무서워..."

2012년 8월 기대했던 것만큼 미국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난 이런 걸 기대했다.

논스톱 ver.미국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친구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어버버 한 영어 실력으로 친구를 만들기는 숨이 턱턱 막히는 도전이었다. 나보다 다리 한 마디는 더 큰 미국 아이들 높은 얼굴을 바라보며 영어로 말을 한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나이 들어 보이는?' 미국 아이들은 무섭기도 했다. 나보다 어려도 언니 오빠 같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들처럼 백인이 아니라 아시안인 것도 날 위축시켰다. (이건 뭐지 셀프 인종차별인가요;;;... 암튼 그땐 그랬다.)


그래서 나는 날 좋아하는, 날 궁금해하는 미국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 (다행히도! 내게 말을 걸어준 맘씨 좋은 천사들)


Sit1.(@체육관 정문)

Zumba Dance 배우러 가는 길. 앞에서 어떤 키 멀때같은 백인 남자애가 문을 열고 기다려줬다.

"안녕! 난 톰이야."

Sit2.(@Campus church)

전 세계 학생들이 모인 캠퍼스 교회. 한 1학년 여자애가 나를 불렀다.

"온니~ 전 샤이니를 좋아해염!"


미국 아이들과 친구가 되면서 미국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지만, 기숙사에서 미국인을 마주칠 때마다 흠칫하며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듯한 기류는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나를 찍겠다고? 놀리는 거 아니지?

2017년 10월 다시 가본 UB는 그냥 학교였다. 20대 초반 대학생이 다니는 그런 평범한 대학교. 더 이상 미국 아이들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몸집이 이따만치로 큰 아이들이 귀엽기까지(?) 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체구나 표정, 유창한 영어보다는, 아이들의 어수룩한 마음,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세상을 궁금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이랑 학생회관을 지나가는데 한 미국애가 우릴 불러 세우더니 말을 걸었다.

"옷 입은 게 너무 예쁜데, 사진을 찍어도 될까?"

ㅋㅎㅋㅎㅋㅎ 저 옷이 예쁘다고? 저게??? 아직 옷을 보는 눈이 다 자라지 않았군. 귀엽다 ㅋㅎㅋㅎ(동생도 의아해했음.) 몰래 웃었다.




"밥은 왜 이리 맛있나?"

2012년 8월 미국 음식은 눈이 돌아갈 만큼 맛있었다. 기숙사 식당 지하에 내려가면 먹고 싶은 게 다 있었다. 그것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다. 뷔페였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덜 걸로 기억한다. 13불 정도? 15000-18000원 정도 했다. 한 끼에.


스테이크, 후렌치 프라이, 피자, 각종 쿠키, 머핀, 커피, 음료, 멜론, 사과.... 없는 게 없었다. 맨날 VIPS를 들락날락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점심은 보통 학교 건물에서 샐러드를 사 먹었다. 양상추, 올리브, 콩, 페타 치즈, 브레드 스틱에 소스는 오리엔탈을 올렸다. 그렇게 먹다가 지칠 때쯤, 집에서 냄비밥을 해 먹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서 8kg가 쪘다.

2012년 겨울. 그것도 '초콜릿 우유'를 뽑아먹는 ㄱㅅㅇ.
2017년 가을 배꼽 공개한 ㄱㅅㅇ;;


2017년 10월 학교를 쭉 훑었다. 안 가본 곳 없이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모든 건물을 다 돌았나 보다.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으려 음식 코너? 들을 도는데. 이걸 어쩌나... 먹고 싶은 게 없다!!! 보이는 건 샐러드, 수프, 머핀, 햄버거, 피자, 부리토, 초밥 이런 것들 뿐이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뜨끈하고 건강하고, 조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런 건데. 예를 들면, 일본 가정식? 한국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그런 게 없다. 다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차가워지는 그런저런 음식들.


결국 나름 건강하고 간단해 뵈는 멕시칸 부리토를 사 먹었다. 반 잘라서 동생이랑 나눠먹었다. 옛날엔 하나도 모자랐던 것 같은데.


5년 만에 내 입맛도 바뀌고, 그동안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체험한 탓이 크다. 내 탓이오. 그리고 그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다양한 지도 지금의 나는 알고 있거든.

양도 얼마나 많은지, 동생이랑 하나 사서 나눠먹었다.


"건강하게 살기에 참 좋다"


2012년 8월 2017년 10월 변하지 않은 건 있다. 버펄로는 땅 넓고 나무 많고 공기 좋은 동네라는 거. 미세먼지 걱정은 1도 안 해도 되고, 창문을 열어놔도 먼지는 1도 안 들어온다는 거.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맞아도 머리 빠질 걱정 안 해도 되고, 거위 똥만 잘 피하면 환경에 대해 찝찝할 일은 전혀 없다.

하나 더. 미국은 운동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한국에도 운동을 하고자 하면 할 곳은 많지만. 여기서는 운동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이 작은 도시, 학교에도 운동 프로그램은 넘쳐나고(그러니까 나 같은 애가 운동을 했지. 이건 내가 찾아서 운동을 시작했다기보단 여기저기 널려있는 운동 프로그램 보는 데 이젠 두 손 두발 들고 '오키오키 알써. 그럼 나도 등록해서 운동할게.' 이렇게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저 큰 체육관을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난 요가도 배우고, 줌바도 배우고, 킥복싱도 배우고, 아 맞다 모던댄스인가 기억이 잘 안나네 커플댄스도 배웠다. ㅋㅋㅋㅋㅋㅋ 게으름뱅이 ㄱㅅㅇ이 말이다.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는 데 든든한 기둥 하나가 운동이란 걸 이때 알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어떻게든 운동은 빼놓지 않고 하는 계기가 됐다.


2013년 5월에 미국을 떠나고, 4년 5개월이 됐다. 그동안 졸업, 인턴, 대학원, 가족문제, 이별, 취업, 대학원 제적, 이직 등 다양한 삶의 궤적을 거쳐왔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2017년 10월 내 정체성의 고향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월급은 개미 오줌만큼이지만) 내 손으로 머리 굴려 번 돈에 박수를 보낸다.


버펄로야, 다음엔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올게. 딱 기다려. 사랑해. 아 그리고 나중에 내가 유명해지면, 버펄로 너를 잊지 않을 거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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