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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May 03. 2023

서정적이면서 아련한 사랑이야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의 위대함만큼 심오하고 장엄한 우리 인간들의 인연과 서정적이면서도 아련한 두 남자의 특별한 사랑에 관한 영화다.  

만인이 이해하기 쉽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란 생각을 해보기도 하다가, 이루어지기 힘들고 당시 사회 여건상으론 더욱 불가능하게 보이는 동성 간의 사랑이기에 더욱 절절하고 많이 아련하다 마침내는 아스라한 여운으로 승화되는 그런 이야기의 탄생이 가능했겠지 싶기도 한 게 솔직한 느낌이다.


와이오밍 주의 멋진 산에서 방목하는 양 떼를 돌보기 위해 만나게 된 전형적 남성의 투박함을 지닌, 진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두 남자 아니스와 잭.  그 둘은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정상적(?)인 터프남처럼 보인다.  

사실 다소 외향적으로 보이는 잭에 비해 아니스는 말을 많이 아끼는 차분한 듯 고독해 보이는 남자다.  외로움으로 둘은 점점 가깝게 느끼다가 결국엔 서로를 살갑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둘은 아무 내색 없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비바람이 불고 날씨가 너무 추워지자 한 텐트 안에서 동침을 하게 된다. 

남녀 간도 그렇듯 그 와중 어느새 둘은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된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절대 이해불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런 둘의 절박한 사연은 사실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리라. 

덧붙여 영화의 진행으로 봐서도(이 작품은 사실 소설로 먼저 나왔고,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인데 영화보다는 소설이 서사가 정밀하긴 하다) 둘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는 계기나 그런 것에 대한 배경이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긴 뭐 사랑이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예측불허의 측면이 강한 게 진실이란 사실을 환기해 보자면 그렇게 이상한 설정도 아닐 순 있겠지만.

이렇게 둘의 사랑은 무르익어가지만 쭈빗거리고 소심한 아네스의 모습과 그완 다르게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잭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네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동성애자로 의심받다가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체를 그에게 보여준 경험이 있고 그는 그 일 이후 동성애는 죄악이란 걸로 여겼기에 더욱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잭은 그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는 등 사랑에 더욱 목숨 걸면서 일면 헌신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계약된 일이 끝나고 둘은 각자의 길을 떠난다.  

이전부터 약혼녀가 있었던 아네스는 그녀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둘을 낳고 겉으론 잘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선 왠지 모를 불안감과 어떤 산만스러움을 느낄 순 있다.  

반면 아네스보다 더 충동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성격의 잭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부잣집 딸을

만나게 되고 그 역시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4년이 지난 후 아네스에게 전달된 우편엽서를 계기로 아네스와 잭은 마침내 조우한다.

세월의 간극도 그 둘의 잠재됐던 사랑을 막지 못한 듯 둘은 보자마자 입을 맞추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아네스의 아내는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곤 어쩔 줄 몰라한다.  

그녀 역시 그 시대에 결코 용납될 수도 없고, 듣도 보도 못했을 일에 대하여 가슴앓이를 하며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아네스의 마음엔 온통 잭뿐임을 영화는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잭이 함께 목장을 경영하며 살자고 제의할 때는 뿌리치는 등 우유부단함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그는 고뇌한다.


그 둘은 1963년에 처음 만나 4년 뒤 재회한 후론 규칙적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이런 장면을 보는 이성애자인 내 마음속엔 그들보다 그들의 아내에 대한 연민의식이 점차 들어차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허깨비 남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여자의 입장에서 한없이 안쓰러웠던 거다.  

그리고 어느덧 내겐 아니스와 잭이 진정 서로를 깊이 사랑했다면 적어도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두 주인공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마음이 차올랐다. 

그러다가 또, 아니! 그 당시의 사회구조 상 그건 정말 힘들었겠지라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팽팽히 맞섰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영화는 한 사람은 이혼이라는 해결책으로, 또 한 사람은 죽음으로 자기들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맞서며 서로에 대한 인연의 끈을 놓아 버린다.

우리 인간의 무력함을 위대하고 파워풀한 자연과 대비시켜 보여주므로 그 주제성을 더욱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만한 수작이라 여겨졌다.

 

어떠한 사랑의 형태든 사랑 자체는 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특히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은 옆에서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커다란 공허감과 아련함을 남긴다고 믿는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그것들만의 순수함과 애틋함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사랑의 결말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두 남자를 연기한 배우들의 뛰어난 감성적인 연기에 감흥 받은 바 컸던 게 사실이었고, 그중에서도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지극히 서툴렀던 아네스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연기는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덧붙여 아네스가 잭의 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그가 어린 시절 지냈던 그대로를 보관한 방에 올라가 그를 회상하다가 그의 옷장에서 20년이 넘게 잭이 간직해 온 자신의 피 묻은 셔츠를 발견하곤 자기 집으로 가지고 와 그걸 바라다보면서 라스트 씬에서 잭에게 독백을 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Jack, I swear......." (잭, 맹세할게.....) 


끝맺음하지 못한 이 말은 이루지 못한 둘의 사랑을 혼자서라도 영원히 지켜 나가겠단 맹세 아니었을까? 

비록 잭은 떠나고 없지만 둘의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은 늘 잭과 함께 하겠다는 맹세 말이다.


히스 레저 사후 이 영화를 감상하니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는 말을 사족으로 덧붙이며 이야길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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