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M도 교복을 입혀 놨으면 참 예뻤을 낀데

9. 나의 9살(_3).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by Sophi Perich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나이가 같았던 친구 Y와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였던 여자아이 M, 그리고 남자아이 K,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학교에 갔다.


버스는 오전 5시 반, 오후 12시와 5시, 그리고 밤 9시 반, 이렇게 네 번 있었는데 밤 9시 반에 들어온 버스는 다음날 새벽 첫차 시간에 맞춰 진주 시내로 나갔다. 우리가 학교에 갈 시간에는 아예 버스가 없었을 뿐 아니라 20채 남짓한 동네에 차가 있는 집도 없었기에 우리는 매일 왕복 두 시간을 걸어 다녀야 했다.


짙어진 봄 내음을 맡으며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알록달록 작은 나비들이 들꽃 위를 날고 예쁜 새소리가 산들바람에 실려왔다. 이제 막 올라오는 쑥을 만지작거리던 Y가 나중에 학교 마치고 오면 쑥을 캐러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M과 K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K는 남자아이라 그런지 쑥 캐는 게 재미없다며 거절했고, M은 같이 가고 싶은데 쪼그려 앉는 게 안 돼서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쯤 되었을까. M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이제는 양팔을 앞으로 뻗어 둘러 잡기 힘들 정도로 불러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했지만 M은 토가 나올 것만 같아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했다. 오줌을 오랫동안 안 눠서 그런 것 같다며 화장실에 앉아서 오랫동안 오줌을 누라고 K가 제안했지만 M은 오줌이 마렵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억지로 오줌을 야 배가 꺼질 거라며 K는 심각한 얼굴로 재차 강조했다.

온몸이 노랗게 뜬 M이 또 목덜미를 벅벅 긁었다. 하도 긁어서 피가 나는데도 M은 너무 가렵다며 미친 듯이 긁어댔다. 우리는 피부가 노랗게 변한 건 단무지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며 절대로 단무지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M은 단무지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M의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M의 엄마는 동네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거는 고약한 사람이었다. M과 함께 놀고 있으면 그녀의 엄마는 M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며 불같이 화를 냈고 자주 그녀를 때리기도 했다. 우리도 M의 엄마가 무서웠기에 점차 같이 노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종내는 M을 빼고 우리 셋만 모여서 노는 경우가 허다했다.


M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져 진주 시내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의 아빠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M은 간암으로 9살에 죽었다. 지능이 낮은 M의 엄마가 아이들이 어릴 때 맞았어야 하는 예방 접종을 하나도 맞히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라며 동네 할머니들은 혀를 끌끌 찼다.


해 학교를 일찍 들어간 나는 원칙적으로는 M과 동갑이었다. M이 떠나고 난 뒤 M의 아빠는 나를 볼 때마다 울었다.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며 유난히도 서럽게 울었다.


"우리 M도 교복을 입혀 놨으면 참 예뻤을 낀데... 내가 니를 볼 때마다 M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라고 말하며.




M의 엄마는 유난히도 새까맣던 M의 머리카락을 바가지 모양으로 아무렇게나 잘라주었다. 쥐 파먹은 것처럼 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던 M은, 길게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내 머리카락과 알록달록한 머리핀이 예쁘다고,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


항상 주눅이 든 얼굴로 눈치를 보던 M의 얼굴이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새까만 바가지 머리와 늘 움츠려 있던 그 작은 어깨만 기억이 날뿐.


오늘, 어린이날.

나의 어린 시절처럼, M의 어린 시절처럼,

아이들이 적어도 부모에게 학대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M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지금의 어린이들은 절대로 겪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면서 M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갔다.

그저 안타깝고 안 됐다고만 생각했던 M의 죽음은, 슬픔을 지나 일종의 분노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가끔 궁금했다.

아주 짧은 생을 살았던 M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여자아이로 태어났다고 늘 엄마에게 구박받던 M이 남자아이로 태어났었다면

그랬다면, M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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