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인감도장과 별똥별

6. 나의 8살(_3).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by Sophi Perich


가을 추수가 시작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매일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도 할머니를 도와서 햇볕에 말려 놓은 붉은 고추를 뒤집고 콩과 깨를 털었다. 두 분이 너무 바빠 밤늦게까지 논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날은 여물을 쒀서 소 두 마리에게 먹이기도 했다.


마을 어른들은 일이 바쁜 봄, 가을엔 품앗이로 서로의 일을 도왔었는데 그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의 추수를 돕는 날이었다. 일요일이라 나도 어른들을 따라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골짜기에 있던 논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들이 낫으로 벤 벼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할머니들이 뒤따르며 탈곡기에 들어가기 적당한 양만큼 모아 볏단으로 묶었다. 나는 할머니들이 볏단으로 묶기 쉽게 벼를 모아주는 일을 했다.


오전 일을 끝내고 모두 논두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두툼한 보쌈에 커다란 김치를 올려서 야무지게 쌈을 싸먹고 시원한 콜라를 마셨다. 동네 어른들은 시원한 계곡물에 담가 놓은 막걸리를 마시곤 기분이 좋은지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렀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는 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고 할아버지는 소에게 줄 여물을 쒔다.


여물을 뒤적이다 담배가 떨어졌다며 사랑채 문을 연 할아버지가 고함을 내질렀다. 놀란 할머니와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사랑채로 들어서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방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장롱에 들어있던 이불이며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서랍도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옷장 안쪽의 깊숙한 곳을 뒤지던 할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지의 인감도장이 없어졌다.

할머니도 그대로 주저앉아 바닥을 쳤다.


그 해 겨울, 독촉장을 받았다.


수입 거리가 전혀 없는 겨울, 할머니는 마산역 옆에 있던 큰 시장에 거의 매주 쌀을 가져가서 팔았다. 할아버지는 두터운 굳은살이 진 손바닥에서 피가 날 정도로 새끼줄을 꼬았다. 그걸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팔았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우리 세 식구가 다음 해 추수 때까지 먹을 쌀도 부족할 지경이 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결국 소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팔기로 했다.


농촌에서 가장 큰 재산이 땅과 소다.

땅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로 큰 재산을 팔아야 했다.


지독하게 가난했다.

그 가난 속에서 두 분은 처절하게 버티고 버텼다.




종종 마산역에 쌀을 팔러 가던 할머니를 따라갔었다.


새벽 5시, 온몸이 덜덜 떨리는 추운 겨울. 버스를 기다리며 올려 다본 새까만 새벽하늘엔 비현실적일 정도로 많은 별들이 떠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떨어지는 별똥별에 나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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