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하다 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어쩐지 기분이 좋더라.
첫 진단은 주요우울장애였다.
지금까지 우울증인 줄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몇 년 뒤 소견서에 적힌 내 병명은 양극성 정동장애였다. 양극성 정동장애, 그러니까 조울증이라는 게 내 생각과 행동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재작년 겨울,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을 때는 자지도 먹지도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녔고, 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 그렇게 에너지를 끌어모아 쓰다 보니, 어느 날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비상약이 항상 필요했고 차도에 뛰어들 것 같은 자살사고에 시달렸다. 기분이 high 했을 때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입원하고 말았다.
재작년 입원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내 기분 그래프는 여전히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폭을 그리고 있었다. 높아진 기분을 즐기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생각과 말을 빠르게 한다. 롤러코스터가 정점을 찍은 줄도 모른 채, 그러니까 내 상태가 어떤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 충동적인 행동들을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롤러코스터는 빠르게 하강하고 나는 다시 매일 울기 시작한다. 왜 자꾸 죽고 싶단 생각이 들까. 외로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고 울고 싶어 죽겠고 죽고 싶어 죽겠다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치고 상처받았다.
울증의 골짜기에서 선생님은 바보같이 시간을 보내라 하셨다. 잠을 더 많이 자고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보라 하셨다. 약 덕분에 14시간을 의식 없이 보냈고 사진을 보정하며 시간을 때웠다. 생각이 느려져서 사소한 판단조차 하기 힘들었다. 밥을 뭐 먹을지, 아니 먹기는 할지, 카페를 갈지, 집에 있을지. 그래서 조증일 때가 더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행복의 연속이라서,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밝고 명랑해서. 선생님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우울한 것보다는 낫다고 여긴다고.
조증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울증의 골짜기도 깊다. 0을 기준으로 –5점과 +5점이 있다면, 내 목표는 0과 +1 사이라고 하셨다. 너무 높아도 문제 너무 낮아도 문제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상태가 괜찮아졌을 때 나를 더 돌보는 일이다. 운동을 하고, 차를 마시고, 햇빛을 쬐고, 취미를 찾기. 완쾌란 없고 치료가 아닌 치유가 목표여야 한다. 즉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