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작은 동네가 유난히도 북적거렸다. 구불거리던 논의 가장자리를 네모 반듯하게 만드는 경지 정리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여러 대의 포클레인과 일꾼들이 동네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 살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정확한 연도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경지 정리 때문에 한 두해 농사를 쉬었던 것도 같은데 그것도 확실하지가 않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진주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지금은 없어진 진양군 소속이었다. 군(郡)에서 농사를 쉬는 만큼 각 가정에 돈을 지급했지만 턱없이 적은 돈에 동네 어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네모 반듯하게 정리된 논에서 기계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할 목적으로 경지 정리를 추진했으면서 뒤집어엎은 땅속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돌은 농민들이 알아서 치우라는 듯 나 몰라라 한 것이었다. 돌을 치워 주는 일꾼들이 있기는 했지만 보이는 곳의 큰 돌 몇 개만 치워주기만 할 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이 있으면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기계로 어떻게 농사를 지으라는 거냐며 어른들은 아무 죄도 없는 일꾼들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땅은 헤집어지고 돌은 쌓여가는데 뾰족한 계획이 없던 군(郡)을 믿고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었다. 농사를 지어야 하니 힘들어도 돌을 걸러내는 수밖에.
산골짜기 구석까지 계단 형태의 논을 가지고 있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포클레인과 일꾼들이 아무렇게나 헤집어 놓은 논에서 커다란 돌을 걸러내느라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커다란 돌멩이를 소쿠리에 담아서 산비탈 아래로 끝도 없이 굴려 보내고 갈고리로 잔 돌을 걸러내고 솎아냈다. 쉼 없는 중노동에 두 분의 허리가 심각할 정도로 굽어 들었다.
할머니는 그 이후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경지 정리 때문에 골병이 들었다고.
진양군에서는 제대로 돈도 주지 않고 농민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거라고.
고작 10살이었던 나는 그런 속 사정까지 알지 못했다. 그저 동네를 찾은 낯선 사람들에 신이 났고 처음으로 보는 포클레인이 신기할 뿐이었다.
나와 Y, 그리고 K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같이 포클레인이 있는 곳으로 놀러 갔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였던 포클레인 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놀러 와서 구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바로 논으로 뛰어갔다. 마침 우리 논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아저씨는 우리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주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논둑에 앉으니 아저씨는 보란 듯이 포클레인 버킷으로 가뿐하게 흙을 퍼올려 반대쪽으로 옮겼다. 우리는 흙이 옮겨질 때마다 "우와-!" 하며 함성을 내질렀고, K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도 아저씨는 우리의 환호가 재미있는지 쉬지 않고 장난을 쳤는데, 국자 모양의 버킷을 아래로 향하게 해 우리를 그 속에 가두기라도 하겠다는 듯 머리 바로 위에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K가 톱니바퀴처럼 생긴 버킷의 끝에 매달리면 K를 내 머리 높이만큼 들어 올려 주기도 했다. 특히나 논가에 앉아있는 우리 셋의 머리 위로 보드라운 흙을 퍼서 흩뿌리고는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우리를 보며 그 아저씨도 참 많이 웃었다.
일이 마무리될 때쯤, 아저씨가 버킷 앞에 그물망을 달며 들어가 앉으라고 했다. 우리 셋은 그 순간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버킷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물망을 단단히 고정한 아저씨가 포클레인 안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러 이것저것 조종하자 버킷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붕 떴다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고 좌우 양옆으로 몸이 휩쓸리며 흔들렸다. 우리 셋은 함성을 지르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한번 태워준 아저씨가 버킷을 땅으로 내리자 우리는 양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한 번만 더요! 한 번만 더요~~~!!!"
아저씨가 포클레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아~ 안되는데~ 집에 가야 되는데~~" "아~~~! 아저씨~~~ 한 번만 더요~ 네? 네??"
껄껄 웃으며 괜히 뭉그적거리던 아저씨가 다시 버킷을 들어 올려 더 빠르게 좌우사방으로 움직여 주었다. 늦은 오후의 포근한 들판 위로 우리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렇게 서너 번을 태워준 아저씨가 버킷을 내리고 앞에 묶여 있던 그물망을 풀어준 뒤 우리 머리 위에 엉망으로 묻어 있는 흙을 털어주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저씨는 안전 문제로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동산은커녕 놀이기구도 한번 타보지 못한 우리 셋에겐 아저씨의 포클레인이 최고의 놀이기구였고 눈곱만큼도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아저씨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억들은 그날의 온도와 습도, 공기 중에 스며있던 냄새와 바람의 온기까지 전부 느껴질 정도로 선명한 것들이 있는데 이 기억이 그중의 하나이다.
머리 위로 떨어지던 보드라운 흙의 감촉과 늦은 오후의 특유의 아늑함, 버킷 안에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앉아있던 우리 셋의 기대에 찬 함성과 포클레인 너머 붉게 타오르던 석양,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을 안겨준 아저씨의 환하게 웃던 얼굴과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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