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얻는 것이 많아요.
필자가 결혼하고 외국에 거주했을 때 겪은 경험담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주말이 되면 남편과 함께 조금 먼 마트를 다녔다. 장을 보기 위함 보다는 드라이브도 하고 데이트하기 위해서다. 마트를 가다보면 방갈로 마을이라고 부르는 주택단지가 나온다. 주말이 되면 앞마당 잔디를 깎는 아이, 카펫을 터는 아이, 세차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매주 보니 약간의 문제점이 보였다. 자세히 보면 힘이 달려서 잔디가 잘 안 깎인다. 카펫의 먼지는 잘 털리지 않는다. 세차라기보다는 차에 물을 뿌리는 정도다. 한마디로 나중에 어른이 다시 해야 한다. 그런데 거의 매주 한다.
힘이 없으니까 잔디 깎기를 밀지 못하네.
지난주도 하던데....
먼지가 안 털려.
저번에도 하던데...
저렇게 세차하면 안 한 것보다
더 지저분해져.
지난주도 하던데....
남편과 나의 대화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본 아이들의 부모는 한결 같았다. 매주 옆 집 그 옆 집도 다 비슷비슷했다.
고맙다.
덕분에 마당이 깨끗해졌네.
깔끔한 카펫을 밟게 해 주어서 고맙다.
이번주도 세차를 해 주어서 고맙다.
지인의 집에 가보면 아이들은 거의 소파에 앉아 있고, 엄마가 과일을 깎아서 내어준다. 다 먹은 접시도 엄마가 치우는 집도 많고 냉장고의 우유도 엄마가 따라서 주는 경우도 자주 봤다.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라면을 끓이지 못해서 끊여 달라고 한다. 물론 안 그런 집도 있었는데 대부분 집안일의 90프로를 어른이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솔직히 엄마가 하고 있었다. 드라마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아도 식사준비, 간식 준비, 각종 집안일은 어른이(엄마가) 한다.
하버들 대학의 리처드 와이스버드 교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는 아이들보다 행복하다고 보고 했다. 미네소타대학의 마틴로스만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3-4세 때부터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이 책임감, 자신감 등이 높고, 10대가 되어 집안일을 접한 아이들보다 자립심과 책임감이 높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님과 상담을 하다 보면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
방 청소를 안 한다.
아직도 필통에 연필을 깎아주어야 한다.
벗은 옷은 세탁바구니에 넣었으면 좋겠다.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지를 않는다.
그렇다. 7살 때 주말마다 힘이 없어도 잔디를 깎아야 17살이 되어도 자연스럽게 잔디를 깎는 것이다. 6살에 주말마다 안 털리는 먼지를 털어야 16살이 되면 당연히 주말이 되면 카펫을 턴다. 5살에 주말마다 자동차에 물을 뿌려야 15살이 되면 세차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다 해주면서 집안일은 어른의 몫으로 알고 성장하다가 10대 되어서 갑자기 어느 정도 컸다고 집안일을 분담하면 안 해보던 일이라 안 하게 된다. 어릴 때 집안일의 역할이 없었다면 점점 집안일은 어색하고 낯설다. 그래서 어질러진 아이의 방 청소를 해주면서 화를 내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버거워 진다. 나누어서 해야 할 일을 오랜시간 엄마 혼자 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다음의 네 가지 기준을 기억하면서 연령 별로 아이와 집안일을 분담하자.
첫째, 시작은 아이가 흥미 있는 분야로 한다. 예를 들면 요리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이 있다. 식사나 간식 등을 분담하면 된다. 기계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도 있다. 세탁기, 건조기, 커피머신 등의 역할을 주면 된다. 아이가 역할을 맡을 수 있게 잘 알려주어야 한다.
둘째, 가급적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자. 예를 들면 아이가 요리를 좋아한다고 매일 김밥을 쌀 수는 없다. 그러니 매주 토요일 아침 식사 준비 또는 매일 아침 커피 담당을 할 수 있다. 루틴으로 할 수 있는 역할과 주기를 정하자.
셋째, 하기 싫은 날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자. 너무 칼 같이 지키기 어려울 수 있지만 흐지부지되는 시점은 보통 하기 싫어서 한 두 번 해 주면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영역이다. 참고 할 수 있게 으쌰으쌰 응원이 필요하다.
넷째, 아이의 나이가 많아지고, 학년이 올라가면 집안일의 영역을 조금씩 변경해 주어야 한다. 집안일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집안일을 하면서 매일 깨끗한 속 옷을 입는 것, 선반 위 물 컵으로 물을 마시는 것, 계절별로 옷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수고로움이라는 것을 생활 속에서 저절로 알게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엄마가 김밥을 싸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라면을 끓여야 한다. 세탁바구니가 넘치면 익숙하게 세탁기를 돌려야 한다. 분리수거 차례를 알고, 내 차례에 능숙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혹자는 집안일에 용돈을 주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기준은 다르다. 다만 용돈을 주고 집안일을 하면, 두 가지 부작용이 따른 다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용돈이 아니면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과 집안일을 하고 일일이 용돈을 요구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염두하고 잘 해결된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가정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고, 내가 하는 집안일이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그냥 했으면 한다.
그래야 많은 연구결과에서 말하는 자립심, 자신감, 공감, 책임감, 통찰력, 행복... 등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집안일을 했을 때 과하게 칭찬하거나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덕분에 매일 깨끗한 속옷을 입게 되어 고맙다고, 아침마다 주는 모닝커피에 마음이 좋아진다고 표현하자.
이제 가족 모두 집안 일의 주어진 분량을 하자. 화내고 잔소리하는 것이 아닌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가정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