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역 새벽 시장에 쌀을 팔러 갔던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아빠의 가게를 찾았다. 인감도장을 가지고 사라졌던 아빠와 언제, 어떻게 다시 연락이 닿았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아빠의 가게를 몇 번 와본 듯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갑자기 나를 끌고 나타난 할머니를 본 아빠가 정색을 하며 대뜸 소리를 질렀다.
"연락도 없이 만다꼬 또 왔소? 요가 오데 오고 싶을 때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와도 되는 덴 줄 아소? 미리 연락을 주든가!!"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조잡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 구석에 있던 아빠의 가게는 나무로 된 좌판을 바닥에 깔아놓고 별의별 걸 다 팔고 있었다. 땅을 담보로 그 많은 돈을 빌려 가서 차린 것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가게였다.
"와? 내가 못 올 데 왔나? 이기 니끼가? 이 가게도 붙어 있는 집도 전부 다 내하고, 니 아부지 돈으로 샀는데! 우째서 이기 니끼고?"
"씨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능교!!"
두 사람의 실랑이에 방 안에 있던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가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여자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옆에 서 있던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할머니는 과하게 큰 침대 때문에 방안에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가게 안에 있던 작은 테이블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니가 진 빚 때문에 역전에 가서 또 쌀팔고 왔다. 2시 기차 때까지 시간 있응께, 중국집에서 점심 시키바라. ㅇㅇ이는 짜장면, 내는 우동."
아빠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역에 가서 사 묵고 가소!"
"시키라! 내가 그 정도도 니한테 못 얻어 묵나? 니가 내팽개친 딸내미도 내하고 니 아부지가 키우고, 니가 진 빚도 우리가 다 갚고 있는데 니한테 내가 점심 한 끼도 못 얻어 묵냐 이 말이다!!"
옆에 선 여자의 눈치를 보던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딸이 오데 있다고 그라요? 저거는 내 조카지. 오데서 내 딸이라 카요?"
"조카라꼬? ㅇㅇ이가 니 조카라꼬? 그기 지금 말이가, 방구가? 딸내미가 듣는데서 그기 지금 할 말이가!!!"
"이 할마시가 노망이 났나!!"
"그래, 좋다! 그라모 니 애미랑 조카한테 점심 한 번 사바라. 불쌍한 니 애미하고, 니 조카한테 점심 한번 사바라 이 말이다!!!"
할머니는 작정을 한 듯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쳐가며 가게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아빠는 입에도 담기 힘든 험한 욕을 하며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고 어물쩍대던 여자도 아빠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 넘게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몇 번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빨리 가라며 재촉을 했고 나중에는 할머니를 살살 구슬리기까지 했다. 옆에서 한숨을 내쉬던 여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 뒤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끝내 아빠는 짜장면과 우동을 사주지 않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자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역전의 중국집으로 향했다. 짜장면과 우동을 시켰다. 우동을 먹으면서 손을 떨던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가 버린 손녀딸을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치가 보였던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짜장면과 우동, 두 그릇에 고작 오천 원 남짓.
아빠는 그때 오천 원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오천 원이 아까웠던 것일까.
도서 구입: 종이책 & 전자책종이책은 빠른 배송이라 웹사이트에 보이는 것보다 빨리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당일배송 또는 1 ~ 3일 이내로 바로 발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