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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Aug 06. 2023

섬세하고 천재적인 한 작가의 고뇌를 들여다본 영화

'카포티'


트루먼 카포티.  영화 '카포티'를 보기 전에는 이 작가의 이름을 몰랐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자꾸 이름을 되뇌니 기억이 나는 듯도 싶지만 사실 영화 '카포티'를 보기 전에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서정적이고 깜찍한 영화의 원작자이자, 소설의 새로운 장르라는 '논픽션소설'을 개척한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영화로 주인공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제78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그 밖에도 골든글로브와 LA비평가협회상, 미 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주로는 조연담당이었고 굉장히 인상 깊은 배우였단 기억인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의 잔잔한 듯하면

서도 소름 돋치는 사실적 연기와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카포티의 여성적 목소리까지 재연하는 역할에 대한 몰입에서 충분히 주연배우상을 받을만하다 여겨졌다. 


이 영화의 내용은 실제 존재했던 작가이자 뉴욕의 사교계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던 트루먼 카포티가 어느 날 아침 조간신문의 한 기사를 접하고 운명적이랄 수 있는 흥미를 느끼며 그 사건을 알아내기 위해서 캔자스 주의 조그만 마을로 '앵무새 죽이기'란 책을 쓴 친구 넬(물론 원작가는 하퍼 리다.)과 함께 떠나게 되고 그가 그곳의 수사담당 국장의 차가운 시선을 특유의 재치와 말재주로 접근하면서 사건에 깊이 개입하며 흥미를 더하게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건의 전말은 평화로운 한 마을의 일가족 네 명이 무참히 총으로 살해를 당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아들의 머리에는 베개가 받쳐져 있었고 도무지 원한을 살 것으로 볼 수 없는 착한 사람들의 죽음이었기에 온 마을 전체가 쇼크에 잠겨 있으며 결국에는 두 명의 사건 용의자를 수배하고 그들이 범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거까지 확보가 된 상황이었다. 


트루먼은 출판사 사장의 호의아래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 사건이 자신의 소설의 소재가 될 것을 직감하였고, 여러 루트를 통해 잡힌 범인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을 면담하고 특히나 그중에서도 페리에게 자신과 통하는 공감대를 느끼며 진솔하게 대화를 나눈다.  


페리는 인디언계 미국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을 떠 돌며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는데

트루먼 본인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고, 성의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게이이고 목소리 또한 특이하여 늘 타인의 빈정거림 속에서 자라왔기에 그에게 연민과 동지애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환경 탓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기만의 세계에서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길 좋아했었고, 특유의 감성적 필체로 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가적 능력과 더불어 한 인간을 단편적이고 구태의연하지 않게 따뜻한 마음과 진심으로 대하였기에 페리에게서 그가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내면을 들추어내게 만든다. 

카포티는 그와의 모든 대화를 기록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다가 숙소로 돌아가 자신의 94% 라는 탁월한 기억력에 의지하여 글을 써 내려갔고, 그는 마침내 그의 입에서 사건 당일의 진실을 듣게 된다. 


1959년에 시작된 이 사건은 트루먼의 노력으로 몇 번의 항소와 기각을 반복하며 끌어나가다 1965년에 사형으로 결말을 맞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트루먼은 몇 번이고 감옥을 드나들며 범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심리를 자극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면서 밖의 사람들이 '냉혈한'이라고 부르는 살인자들 역시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고 그들의 환경으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실수 거나 아님 순간적 오판 또는 제어할 수 없는 치명적인 그 무엇으로 인해 일가족 네 명 살인이라는 범죄의 내막을 우리들로 하여금 곱씹게 만든다.  


그는 이 사건을 '인 콜드 블러드'라는 책으로 써 내려가며 그들을 구명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지만,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인 잭의 의심(페리를 사랑하는 감정으로 발전했다고 믿는)까지 받아가며 자신의 작품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고, 사실 이 영화만으로는 그가 진실로 그들을 살리기 원했는지 아님 자신의 작품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센세이셔널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이 사형받기를 원했는지에 대해선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여하튼 영화 상으로는 그는 그들이 사형당하는 곳에 마지막 면담자가 되며 그들과 만나고 눈물까지 보이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그는 그들의 형이 집행된 후 소설을 완성하고 크게 성공을 이루었지만, 이 소설 이후 다른 작품은 쓰지 못한 것으로 마지막 부분에 묘사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은 나의 인간을 바라보는 모습을 바꿔놓았다."라고 덧붙인다. 


영화 속 등장인물인 페리의 입을 통한 다음의 말로 나는 그가 왜 아무 잘못도 없고 반항도 않는 일가족 네 명을 죽였을까란 유추를 해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그가 나 같은 사람에게 느끼는 공포감을 보았고, 그것이 순간적으로 무척이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애감으로 엉뚱하게도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며, 마치 그 한방의 총성이 신호라도 되는 듯 장총을 가지고 위로 뛰어 올라가 아내와 아들과 딸까지 다 쏴 죽여버렸다.  

그 당시에 그에겐 이성이나 어떠한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이며, 그는 그저 자신이 한 한 가지 행동에 연이어 무의식적인 의식을 치렀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곁에 있던 그의 친구 딕은 그를 말리지 못했고 말릴 생각도 못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 역시 우리가 너무도 엉뚱한 일을 당하면 동시에 의식 또한 마비되는 것이 아닐까란 예측이 가능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들이 언제든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느끼며 전율하였고, 아주 사소한 구멍이 나중에 큰 댐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의 잘못된 판단과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인간에겐 겉으론 절대 보이지 않고 또 자신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비밀의 공간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그것이 겁 없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경우엔 뭐라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전개될 수도 있을 거란 두려움이 들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세상의 이치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 아주 서글픈 밤으로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 트루먼 카포티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러므로 그의 작품과 그에 대한 흥미가 일어났음이 사실이고, 앞으로 그에 대한 글을 읽어보려고 맘먹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선 분명히 아주 섬세하면서도 천재적인 작가로서의 소양과 남다른 인생역정과 예민하고도 치밀한 그의 내면이 집힌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 나에겐 올 한 해 큰 행운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딱 떨어지게 흥미로운 '한 인간'을 만난 기쁨이 있다. 

그의 나머지 불행해 보이는 삶에 대해서도 막연한 애정이 샘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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