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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J Sep 26. 2017

동양인의 몸속 장기는  서양인의 장기와 다른가?

한의학과 양의학에서 말하는 장기 기능 •생리의 차이에 관한 사적인 생각

한의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마치 실뭉치가 섞인 실타래를 풀어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한의를 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자기 맥은 어떤지 봐달라, 어디가 안 좋은데 왜 그러냐.. 등등 여러 질문들을 해댄다. 그 설명에 답하다보면 어려운 한의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한의적 설명이 그대로 나올 수가 있다. 신장이 허하다, 위가 실하다는, 한의학 방식으로 설명하다보면, 상대방은 '얼마 전에 병원가서 검진 받았는데, 신장이나 위가 아무 이상없이 건강하다는데?'하면서, 왠지 의심어린 눈초리로 날 바라보는 걸 느끼게 된다. 한의에서 말하는 장기의 기능은 양방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왜 다른지 되묻는 사람도 있다. 나 조차도 그 누구에게서 한의학에서 말하는 장기의 기능이 왜 서양의학의 것과 다른지, 얽혀진 실뭉치를 말끔히 풀어내듯이 이해가 쉽게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주요 장기와 서양의학의 장기의 기능은 교집합적인 부분도 있지만, 서양의학에서 더욱 세분화되어 나타나는 장기 - 신경, 선(腺), 동맥, 정맥 등 - 가 한의학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다른 장기의 기능으로 흡수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이유에는 이런 것들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의학을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으로 비치게 만든, 한의학의 해부 장기와 서양인의 해부 장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동의보감에 나타난 <신형장부도>


수천 년 동안 한의학에서는 인체는 기본적으로 오장육부 (五臟六腑)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왔다. 오장 (五臟)은 간, 심, 비, 폐, 신이며, 육부 (六腑)는담, 소장, 위, 대장, 소장, 방광, 삼초이다. 오장에 심포를 더해서 육장이라고도 한다. 한의학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인 심포와 삼초를 제외하면, 현재 우리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장기의 구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그 기능에서는 차이를 보이는데,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 신 (腎)의 기능에는 정 (精)의 저장, 생장•발육•생식을 주관, 수액 주관 등이있고, 서양의학에서 신의 기능은 체액조절 기능, 배설 기능, 혈압조절 기능,호르몬 기능[1] 등이 있다. 공통되는 기능은 신체 내의 수분을 조절하는 기능정도이며, 정 (精)이라는 개념이라든가, 인간의 생장•발육•생식에 관한 기능은 서양의학에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혹시 서양의학을 들여올 때, 용어가 섞여 사용한 것이 이런 차이를 야기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서양 의학서 번역의 과정에서 생긴 혼선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우리가 쓰는 의학 용어는 18세기 일본의 최초 번역 서양 해부서인 『해체신서 (解體新書)』에서부터 비롯된다. 일본 에도시대의 나가사키 지역에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교역을 하면서, 네덜란드 의사들이 행하는 의술을 어깨너머로 보고 시술하던 일본인들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네덜란드의 학문을 책을 통해 드러내놓고 배울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니었을 때, 스기타 겐파쿠 (杉田玄白)라는 의사 (이때는 서양의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의학을 토대로 간단한 외과술을 네덜란드 의사들로부터 배운 의사였다)가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네덜란드의『타펠 아나토미아 (Tafel Anatomia)』를 번역하게 된다. 번역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번듯한 사전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었고, 교역을 위해 일하던 통역관들도, 지금으로서는 통역이라고 하기에도 낯 뜨거운, 손짓 발짓에 가까운 통역을 하고 있었던 데다가, 의학에 지식이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부서의 번역은 거의 모든 단어의 추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스기타 겐파쿠의 『해체신서 (解體新書)』


의학용어를 한자어로 옮기는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번역 방법을 스기타 겐파쿠는 『해체신서』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번역 (飜譯)이라고 한다. 둘째는 의역 (義譯)이라고 한다. 셋째는 직역 (直譯)이라고 한다. 「벤데렌 (Beenderen)」이라는 단어는 뼈(骨)이다. 이것을 뼈라고 옮기는 것이 번역이다. 「카라카벤 (kraakbeen」이라고 하는 단어는 뼈에 있는 부드러운 것을 가리킨다. 「카라카」라고 하는 것은 쥐가 그릇을 갉아먹을 때 내는 소리를 이른다. 그로부터 연(軟)하다라는 의미를 취하고, 「벤」이라고 하는 것이 「벤데렌」을 줄인 것이므로 이를 옮겨 연골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의역이다. 그리고 「키리이루」라고 발음하는 단어는 이것에 상응하는 단어가 동양의학에는 없고, 그 의미를 취하려고 해도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그것을 그대로 「機里爾 (키리이루)」라고 옮겼다. 이것이 직역이다.
                                                                                                                  …  『해체신서』 범례 중


즉, 네덜란드어에 상응하는 일본어 (주로 한자어)가 있었을 경우에는 그것으로 옮겼고, 네덜란드어에 상응하는 일본어는 없었지만, 네덜란드어의 뜻을 취해서 단어를 만들 수 있는 경우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응하는 일본어도 존재하지 않고 네덜란드어의 뜻을 취해서도 만들수 없었던 단어는 네덜란드어의 음을 따서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예를 들어, Liver, Heart, Spleen, Lung, Kidney 등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를 옮길 때는, 한의서를 통해서 이미 존재했던 한자어인 간 (肝), 심 (心),비 (脾), 폐 (肺), 신 (腎) 등을 취해서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연골, 동맥과 같이, 동양의 의학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원어의 뜻을 취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스기타와 그 동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의역해낸 많은 단어들을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 한 개인의 의지가 이룰 수 있는 일이 우리의 상식보다 훨씬 대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갑상선, 이하선이라는 말에 붙어있는 ‘선 (腺, 영어의 gland)’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는 원어의 음을 따서 그대로 ‘키리이루’라고 옮겼다. 또 이 직역의 범주에 들어가는 장기 중의 하나는 췌장이다. 아직 『해체신서』에서는 췌장을 ‘큰 키리이루 (大キリイル)’라고 쓰고 있다. 여러 선 (腺)들이 집합된 것이기도 하고, 원문에 Klier•bedde (bed of glands)라고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췌장’이라는 단어는 이후에 우타카와 겐신 (宇田川玄眞)이 ‘췌 (膵)’라는 한자어를 만들어 붙인 명칭이다. 췌장을 이르는 Alvleesch라는 네덜란드어가 Al (모든)과 vleesch (肉)의 합성어이므로,고기 육 변 (月)에 모을 췌 (萃)를 붙여서 만들어낸 것이다.


고대 동양 – 중국 – 에서도 해부를 했다는 기록이 한의학의 경전이라고 하는 『황제내경』에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인간의 몸을 훼손하는 행위를 터부시하는 인식과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해부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인체의 생리에 대한 의문이나 탐구는 계속되었고, 인체의 생리 탐구에 철학적 관념의 색채가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음양이라든가 오행이라든가 하는 사상들이 형성되면서 의학에도 적용되어, 인간의 몸과 장기를 음과 양으로 나누고, 오행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인간 인체 생리 시스템을 음양과 오행의 순환과 작용으로 이해한 것이다.


 

음양
오행


반면, 서양에서는 이와 다르게 발전했다. 인체의 훼손에 대한 두려움은 서양에서도 있었지만, 데카르트 철학 이후, 서양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게 되고, 인체에 대한 해부와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져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인체에 대한 의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서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동양의학 (한의학)의 장기는 관념적인 요소가 훨씬 더 많이 내포된 형이상학적 장기이며, 서양의 장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닌 형이하학적 장기인 것이다. 따라서 형이하학적인 관점에서 형이상학적 장기를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같이 보이지만, 동양의학 (한의학)의 장기에게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논리분명히 존재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같은 단어 – 간, 심,비, 폐, 신 등 – 를 사용하지만, 동양의학 (한의학)의 것들과 서양의학의 것들은 전혀 다른 장기라는 것이다. 서양의 해부서를 최초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이미 존재하던 형이상학적 장기의 이름을 빌어 서양의 형이하학적 장기에 이름 붙이기를 한 결과가 개념의 혼동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인체를 보는 전혀 다른 잣대를 갖고 있는데, 이 전혀 다른 잣대를 가지고 ‘내 잣대로는 분명히 이런데 왜 너는 그렇지 않고 다르냐?’라고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과학적 태도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면서, 관념적인 요소가 많은 동양의학만이 옳다고 무조건 고수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앞으로 발전하는 과학이 동양의학의 관념을 점차 씻어낼 수 있다고 믿는 동시에, 수천 년 간 이루어진 동양의학의 임상적 기록을 서양의학이 무시하지 않는다면 의학은 앞으로 더 비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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