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집가 Jul 25. 2024

좋았던 것들이 시시해질 때


에어컨 켜고 방에 누워 책 읽기 좋은 계절. 마침 좋아하는 작가 세 분의 신작이 나와서 기대하며 주문했다. 도착한 지 이 주가 지난 지금 의리로, 정으로 억지로 읽고 있다. 소설가의 에세이야 원래 읽기 어려워했다지만 다른 두 에세이 작가의 에세이마저 너무 벅차다. 하나는 내 기억 속엔 최악으로 남은 여행지에 대한 예찬이라 공감을 못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모습에 질려하며 읽고 있다.


평소라면 좋아하고 밑줄칠 글을 '한갓진 소리 하고 앉아있네' 라며 비난하는 요즘. 무딘 성격이라 내 상태를 잘 모르는 나는 이렇게 날 서있는 스스로를 보며 나의 지침을, 불행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 써야 비로소 알게 되는 민낯의 감정을 알기 위해 지금은 읽을 때가 아니라 뱉어낼 때다.


시작은 어딘가에서 본 글이었다. 어느 분야든 '내가 더 잘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 그 분야를 파보라는 그 말이 계시처럼 다가왔다. 직장생활 내내 잠재적 퇴사자로 살고 있는 내게 처음으로 '이런 것도 책이라니'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다. 내 또래가 엉덩이 힘으로 쓰던 글. 너무 적나라하고 보기 싫은 남의 상처를 들춰낸듯한 이상한 기분으로 덮어둔 글. 그런 글이 쌓여 어느덧 수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때였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뻔한 글, 난해한 시가 아닌 이상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책을 좋아했다. 읽고 있으면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엿보고,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혼자) 가까워지고, 사랑할 수 없다 여긴 인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문장을 기가 막히게 쓰는 작가와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 소설가를 보며 '쓰는 사람'은 마치 연예인처럼 타고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욕심이 점점 커졌다.


이 삼십여 년의 세월 중 재미있는 몇몇 에피소드를 골라 썼던 글은 (주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시니컬한데 위트 있고 공감도 되고 시의성도 있다며. 듣다 보면 귀부터 빨갛게 달아오는 칭찬을 여과 없이 흡수했다. 그리고 스스로 천재 작가라 여기며 이글, 저글 끌어 다모아 투고도 했다. 결과는 뜨뜻미지근. 주변 사람들의 따스한 응원을 받다가 갑자기 차가운 현실 반응을 마주쳤다. 글로 복수하기보다는 남을 탓하기가 더 쉬운지라 글 쓸 시간에 '팔로워'를 묻는 편집자를, '돈'만 내면 출간 계약까지 보장한다던 강사를 원망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이 나만 못 먹는 다디단 포도처럼 느껴졌다. 셔서 못 먹는 포도라면 쳐다도 안 볼 텐데, 계속해서 누군가 '내 포도'를 빼앗아 먹고 있다고 착각했다.


좋았던 것이 시시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내가 너무 뜨거워서라면 답은 쉽다. 에어컨 앞에 벌러덩 누워 쉬기. 질투나 시기 없이 문장만 오롯이 느껴볼 테다. 그러다 쓰고 싶어지면 쓰고, 쓰기 싫어지면 내버려두어야지. 엔진 끄고 푹 쉬기. 이번 주말에 할게 많다.





작가의 이전글 네 일, 내 일, 내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