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일을 하지만 나는 병원을 싫어한다. 정맥주사 간호사로 일을 한다고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주사도 무서워한다. 물론 IV는 잘한다. 남들에게 주사는 잘 주면서 막상 내가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손발을 덜덜 떨 정도로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런 내가 치과를 좋아할 리 없다. 6개월마다 스케일링을 받으러 가는 것도 엄청난 자기 최면이 필요할 정도이다.
사랑니를 발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해째 들어왔지만 고집을 부리며 미루고 미루어 왔었다. 두 달 전, 스케일링을 받으러 갔을 때 치과 의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날을 잡았다. 바로 신랑과 나의 7번째 결혼기념일, 10월 2일이었다.
다행히 치과 의사가 국소 마취제를 충분히 주사한 데다 신속하게 발치를 해줘서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았다. 사랑니를 두 개나 발치했으니 병원에서 진통제 처방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 했지만 웬걸, 집에서 타이레놀과 아이부프로펜을 번갈아 복용하라는 안내만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진통제 처방에 참 인색하다.
그렇게 우리 결혼기념일 날, 나는 발치를 했고 신랑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서 보내야 했다.
발치 후 뭉근한 통증이 있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첫날이 지나자 의사의 말대로 통증이 조금씩 좋아졌다. 하지만 이틀째 날 밤, 왼쪽 잇몸과 턱에서 시작된 극심한 통증이 왼쪽 귀와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병가를 내고 다시 치과를 찾았다. 드라이 사켓(Dry socket, 발치 후 발치와의 치조골 노출과 국한성 골수염 및 심한 동통 증상을 수반하는 것을 말함)이 생겼다며 치아를 빼낸 빈 공간을 다시 긁어내서 인위적으로 피를 나게 해 혈전으로 매워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를 한 뒤 치과의사는 또다시 집에서 타이레놀과 아이부프로펜을 번갈아 복용하라고 했다. 조금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달라고 해도 치과의사는 그 두 개를 번갈아 복용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왜 그렇게 처방전에 인색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출근도 못하고 며칠을 고생을 하다가 이삼일 전부터 겨우 통증이 가라앉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든 한 주를 보낸 데다가 어제 이브닝 근무를 하고 돌아와서인지 많이 피곤했다.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2시. 씻고 새벽 1시쯤에 잠이 들면 대부분 오전 8시나, 늦어도 9시 전에는 일어나는데 오늘 아침엔 10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소피, 10시야. 배 안 고파?" "..... 응?"
잠결에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한 번씩 피곤해서 오전 10시가 넘을 때까지 늦잠을 잘 때면 신랑이 깨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 배고프잖아. 이제 일어나. 나중에 밤에 잠 못 자서 또 고생하지 말고."
부스스 눈을 뜨는 나를 향해 신랑이 말을 이었다.
"토스트 만들어놨어."
눈이 번쩍 떠졌다.
"커피 내려줄 테니까 나와."
거실로 나가니 막 구운 따뜻한 토스트와 갓 내린 커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삭한 토스트를 입으로 가져가자 고소한 냄새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기분 좋은 전율이 느껴졌다.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는 왼쪽 턱을 쓰다듬으며 오른쪽 턱으로 오물오물 토스트를 씹어 삼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모닝커피의 첫 목 넘김이란!
"너무 맛있어! 고마워, 자기야."
피식 웃은 신랑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곤해하는 날엔 신랑은 꼭 이렇게 토스트를 만들어주거나 꽃다발이나 작은 선물, 손 편지 같은 걸 준비하곤 한다.
비싼 명품 도자기 그릇에 올려진 거창하고 화려한 아침식사가 아닌 투박한 솜씨로 만든 토스트와 신선한 커피이다. 비싼 향수나 화장품이 아닌 슈퍼에서 파는 꽃다발이나 초콜릿 같은 작은 선물들이다.
연애를 할 때부터 늘 변함없이 만들어준 이 토스트는 빵 한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내고 달걀을 넣어 살짝 구워낸 것이다. 올리브 유에 구워낸 바삭한 토스트를 먹으니 통증과 피곤으로 축 늘어져 있던 몸에 기운이 도는 것만 같았다.
작지만 충만한 행복을 주는 사람. 나를 걱정하고, 나의 기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 나의 신랑.
이런 작은 보살핌과 마음 씀이 사랑의 표현임을 신랑과 함께 살며 배웠다. 명품 백보다신랑의 토스트가 더 좋다. 비싼 보석보다 신랑에게 받는 손 편지와 꽃다발이 더 좋다.
내가 신랑에게 배운 아홉 번째가 바로 작은 보살핌과 마음 씀이다.
신랑이 만든 토스트와 모닝커피
작년 겨울. 코로나 때문에 한창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였다.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작은 선물이 놓여 있었다.
코스트코에 갔다가 내가 귀엽다고 말했던 크리스마스 Gnome 데코를 선물로 사온 신랑.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귀여운 Gnome 세 개를 세워 두었다. 그 앞에 잠이 든 만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