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원래 이렇게 자주 만나?

6. 가족 간의 교류, 여섯 살 연하 미국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by Sophi Perich


어렸을 때, 단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인감도장을 도망 맞기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아니, 나는 국민학교 세대니까, 국민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온 친척들이 계곡에 한번 놀러 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지만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정말 놀러를 갔었던 건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상상을 했었던 건지 확실하지 않다.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은커녕, 무언가를 함께 한 기억도 없다. 기억나는 거라곤 험한 욕을 하는 아빠에게 맞았던 기억뿐.


이렇게 가족 간의 유대나 교류가 거의 없이 자라온 내가 다복한 집안에서 자라온 신랑에게 시집을 와서 제일 먼저 접한 '이색적인 경험'이 바로 가족 간의 왕성한 교류였다. 일전에도 말했듯, 신랑은 7 남매의 넷째이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도 남매가 많아 친척들까지 다 합치면 족히 이삼백 명은 될 것이다.


2017년 5월 말에 이민을 와서 첫 두 달 정도는 거의 매일 시댁 식구들을 만났었다. 오랜만에 미국으로 돌아온 신랑 때문에 그렇겠지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댁 식구들은 원래부터가 자주 만나고 왕래도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헬스장에서 거의 매일 아침 만나는데도 돌아가면서 각자의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요양원에 계시던 신랑의 친할머니와 매주 일요일마다 만나 브런치를 하기도 했다.


3년 전, 신랑을 포함해 가족들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플로리다 주와 아이오와 주, 위스콘신 주에 살고 있던 신랑의 형제들까지 이곳, 미네소타 주로 이사를 오면서 신랑의 모든 형제들이 현재 1시간 반경 내에 살고 있다. 그전에도 가족 모임이 많았었는데, 모두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한 달에 두세 번은 기본으로 다 같이 만나는 것 같다.


생일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해서 초대도 하고, 주말에 브런치를 하기도 한다. 또한, 다들 운동을 좋아해서 거의 매주 주말 피클볼을 하고 여름에는 하이킹, 겨울에는 스키나 크로스컨트리 스키 같은 것을 함께 즐긴다.


그렇게 자주 만나는데도 만날 때마다 반갑고, 가족 채팅 방에서 끝도 없이 수다를 떠는데도 만나면 또 그렇게 할 말이 많다. 이런 '이색적인 만남'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나는 신랑에게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자기야, 당신 식구들은 원래 이렇게 자주 만나?"

"응?"


내 질문을 이해 못 한 신랑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되물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거야?"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만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나온 나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친척들과 자주 왕래를 해온 신랑은 내 질문의 의미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가족들이 스스럼없이 서로를 돕고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물질적인 수단으로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일종의 거래라고 인식하고 있던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다들 주택에 살기 때문에 무언가를 새로 지을 때나 집수리를 해야 할 때, 이사를 할 때도 온 가족이 나서서 도와준다.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도 강아지나 베이비 시팅 같은 것도 가족들에게 부탁을 한다.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보면 다들 가까운 곳에 살면서 아이나 강아지를 돌봐주는 모습이 종종 나오는데 신랑의 가족들이 딱 그러하다.


이민을 온 첫해, 아이오와 주에 살던 신랑의 형이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었다. 그때 신랑과 나, 시아버지가 내려가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차로 편도 7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인데도 시아버지와 신랑은 크게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먼 거리까지 가서 우리가 꼭 도와줘야 하는 거야? 무슨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이사 업체를 불러서 이사를 하지... 이렇게 멀리 있는 우리한테 부탁을 하는 건 너무 염치없지 않아?"


나의 말에 당황한 듯한 신랑이 대답했다.


"다들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하잖아. 지금 너랑 나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아빠도 은퇴해서 시간이 되니까 가서 도와주면 좋지. 먼 거리라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미국은 이사업체를 써서 이사를 하는 게 너무 비싸서 대부분 이렇게 가족들이 많이들 도와주곤 해. 그리고, 염치없다는 말을 가족한테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정중하게 부탁을 했고 우리는 이미 도와주겠다고 했어. 이미 결정된 일인데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면 우리한테도 좋잖아. 이렇게 도움을 주면 언젠가는 우리도 도움을 받는 날이 올 거야."


내가 생각하는 가족 간의 주고받음과 신랑이 생각하는 주고받음이 확연히 차이 나는 순간이었다. 금전적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니까, 서로를 돕고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신랑의 마음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혀 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할 때 온 가족이 나서서 도와줬으며, 뒤뜰에 펜스를 칠 때도 시아버지와 신랑의 형제들이 와서 도와준 덕분에 한나절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강아지가 많은 시어머니가 여행을 갔을 때도 우리가 시어머니 집에 머물면서 강아지들을 돌봐준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우리가 여행을 갈 때 만두와 하나를 시어머니가 돌봐주었다.


신랑 형제들의 와이프들과 스스럼없이 가깝게 지내는데, 그녀들의 말로는 유독 신랑 가족들이 우애가 좋은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신랑의 가족들이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적었나 싶겠지만 나에겐 신선한 경험이었고, 이색적인 발견이었다.


명절이나 행사 때마다 만나는 시댁식구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 친구를 만나듯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루어지는 신랑의 가족들. 나는 며느리이고 이곳은 시댁이니 당연히 내가 봉사하듯 일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인식이 명확히 자리 잡힌 신랑의 가족들. 가족이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당연히 시키는 것이 아닌 정중하고 예의 바른 부탁을 하는 신랑의 가족들.


내가 신랑과 신랑의 가족들을 통해 배운 다섯 번째가 바로 가족 간의 교류와 베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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