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뭐야? 온통 자기 신랑 자랑이야? 신랑이랑 잘 맞는다고 동네방네 생색내는 거야?
결론부터 말하겠다. 절.대.로. 아니다!
여느 부부가 그러하듯 우리 부부도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로 둘 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싸웠던 적도 많았고, 이 사람이랑 너무 안 맞아서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꽤 있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내가 미국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뒤, 신랑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시골에서 찾는 사람도 없는 헬스 트레이너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한동안 냉전일 때가 있었다. 그때 신랑이 진지하게 나랑 이혼할 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로 둘 사이가 위태로울 지경까지 갔었다. 그 후,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라고 설득을 했는데 도통 말귀가 통하지 않아 한참 애를 먹기도 했고, 겨우 대학에 다시 가는 걸로 마음을 잡은 것까진 좋았으나 희한한 과로 전공을 선택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또 얼마나 갈등이 심했는지 일일이 다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엔, 신랑의 나이 33살에 간호대에 입학해서 지금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으니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이지만,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책 한두 권쯤은 거뜬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여섯 살 연하 미국 남자와 이혼할뻔했어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브런치 북을 만든다면 인기도 많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험담을 남들에게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며 깎아내리는 글을 쓰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이혼을 한 직장동료 한 명이 있었는데, 이혼하기 전에 그 동료는 병원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끊임없이 신랑 험담을 했었다. 아이들 때문에 이혼 생각이 없다면서도 신랑의 아주 작은 단점까지 끄집어내 하루 종일 욕을 했던 것이다. 처음엔 정말로 힘든가 보다 하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은 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결혼을 한 뒤 가까운 친구나 지인, 가족에게 부부 사이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냥 넘어가기 힘든 불륜이나 폭력, 도박 등의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내가 그 동료의 입장이 돼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도 좋을 아주 작은 단점까지 일일이 타인에게 떠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 직장동료의 부정적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일을 하는 것이 버거워질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나중에는 과연 그 동료의 신랑이 그 정도로 문제가 많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었다. 남편을 깎아내리기 위해 끝도 없이 해대는 불평에, 되려 그 동료의 위신까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 약점이 되었든 강점이 되었든, 내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준다는 뜻이다. 나의 열등감도, 단점들도 배우자가 고스란히 알게 되는 것이고, 당신도 연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배우자의 단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장난식으로 당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그의 친구나 동료들에게 떠들고 다닌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모임에서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신랑 험담을 해서 모두들 웃었다고 치자. 그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너도 나도 신랑의 험담을 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덩달아 나도 무언가를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선 나는 그냥 분위기에 맞춰 한 번 웃어 주곤 입을 닫아 버린다. 아무리 가볍고 장난스러운 상황이라도 나는 내 신랑의 약점을 들춰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깎아내리면서까지 그런 시답잖은 모임의 분위기를 살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전환도 모두 신랑 덕분이었다. 어딜 가도 팔불출처럼 내 자랑을 해대는 신랑 때문에 처음엔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본 적도 있었다. 저렇게 자랑을 하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할 텐데 하는 노파심이일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미국 사람들은 오히려 신랑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자신의 자식이나 파트너의 비슷한 장점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바빴다.
그런 신랑을 보면서 분명 신랑은 내 자랑을 하고 있는데, 신랑의 품격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부인을 존중하고, 부인의 장점을 부각해 주는 대화 기술로 그는 자기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 오고 난 뒤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한국에서 배워온 나를 낮추는 겸손의 대화법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던 선조들의 지혜는 요즘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더더욱.
없는 데 있는 척, 모르는데 아는 척, 허세를 떨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잘하고, 자신 있는 것은 당당하게 잘한다고 인정하고, 누군가 칭찬을 하면 고맙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미국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뒤, 처음 일 년 동안은 영어 때문에 꽤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내 영어 발음이나 문법에 자신이 없어 목소리는 다 기어들어가고, 신랑 앞에서 쫑알쫑알 말만 잘하다가도 공공장소에 나가면 아예 입을 닫아 버리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상대방이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창피하고 부끄러웠었다. 내 발음 때문에 저 사람이 못 알아 들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 시기에 나에게 끊임없는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 바로 나의 신랑과 친하게 지냈던 직장동료들이었다.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 몇몇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었다.
"소피. 너는 너무 너 자신에게 가혹한 것 같아. 좀 긴장을 풀어도 괜찮아."
"너는 다른 나라에 와서, 제2 외국어로,미국인인 나도 하기 힘든 중환자실 간호사 일을 나름 완벽하게 해내고 있어. 네 문법이 조금 틀리다고 해서, 네 발음이 조금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우리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조금 틀리면 어때? 네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만 전달되면 되는 거 아냐?"
"소피! 여기 일하는 사람 중에 2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리고 두 개의 나라에서 간호사 면허를 딴 사람도 너뿐이고, 생전 살아본 적 없던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용감하게 정착해 사는 사람도 너뿐이야. 너 정말 대단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마음가짐도 많이 변했다. 내가 나를 깎아내리고 낮추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대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잘한다고 칭찬하는 사람에게 "아이고,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한 제가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겁니다." 이런 식의 대답은 이제는 절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칭찬을 받으면 칭찬해 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열심히 했다고 대답한다. 간결하고 심플하게 말이다.
나를 낮추는 말을 하지 말자. 그리고, 나의 소중한 파트너의 단점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서 깎아내리지 말자. 안 그래도 각박하고 힘든 세상,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까지 웃음거리의 대상이 된다면 너무 서럽지 않은가.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가족을 낮추는 말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다.
허세가 아닌 높은 자존감으로, 허풍이 아닌 진짜 실력으로, 쓸데없는 유세가 아닌 자랑스러움의 대화 기술을 이용하자. 어렵다는 것 안다. 지나치게 자랑을 하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괜히 과장스럽게 말했다가 허풍쟁이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 중간을 찾기 힘들 것 같으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낮추어 말하는, 그 말버릇부터 고쳐보자.
친구 사이에서 배우자나 파트너의 단점을 장난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신랑에게 배운 네 번째가 바로 배우자의 약점과 단점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