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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Sep 17. 2023

소설 '할리페' 15

15화 <기묘한 이야기>

한편 성으로 돌아온 후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왕궁에서 아무리 찾아도 시몬느는 보이지 않았고, 

그러다 결국 성으로 돌아와 봐도 이곳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니 왜 아니겠는가?

마음이 불안해진 후작은 급히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말을 타고 그들과 함께 밖으로 달렸다.

근처 숲과 계곡, 평야를 다 뒤지고, 결국 그녀의 사가까지 가봤지만 어디서도 시몬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낙심한 후작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성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탑으로 올라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시몬느는 어디에 있는 걸까? 

왜 그녀는 왕궁 안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춘 걸까? 

그녀가 쓰러져 방으로 옮겨졌고, 조문객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후 그녀를 찾았을 때 거기 사람들은 그녀가 이미 내 성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허겁지겁 여기로 달려왔는데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후작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왕비가 그녀를 해친 건 아닐까? 

내가 그녀를 내 성으로 데려간 걸 알게 됐고, 내가 자기 청을 거부한 것에 앙심을 품고 시몬느를 해친 거라면?’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터질듯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걷잡지 못하게 됐다.

즉시 아래로 내려온 그는 말을 타고 홀로 숲으로 향했다.     

숲엔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깜깜한 어둠뿐 불을 밝힌 그 어느 곳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앞으로만 내딛던 시몬느는 점차 두려움에 휩싸였다. 

가까이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숲을 헤매던 그녀는 지쳐갔다.

그때 저 멀리 작은 불빛이 일렁이는 게 그녀 눈에 들어왔다.

사실 그녀가 숲으로 들어올 땐 모든 걸 단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사랑하는 이를 사악한 여자에게 잃고 더 이상 살아야 할 의욕을 상실했기에 아무도 자길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강했다.     


‘자신의 확고함을 드러내지 못해 멀쩡히 눈 뜨고 도둑을 당한 셈이니 자신 말고 그 누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명민하고 이성적인 후작이지만 그 역시 남자가 아니던가?’      


왜 그를 지켜내지 못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든 게 다 자기 탓 같았다.

하지만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아서였을까?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처음 생각에서 벗어나 어느새 자신의 연적이 되어버린 왕비에게 복수하고, 자신의 사랑을 다시 되찾아오자는 걸로 마음을 고쳐먹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숲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보이는 불빛을 향해 그녀는 지친 두 다리를 재촉해 그곳으로 달렸다.     

그곳에 가까워지니 아주 작은 오두막이 보였고, 그 안에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작은 오두막에서 젊고도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여인이 나왔다.

그녀는 지친 시몬느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동정하는 투로 말했다.     


“아니, 이렇게 늦은 시각에 숲에서 홀로 방황하다니! 진짜 혼자인 거예요?”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리곤 그녀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우리 집을 찾아냈으니.”     


안으로 들어간 시몬느는 따뜻한 난로 곁으로 안내를 받았고, 지친 그녀는 의자에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지만 피곤한 그녀완 상관없다는 듯 난로 위에선 맛있어 보이는 수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는 그녀를 보자 여인이 탄식했다.     


“아휴. 배가 고픈가 보군요. 왜 아니겠어? 

내가 그릇을 가져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요.”     


하며 부엌 쪽으로 갔다.

잠시 혼자가 된 그녀는 노곤해진 몸을 가누기 힘겨워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 발밑으로 작은 다람쥐가 잽싸게 숨어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다람쥐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시몬느님! 절대 그 수프 드시면 안 돼요.”     


처음에 그녀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다람쥐가 말을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또다시 다람쥐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녀의 귀에 들렸다.     


“그 수프엔 독이 들어 있어요. 절대 드시지 말고 졸리다고 말하곤 방으로 가서 자는 척하세요.”     


그때 여인이 그릇을 들고 난롯가로 돌아와 시몬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그이가 마침 본가로 가야 할 일이 생긴 게 다행이지 뭐겠어요? 

남편이 있었으면 좁은 집에서 손님께서 불편하셨을 테니까요.”     


시몬느는 그녀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그녀는 아까보다 더 느긋한 표정에, 더 믿음직스러운 몸놀림으로 정성껏 수프를 그릇에 담고 있었다.

그녀가 시몬느에게 수프를 건네며 말했다.     


“자, 어서 먹어요.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가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로부터 수프를 받아 든 시몬느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그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너무 죄송한데, 아깐 배가 많이 고팠었는데 너무 지쳐서 그런지 입맛을 다시 잃었지 뭐겠어요? 

내일 먹도록 하고 잠이나 좀 잤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일순 그녀의 표정이 바뀌며 시몬느의 손에서 수프 그릇을 뺐더니 이렇게 외쳤다.     


“아니, 배가 고프면 잠도 잘 오지 않아. 어서 먹으라고.”     


하면서 숟가락으로 직접 수프를 떠서 강제로 시몬느 입에 넣으려 했다.

그때 좀 전에 시몬느에게 주의를 줬던 그 다람쥐가 그 여인에게 달려들더니 그녀의 손을 깨물었고,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아니, 이게 뭐야? 웬 다람쥐가 집 안에 있는 거야? 네가 데려온 거야?”     


하며 시몬느를 노려봤다.

그러더니 일어나며 급격하게 다시 사람 좋은 얼굴로 표정을 바꾸면서 시몬느에게 이렇게 눙쳤다.     


“어휴, 집에 다람쥐가 보여 내가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네. 

미안해요. 시몬느님.”     


시몬느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게 실수라는 걸 알아챈 그녀가 당황하며 서둘러 일어나더니 시몬느에게 이렇게 청했다.          


“정 그렇다면, 수프는 내일 먹고 잠자리에 들어요.”     


그러곤 사악한 그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몬느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도착해 방 안을 둘러본 시몬느는 모른 척 능청스럽게 여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호의에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잠을 좀 자야겠어요.”     


침대 쪽으로 간 시몬느는 이불을 걷어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여인이 시몬느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마침내 밖으로 나갔다.

침대에 누운 시몬느는 생각에 잠겼다.     


‘그 다람쥐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저 여인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그때 그 다람쥐가 다시 시몬느 발치에 나타났다.     


“시몬느님! 저 여인은 왕비가 보낸 마녀랍니다. 님을 해치려고 사악한 왕비가 그녀에게 시켜서 수프에 독을 넣은 거고요.”

“그런데 너는 어떻게 말을 하는 거니? 그리고 그 사실은 또 어떻게 알게 된 거고?”

“지금 그 얘길 할 시간이 없어요. 잠든 척하고 있으면 그녀가 다시 와서 확인 후 또 시몬느님을 해치려고 할 거예요. 잠시 후 나타나 확인할 때까지 잠든 척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안심하고 돌아가 일을 꾸미는 동안 절 따라 저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거예요.”     


하면서 창문 쪽으로 마치 손을 사용하듯 앞발을 뻗었다.

다람쥐의 말대로 그 여인의 수상한 행동을 간파한 시몬느는 알았다고 답하곤 여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자는 척했다.

잠시 후 그 여인이 문을 열고 시몬느가 잠들었는지 확인했고, 다시 문을 닫고 나가자 시몬느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갔다.

다람쥐가 소리가 나지 않게 창문을 살살 갉기 시작했고, 잠시 후 창문이 열렸다.

시몬느는 창문을 뛰어넘어 다람쥐를 따라 숲 속으로 달렸다.          


후작이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는 걸 보게 된 집사는 급하게 자신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올빼미를 휘파람으로 불렀다. 

그리고 올빼미 귀에 대고 소리를 낸 다음 올빼미의 눈을 응시했다.

잠시 후 올빼미는 하늘로 날아올라 숲으로 향했다.     


한편, 다르망 후작은 달리고 달려 성에서 가장 가까운 숲으로 갔다.

사방이 너무 어두워져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만약 왕비가 시몬느를 해치려 한다면 가장 손쉽고 흔적이 남지 않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거란 생각으로 그곳으로 갔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몬느를 찾아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타고 오는 게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자 후작은 그가 바로 자신의 집사 알랭이라는 걸 알아봤다.

후작에게 다가간 알랭이 후작에게 하문했다.     


“제게 함께 오자고 하시지 이 밤에 왜 홀로 위험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내가 급한 마음에 자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했네. 

그러고 보니 자네보다 더 이 일을 함께 할 인물도 없는데 말이야.”

“이미 제가 제 전령을 통해 시몬느님의 행방을 찾아보라 했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후작님!”

“그래. 정말 고맙네. 자네 도움 덕에 빨리 그녀를 발견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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