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진 어느 날, 한창 수업을 듣고 있는데 창문가에 검은색 정장치마에 검은색 재킷을 입은 낯선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지 안쪽을 바라보도록 내버려 두던 선생님은 친구들과 구시렁대며 여자를 힐끔거리던 나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으라고 했다.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자리에 앉으며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긴장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어디서 온 사람인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체력장 검사했었잖아! 그때 점수가 낮은 사람들 다시 검사할라꼬 진주 시내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아이다! 며칠 전에 접종 안 맞은 사람들 때문에 온기다! 주사 무섭다꼬 안 맞은 사람들 있었잖아!"
교무실에 다녀왔던 반장이 교실로 들어서며 그 여자가 나를 찾아온 거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안 맞아도 되는 거라고 해서 주사를 맞지 않았었는데 아이들 말대로 내가 그때 주사를 안 맞아서 찾아온 게 분명했다.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찾아와 나를 불렀다. 주사 맞기 싫다며 꾸물거리는 나를 선생님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주사 맞는 거 아니니까 겁먹지 말라고.
교무실에 가니 선생님 책상 옆에 그 낯선 여자와,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 차림의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여자를 가리키며 내 엄마라고 했다. 여자는 어깨를 움츠린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울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여자를 쳐다보기만 했다.
당황한 듯 머뭇거리던 선생님은 옆에 앉은 여자가 내 엄마라고 한 번 더 말해주었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금방 가르쳐 줘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색하게 앉아 있던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 앞에 검은색 자동차가 서 있었다. 유난히도 깨끗한 자동차가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과 대조를 이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니 아까 본 엄마라는 사람과 낯선 남자가 대청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작은 상 위엔 선생님들 가정 방문 때나 사용하던 커피잔에 커피 받침, 커피 숟가락이 올려져 있었고 가을 추수로 한창 바쁜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어쩐 일로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커다란 종이 상자 여러 개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딱딱한 종이 상자 안에는 낱개로 포장이 된 예쁜 간식들이 들어있었는데 예전에 친구 Y가 말했던 백화점이란 곳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비싼 것들 같았다. 안에 팥 앙금이 든 것도 있었고, 달달한 초콜릿이 입혀진 것, 그리고 꼭 동그란 떡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엄마는 옷도 사 오고 싶었으나 내가 얼마나 컸을지, 키나 몸무게가 얼마나 될지 몰라서 사 오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가 간식 중에 하나 먹어보겠냐고 해서 팥 앙금이 든 간식을 하나 꺼내 먹었다. 쫀득거리는 간식을 깨어 물자 안쪽의 달달한 앙금이 톡 터지며 입안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져 하나 먹고 난 뒤 마당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엄마는 한참 그곳에 앉아 나를 지켜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아무런 말 없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 전, 엄마와 낯선 남자가 일어났다. 할머니와 함께 대문까지 배웅을 나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엄마가 내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안녕히.... 가세요...."
그러고는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울었다.
나는 슬프지도 않았고 미안하지도 않았기에 울지 않았다.
엄마와 낯선 남자는 그렇게 떠났다. 내가 엄마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 안 보고 싶나?"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꼬... 불쌍하다, 불쌍해." "엄마 따라서 안 가고 싶드나?"
그전에도 그랬지만 엄마가 다녀가고 난 뒤, 동네 할머니들과 고모들의 질문의 강도와 횟수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의 유년기에서 가장 받기 싫었던 엄마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 죽기보다 듣기 싫었던 불쌍하다는 말.
엄마가 보고 싶지 않냐며 묻는 어른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눈물을 기대했을 테고 슬퍼하는 아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거짓 위로하며 스스로를 월등한 인간이라 착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낯선 사람이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엄마라는 존재를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엄마라는 존재가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기에 엄마를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나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매번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어른들이 기대하는 모습은커녕, 그 질문에 반응하는 것조차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두고 어른들은 내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대답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말해봤자 어차피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해석할 것이기에 굳이 정정하려 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 알게 되었다. 그때 엄마는 아빠와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 시골집을 찾은 것이라는 걸.
같이 온 남자는 재혼을 하기로 한 남자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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