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과 나는 연애 때부터 결혼 8년 차인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싸움을 해왔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창피한 사소한 일로 세상이 끝날 듯 싸우기도 했었고, 제법 심각한 일로 둘 사이에 위기가 왔을 때도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중점을 두기보단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시간을 낭비하기일쑤였고, 싸움을 하고 난 뒤엔 절대로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뒷전으로 미룬 적도많았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말하기로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은 하지 말자고 수백 번 다짐을 했어도 막상 감정이 격해지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만약 당신이 션과 정혜영 부부처럼 결혼을 하고 난 뒤 단 한 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그저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도 해봐서 알겠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바로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원인 제공을 했는지 그 잘잘못을 따지고 드는 것이다. 원인 제공을 한 상대방을 더욱 논리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 5년 전, 10년 전에 있었던 일까지 들추어내며 책임을 묻고, 심지어 그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까지 끌어와서 질책을 하기도 한다. 싸움의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저번달에도 그랬고, 몇 해 전에도 그랬다. 어떻게 변하는 게 하나도 없냐,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느냐, 너는 늘 이런 식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너는 어찌 된 게 매사에 그런 식이냐...
나와 신랑의 싸움은 지난 9년 동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 왔다. 연애 때는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대판 싸워서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했을 때도 있었고, 결혼 후에는 설거지나 빨래, 청소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 재정적 상황이나 직장, 직업과 같은 제법 중대한 일들까지, 각양각색의 이유로 부부 싸움을 해왔다.
최근에 있었던 부부 싸움 한 가지를 예로 들겠다. 아직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강아지 양육과 관련된 것들로 간혹 의견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특히나 여름이 되면 계절성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만두 때문에 더욱 신경이 곤두서는데,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부부 싸움의 단골 주제가 바로 만두의 가려움증이었다.
약 3년 전부터 여름만 되면 만두는 소양감을 줄여줄 수 있는 주사를 맞고 있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주사를 맞혔는데 무슨 이유인지 올해는 주사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고민 끝에 신랑과 나는 음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신랑이 검색으로 비교, 분석해서 찾은 사료로 바꾼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만두의 피부병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는 듯했고, 가려움증이 없던 하나까지 온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당연히 신랑을 겨냥해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다.
"너 때문에 하나까지 온몸을 긁어대는 거 안 보여? 만두 피부도 더 붉어졌다고! 대체 뭘 어떻게 검색을 한 거야?" "강아지 사료 중에서 그래도 엄선된 재료를 사용하고 리뷰도 만점에 가까웠어. 나쁜 성분은 들어가 있지도 않았고. 좋은 사료라도 만두랑 하나가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내가 전부 다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치킨이 들어간 건 단백질이 너무 많아서 신장이 안 좋은 만두한텐 안 좋을 거라고 내가 그랬지? 피부병을 유발할 확률도 더 높다고! 연어가 들어간 걸로 사자니까 네가 치킨이 좋다며? 말도 못 하는 애들이 얼마나 가려우면 저렇게나 긁어대겠냐고! 얼마나 힘들지 생각이나 해봤어?" "소피!! 나도 너 못지않게 만두랑 하나를 사랑하고 걱정해! 나도 아이들이 저렇게 가려워하는 걸 보는 게 힘들다고! 너만 아이들 걱정하는 거 아니야! 여름만 되면 만두는 피부병 때문에 동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었잖아! 네가 하도 고집을 부려서 이번 여름엔 사료까지 바꿔서 이렇게 더 상황이 악화된 거야! 너 때문이야!"
정작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를 탓하는 데만 급급해 쳇바퀴 도는듯한 싸움만 이어져갔다.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신랑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했던 웹사이트 있지? 나 거기서 아이들 음식 주문할 거야.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진짜 음식이고 사료가 아니야. 2주마다 집으로 배송해 주고 아이들 몸무게와 운동량에 따라 필요한 열량과 영양소까지 계산해서 만든 거라 믿을만해! 비싸긴 해도 내가 엑스트라로 조금 더 일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들 저렇게 힘들어하는 거 더는 못 보겠어!" "너는 항상 이런 식이지! 뭐만 잘못되면 전부 다 내 잘못이고 너는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구는 거! 너 좋을 대로 해봐! 더 이상 너랑 말해봤자 나만 나쁜 놈 되는데 뭐!"
곧장 나는 그 음식을 주문했고 약 5일 뒤 집으로 배송이 되었다. 그 음식을 시작하기 전날 밤, 신랑은 그 웹사이트 음식의 영양소 계산이 정확하지 않다는 리뷰를 들먹이며 슬슬 내 신경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너 여기 음식이 그레인 프리(Grain Free)인 건 알았어? 예전에 만두한테 그레인 프리 사료 먹였을 때 만두가 그 음식 아예 먹지도 않았던 거 기억나지? 영양소가 제대로 맞지 않아서 영양실조로 강아지가 죽었다는 리뷰도 있어. 정말로 이걸 먹일 거야?"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그랬지! 그 그레인 프리 사료도 네가 검색해서 산 거였잖아! 만두가 그 사료 정말 싫어했었지! 그리고, 영양실조로 강아지가 죽었다고? 그 강아지 나이가 16살이었고, 이미 사료를 안 먹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했어. 강아지가 하도 사료를 안 먹으니까 견주가 이 웹사이트 음식이라면 조금이라도 먹지 않을까 싶어서 주문을 한 거였고.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그 강아지는 그 음식도 거부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는데... 그게 진짜 이 음식 때문에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이 음식이 달갑지 않고 걱정이 된다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이렇게 배송을 받고 난 뒤 말을 하는 이유는 또 뭐고? 신선 식품이라 반품도 안되는데 이제 와서 뭐 어쩌자는 건데?"
싸움은 약 이틀 정도 이어졌고, 마침내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우리 둘은 차분하게 앉아서 싸움이 아닌 대화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현재 주문해서 받은 2주 치의 신선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인 뒤, 더 이상 주문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너무 부담이 되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가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다가 혹시 영양소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잘못된 식재료를 선택해서 더 큰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그건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은 약 2년 전 만두와 하나에게 먹였던 다른 브랜드의 사료로 되돌아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현재 신선 음식을 먹고 있는 만두와 하나는 음식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설사나 구토와 같은 부작용은 없으며 가려움증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물론 이곳 미네소타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아이들의 가려움이 좋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아직도 싸움이 나면 건설적인 대화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것보단 누구 탓인지 잘잘못을 따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지 말자고, 앞으로는 이런 대화 방법을 쓰자, 이런 접근 방법을 쓰자 하며 많은 대화를 하지만 막상 실전에선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 더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소한 싸움이 있는 반면, 꽤 굵직굵직한 싸움도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서 여전히 뼛속까지 후회되는 부부 싸움이 딱 하나 있다. 우리가 이민온 첫 해, 시어머니 댁에 살 때였다. 신랑은 일을 하고 나는 한창 영어 공부를 할 때였는데 무엇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 사소한 일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싸움이 지속될수록 점차 본질에서 벗어나 서로를 헐뜯기 위한 싸움으로 변해갔다. 그때 내가 신랑에게 한 말이 있다.
"너는 4년제 대학까지 나와서 구할 수 있는 직장이 겨우 그것뿐이야? 네가 좋은 직장을 구해서 돈을 잘 번다면 우리가 여기서 지낼 이유도 없고, 내가 이렇게 힘들 이유도 없을 것 아냐!! 네가 능력이 없어서, 돈을 못 벌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나는 이기기 위해, 신랑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기 위해 잔인하게 신랑의 자존심을 후벼 팠던 것이다. 변명 같지만 그때 나는 시댁이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과 향수병까지 겹쳐져 심적으로 많이 불안정했었다. 말을 하면서도 후회를 했고,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불륜이나 폭력, 도박, 심각한 고부갈등, 중독(술, 마약, 게임 등)과 같은 중대한 문제라면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때는 싸워야 하고, 철저한 준비와 계산으로 당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부부 싸움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정말로 이겨야 할까? 이기기 위해 서슴없이 상대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일까?
사랑해서 결혼했고, 사랑하기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팀이지 경쟁자가 아니다.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집중을 해야지 이기고 지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우리 부부는 매번 싸움을 하고 난 뒤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마주 보고 앉아서 많은 대화를 한다. 그때 그런 말을 해서 미안했다거나, 네가 한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았다 하는 것들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이런 대화를 통해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내가 신랑과 결혼 후 배운, 아니, 신랑과 내가 여전히 함께 배우고 있는 여덟 번째가 바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이기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