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 약 2주 정도 여름휴가를 받았었다. 계획이 있어서 휴가를 받았다기보다는 짧은 미네소타의 여름을 조금이나마 만끽하고 싶어서 받은 휴가였다. 간호대를 다니고 있는 신랑도 마침 여름 방학이어서 우리는 정해진 계획 없이 그냥 집에서 마음 편하게 쉬기로 했다.
매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이곳저곳 경치 좋은 곳에 가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산책을 했고, 뒷마당에서 일광욕도 즐겼다. 오후에는 신랑은 대부분 게임을 하거나 레고를 조립했고, 나는 그때 한창 쓰고 있던 브런치 북 <나는 비겁한 어른 아이였다>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1 주일 뒤, 병원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고 있는 신랑이 출근을 하고 집엔 강아지 두 마리와 나만 남았다. 지루하기도 했고, 괜히 휴가가 끝난 것만 같아 울적해하던 차, 눈앞에 펼쳐진 꼬질꼬질한 바닥과, 강아지 털이 아무렇게나 내려앉은 테이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어수선한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1주일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집이 말도 못 하게 지저분했다. 곧바로 온 집의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리고, 주방과 욕실까지 대청소를 했다.
그날 오후, 병원에서 돌아온 신랑이 집 안을 휘휘 돌아보며 물었다.
"어? 청소한 거야?" "응. 너무 지저분해서." "청소기도 돌리고 화장실까지 청소했네! 엄청 깨끗해!" "어. 대청소했어." "너 휴가잖아! 그냥 쉬지. 나랑 같이 하면 되는데." "자기는 일했잖아. 시간 나는 사람이 하면 되지 뭐."
그리고 신랑이 말을 이었다.
"집 청소해 줘서 고마워."
연애시절부터 신랑의 대화법은 이랬다. 내가 한 작은 일에도 늘 감사를 표했고, 어쩔 때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갠 날은 빨래 정리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밥솥에 밥을 안친 날은 밥을 미리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하고, 가끔 한국식으로 저녁을 만든 날은 며칠 동안 그 저녁이 맛있었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런 신랑의 반응이 적응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칭찬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었고, 그런 세세한 감사를 받아본 적도 없었기에, 신랑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부터 먼저 들었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왜 저렇게 고맙다고 말하지?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청소기 한 번 돌린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저렇게나 호들갑이지?
신랑과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당연히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그리고 누군가가 당연히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기대도 없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첫해, 신랑은 일을 하고 나는 집에서 영어 공부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신랑이 일을 하니까 집안일은 내가 전부 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매일매일 집안일에, 강아지 산책까지 하려니 그 스트레스가 엄청났었다.
"왜 네가 집안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부부야. 한 팀이라고. 이민을 와서 계획대로 너는 공부를 하고 있고, 나는 일을 시작했어. 내가 지금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위에 있다는 뜻도 아니고, 네가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아래 있다는 뜻도 아니야. 앞으로 네가 일을 하고 내가 공부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내가 직장을 쉬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럴 때마다 이건 네가 해야 되는 일이고, 저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딱 잘라서 나눌 거야? 너와 나는 동등한 하나의 팀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하는 일인 거야."
그래서인지 내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안일을 한 날은, 신랑은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함께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다 하다 보면 결국엔 스트레스가 누적될 것이고, 그 스트레스는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절대로 집안일을 혼자, 과도하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오며 지금은 우리도 어느 정도 패턴이 생겨서 시간이 나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함께 대청소를 하는 날은 둘이서 적당히 나누어서 청소를 한다. 주택에서 살다 보니 잔디를 깎거나 차고 청소 등으로 신랑이 밖에서 할 일이 많으면, 집 안의 청소는 내가 전부 도맡아서 하기도 한다.
혹시나 내 글의 요지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집에서 며칠 동안 게으르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강압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하라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당신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며칠, 몇 주를 청소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당신의 파트너를 전적으로 이해하라는 뜻도 아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팀으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서로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을 번다는 것으로 유세를 떨고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그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살면서 서로의 상황과 위치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집안일하는 것 가지고 왜 이렇게 심각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은 정말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이런 집안일 같은 것들 말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먼저 하는가? 내가 직장에서 그 고생을 하고 왔으니, 내 파트너가 당연히 집안일을 전부 다 해야지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집에서 쉬어도 될 텐데 내가 일한다고 이 사람도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하는가?
깨끗하게 청소가 된 집에 들어서며 당신이 할 일은 단 한 가지이다.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당신의 파트너를 보며 당신이 할 일도 단 한 가지이다. 또한, 맞벌이 부부가 주말에 마음먹고 함께 청소를 하면서 서로를 향해 할 일도 단 한 가지이다. 바로 상대방의 노고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림 후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할 일이다.
"집 청소한 거야? 너무 깨끗하네~ 청소해 줘서 고마워." "오늘 회사에서 많이 힘들었어? 우리 자기가 고생이 많네. 오늘도 너무 수고했어. 고마워."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어서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고맙다는 말을 하면 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뜻이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내가 현재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제대로 극복하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늘 혼자서 고민하고, 늘 혼자서 해결책을 찾으며 자라온 나였기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혼자서 간단한 일도 해결하지 못하는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고맙다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가 뭐 그렇게 대수라고 패배자가 된 것 같고, 어떤 경쟁에서 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을까?
고맙다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 상대방의 수고를 알아차리고 감사하는 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랑의 표현 방법임을 신랑을 만나고 난 뒤 알게 되었다. 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모자라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아닌, 관계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