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교였던 학교가 폐교를 했다

14. 나의 12살(_1).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by Sophi Perich


분교였던 학교가 폐교를 했다. 국민학교 5학년이 된 나와 친구들은 지금의 분교보다 3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했던 조금 더 큰 학교로 옮겨야 했다.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자전거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그 학교를 염탐하기 위해 내려갔었는데, 키가 큰 나무 사이로 보이는 쓰레기장과 소각장을 보곤 하나같이 기겁을 해 소리쳤다.

"학교가 너무 더럽다!"
"이렇게 더러운 학교에 내년부터 와야 한다니, 절망적이다!"

그 소리에 소각장에서 종이를 태우고 있던 남자아이 네 명이 소리를 꽥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 학교까지 따라온 아이들은 학교 정문에 무슨 선이라도 그어진 듯,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그 앞에 서서 악을 썼다.

"분교 주제에 말이 많다."
"너네 학교가 더 더러운 데다 새집처럼 작다!"

나를 포함해 운동장에 서있던 여학생들이 전부 울었다. 5학년과 6학년 오빠들이 뛰쳐나가 그 아이들을 쫓아냈는데 따라온 아이들은 모두 4학년, 나와 동갑이었던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학교로 새 학기부터 옮겨야 한다니... 그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어야 한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 첫날,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를 하고 각 교실로 배정받아 들어갔다. 분교에서 내려온 열두 명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원래 학교에 있던 열두 명의 아이들과 짝을 지어서 앉아야 했다. 나는 안경을 낀 조그만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20대 중반의 단정한 단발머리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차분한 성격에 조용조용 우리의 이야기를 찬찬히 다 들어주고 사소한 일에도 많이 웃어주는 분이었다.

새 학교로 옮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 번째로, 급식소가 있어서 더 이상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에 학부모 중 한 명은 급식 배당을 위해 돌아가며 한 달에 한 번씩 학교로 와야 했었는데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가 학교에 오는 게 너무도 좋았다. 극도로 설레어서 오전 내내 엉덩이가 들썩거렸고 점심시간에는 할머니가 급식을 전부 배당할 때까지 식당에 남아서 할머니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었다. 밝은 미소가 예뻤던 영양사 선생님은 할머니가 학교로 오는 날은 늘 나에게 장난치듯 말했었다.

"예쁜 ㅇㅇ이랑 닮은 분이 오셨네~ ㅇㅇ이는 좋겠네~~."

그리고 커다란 변화 두 번째는 바로 스쿨버스의 운행이었다. 학교에서 제일 멀었던 우리 동네까지 운행이 되었기에 더 이상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나 턱이 덜덜 떨리는 한 겨울에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선이 짙은 잘생긴 얼굴에 운동을 좋아했던 스쿨버스 기사 아저씨는 한 번씩 동네 할머니들이 스쿨버스를 시내버스처럼 이용해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고 항상 친절하고 예의 발랐다.

Y와 K, 그리고 나는 새 학교에 빠르게 적응했으며 점점 새 학교를 좋아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급식소 앞에 있던 잔디밭에서 한 시간 정도를 뛰어놀았는데 나는 그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도 좋았고 나를 예뻐했던 영양사 선생님도 좋았고 언제나 밝은 얼굴의 스쿨버스 기사 아저씨도 좋았다. 나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게 빠르게 적응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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