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녀딸은 못하는 게 하나도 없네

7. 나의 9살(_1).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by Sophi Perich


시골은 봄과 가을이 제일 바쁘다. 봄엔 논에 거름을 뿌려 며칠 방치해 두었다가 물을 대고 땅 갈이를 해 흙을 한번 뒤집어엎어줘야 한다. 그렇게 땅을 준비시킨 뒤 모내기를 하고 나면 여름은 온통 물과의 전쟁이다. 매일같이 논에 물이 마르지 않았는지 살펴야 하고 조금이라도 말랐다 싶으면 강물을 끌어와 물을 대줘야 했기에 이웃간의 싸움도 곧잘 일어난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 그건 그것대로 고역이다. 세찬 바람에 허리만큼 자라난 벼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면 다른 방법이 없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쓰러진 벼를 삼각형 모양으로 묶어세워서 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해주는 수밖에.


여름 내내 영글고 알이 찬 벼들이 노랗게 고개를 숙이면 가을의 수확이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일일이 낫으로 벼를 베고 탈곡도 볏단을 하나하나 반듯하게 펴서 탈곡기에 밀어 넣어서 했으며 나락까는 기계도 손으로 돌려가며 일일이 다 했다.


까끌까끌한 껍질 때문에 온몸을 벅벅 긁으면서도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손으로 전부 다 했었다.


어느새 겨울이 끝나고 부산스러운 봄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날도 아침 일찍 마구간에서 소를 끌고 나왔다. 할머니는 뒷밭에 채소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소 쟁기를 들고 논으로 가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찰랑 찰랑 물이 담긴 논에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허벅지까지 오는 노란색 고무장화를 바짝 올려 신었다.


이랴이랴, 오전 내내 논갈이를 했다. 나는 논두렁에 무너진 흙이 없는지, 물이 새는 곳이 없는지 살폈다. 둑이 무너진 곳엔 논바닥에서 찰흙 같은 흙을 끌어와 단단히 쌓아 올려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흙에서 진한 소똥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 할머니가 식사를 머리에 이고 논으로 왔다. 개울에서 손을 씻고 오자 계란을 푼 육수에 하얀 국수 면을 넣고 들기름에 고소하게 볶은 애호박과 김치를 올려서 건네주었다. 할아버지는 싱겁다며 양념장을 더 넣었지만 나는 그대로가 좋았다. 들기름이 둥둥 뜬 감칠맛 나는 국물과 고소한 국수 면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국수 한 그릇을 금세 비운 할아버지는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한 병을 모두 마셨다. 할머니와 나는 집에서 미리 타온 달짝지근한 미숫가루를 나누어 마셨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는 오후 내내 소 쟁기를 끌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물에 젖어 질퍽거리는 땅이 쟁기 끝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뒤집히는 것이 봐도 봐도 신기해 내가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게에 여분으로 있던 노란 고무장화를 내 다리에 신겨 주었다. 미끄덩거리는 논바닥의 감촉이 썩 좋지는 않았다.

힘이 없어 쟁기를 땅 속으로 밀어 넣기는커녕 똑바로 잡고 있는 것도 힘들어 표면만 긁어 대며 앞으로 나아가는데도 할아버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내 옆에서 한 손으로 쟁기를 잡아주며 할아버지가 그랬다.


잘한다고, 우리 손녀딸은 못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너무 잘해서 할아버지가 더 할 일이 없다고.


그렇게 할아버지가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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