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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Dec 13. 2022

조울의 산과 골짜기 사이에서

한동안 조용하다 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어쩐지 기분이 좋더라.

첫 진단은 주요우울장애였다. 

지금까지 우울증인 줄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몇 년 뒤 소견서에 적힌 내 병명은 양극성 정동장애였다. 양극성 정동장애, 그러니까 조울증이라는 게 내 생각과 행동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재작년 겨울,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을 때는 자지도 먹지도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녔고, 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 그렇게 에너지를 끌어모아 쓰다 보니, 어느 날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비상약이 항상 필요했고 차도에 뛰어들 것 같은 자살사고에 시달렸다. 기분이 high 했을 때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입원하고 말았다.


재작년 입원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내 기분 그래프는 여전히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폭을 그리고 있었다. 높아진 기분을 즐기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생각과 말을 빠르게 한다. 롤러코스터가 정점을 찍은 줄도 모른 채, 그러니까 내 상태가 어떤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밝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 충동적인 행동들을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롤러코스터는 빠르게 하강하고 나는 다시 매일 울기 시작한다. 왜 자꾸 죽고 싶단 생각이 들까. 외로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고 울고 싶어 죽겠고 죽고 싶어 죽겠다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치고 상처받았다.


울증의 골짜기에서 선생님은 바보같이 시간을 보내라 하셨다. 잠을 더 많이 자고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보라 하셨다. 약 덕분에 14시간을 의식 없이 보냈고 사진을 보정하며 시간을 때웠다. 생각이 느려져서 사소한 판단조차 하기 힘들었다. 밥을 뭐 먹을지, 아니 먹기는 할지, 카페를 갈지, 집에 있을지. 그래서 조증일 때가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행복의 연속이라서, 아이디어가 샘솟아서, 밝고 명랑해서. 선생님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우울한 것보다는 낫다고 여긴다고. 



조증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울증의 골짜기도 깊다. 0을 기준으로 –5점과 +5점이 있다면, 내 목표는 0과 +1 사이라고 하셨다. 너무 높아도 문제 너무 낮아도 문제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상태가 괜찮아졌을 때 나를 더 돌보는 일이다. 운동을 하고, 차를 마시고, 햇빛을 쬐고, 취미를 찾기. 완쾌란 없고 치료가 아닌 치유가 목표여야 한다. 즉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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