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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Sep 18. 2023

소설 '할리페' 16

16화 <숲의 정령>

후작은 알랭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참 시몬느를 찾기 위해 숲을 뒤지고 있는 그때, 

알랭이 날려 보냈던 올빼미가 알랭의 어깨로 날아와 그의 귀에 대고 뭔가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알랭이 다시 올빼미와 눈을 마주쳤고 잠시 후 올빼미는 다시 날아갔다.

그리고 알랭이 후작에게 아뢨다.     


“시몬느님의 행방을 알았습니다. 함께 가시죠.”     


알랭의 말에 후작은 그를 따라 그가 이끄는 쪽으로 말을 타고 달렸다.

그들이 달리는 방향 저쪽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걸 두 사람은 보게 됐다.

두 사람은 말을 멈췄고, 그 광경을 보던 알랭이 말했다.     


“마녀의 소행 같습니다, 후작님.”

“마녀? 그게 뭐지?”

“왕국에서 돌아오신 후 말씀드릴 여유가 없어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대제님께서는 왕비님께 살해당하신 게 확실합니다. 

마녀에게 사주해 대제님을 해쳤고, 또 시몬느님도 해치려는 걸 제가 막도록 시켰습니다. 

이제 곧 시몬느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후작이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말했다.     


“그랬군, 역시! 자, 어서 가세.”     


둘은 다시 말을 타고 세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다람쥐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 시몬느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숲 속 다양한 동물들이 모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여우와 오소리, 사슴, 멧돼지, 원숭이 등등이 자그마한 램프를 손에 들고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들은 다 다람쥐처럼 말을 할 수 있었고, 다가오는 시몬느를 향해 각자의 방식으로 큰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중 먼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원숭이가 시몬느 앞으로 오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우리 숲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뵙게 되나 했거든요.”     


그들의 환대와 행동에 깜짝 놀란 그녀가 물었다.     


“날 기다렸다고요? 왜죠?”

“시몬느님 덕분에 후작님께서 사냥을 오시지 않아 우리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일이 없어졌거든요. 

그 일에 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그랬군요? 하지만 후작님은 그렇다고 해도 다른 분들은 이곳에 사냥하러 오시지 않나요?”

“아니요. 이 숲은 왕궁과 왕족들, 그리고 후작님만 사냥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대제님께서도 한동안 사냥을 하러 오시지 않다가 오셔서 변을 당하셨고, 

원래 사냥을 좋아하시던 후작님께서 시몬느님 조언에 따라 사냥을 하러 오시지 않으니 저희로선 생명의 위험이 사라진 셈이죠.

물론 우리 각자 천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우리끼리 문제고요.”     


원숭이의 말에 시몬느는 자신이 후작에게 더 이상 사냥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걸 기억해 냈다.

후작이 미래로 가 큰일을 하고 돌아온 걸 알게 된 후 그녀는 생각했었다.     


‘왜 우리는 꼭 우리 인간들만을 위해 뭔가를 도모해야 하는가? 

살아가려면 고기도 먹긴 해야겠지만 필요한 만큼 섭취하는 외 왜 사냥이란 놀이까지 추구해야 하는가?

인류애가 중요한 만큼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도 함께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신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게 맞다면 분명 신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사랑하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일을 할 사람으로 선택받은 이들은 꼭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사냥하기를 멈췄고, 자신의 그런 생각을 후작에게 전달했고, 

그 결과 후작 역시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냥 가길 멈췄던 거였다.

이제 와 그들에게 치하를 받고 보니 자기가 했던 일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물론 말을 할 수 있지만 이들 말고 말 못 하는 짐승 또한 심정은 같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순박하면서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 처연했다. 

생각에 빠져 있는 시몬느를 쳐다보며 그녀를 위험에서 구한 다람쥐가 이번엔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들은 전생에 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못된 짓을 일삼다 이번 생에선 다 이렇게 동물이 되었지요. 

신의 노여움을 받아서요.”     


이들에게도 전생이 있었단 말인가?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많은 걸 착각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누군가도 전생을 가졌었고 그걸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동물들에게까지 전생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생에 나쁜 짓을 하면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 역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왜 처연함이 느껴졌는지 그제야 비로소 알 거 같았다.

그들 중 여우가 말했다.     


“사람으로 다시 환생하지 못했지만, 우리 중 일부는 그걸 다행이라 여기는 부류도 있답니다.

사람 중에 우리보다 훨씬 못한 존재들도 워낙 많고, 그럴 바엔 그냥 동물로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때 사슴이 나섰다.     


“우린 배가 고프지 않으면 어떤 대상도 공격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은 다르죠. 

물론 사람처럼 자유의지를 갖고 있진 못하지만, 단순한 삶이 편하기도 하고요.

참, 이 숲에는 정령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를 다 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감사한 우리 마음을 알려드렸으니”     


그때 숲에 회오리바람이 한차례 크게 일었다. 

그리고 크게 또 한 번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물들이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시몬느 역시 무슨 일인가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의 눈앞에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더니 작은 동물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녀를 멧돼지가 확 낚아채면서 급하게 외쳤다.     


“어서 숨어야 합니다. 저 나무 뒤로.”     


멧돼지를 따라 시몬느가 나무 뒤로 몸을 숨기자 회오리바람이 그들이 모였던 장소 중앙을 또 한 번 강타했다.

일부 동물들이 쓰러져 신음하거나 정신을 잃은 듯 보였는데, 개중에는 생명을 아예 잃은 동물들도 있는 듯했다.

옆에 있던 멧돼지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대제님께서 여길 오셔서 사냥할 때에도 이렇게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그분을 그만...”     


상황이 워낙 급박해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멧돼지가 그녀에게 다시 다급하게 말했다.     


“여기에 계속 있다간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도망쳐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저를 따라서 오세요. 제가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면서 앞장섰다.

시몬느는 그를 따라가며 아수라장이 된 곳을 한 번 더 쳐다봤다.

여전히 그곳엔 동물들이 쓰러지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멧돼지를 따라 들어간 곳은 거기서 멀지 않은 동굴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동물들이 피신 중이었는데 그중 오소리가 그녀를 보자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그런데 왜 요즘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시몬느는 대제님께서 사냥 중 변을 당했다고 말했던 멧돼지 말이 떠올랐다. 

시몬느는 멧돼지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말하려다 말았던 그 얘기가 뭐죠? 대제님께서도 회오리바람에”

“네. 저희들이 분명히 봤어요.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오늘처럼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대제님께서 타신 말을 강타해 대제님께서 말에서 떨어지셨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토끼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선...”     


마음이 다급해진 그녀가 재촉하듯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다시 멧돼지가 입을 열었다.     


“대제님을 호위하던 근위병들까지 싹 다 날려버렸답니다. 

그리고 대제님께서 일어나시려고 하는데 그만...”     


그때 아까 처음 시몬느에게 다가와 인사말을 건넸던 원숭이가 말을 이었다.     


“어디선가 독사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대제님을 물어버렸답니다.”     


‘회오리바람에 독사까지~ 이 모든 게 다 우연일까? 

아니면 카트린의 말대로 이 모든 게 다 왕비의 계략일까? 

진짜 그녀가 자신의 외도를 들키자 왕을 살해한 걸까? 

거기다 나를 살해하기 위해 마녀에게 사주하기까지?’     


그런데 이상했다.      


‘후작님을 품은 그녀가 무슨 이유로 나를 살해하려고 한 걸까? 

후환을 없애려는 거였을까? 혹시라도 후작님이 날 다시 찾을까 봐?’     


애욕에 눈이 먼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듯싶었다.     


‘후작님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그녀에게 아직도 홀딱 빠져있겠지?’     


대제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왕비에 대한 원망이 한꺼번에 그녀에게

몰려왔다.

후작님도 원망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건 쉽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녀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미운데도 미워할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동물들의 근심에 찬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녀는 그들에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길 환대해 주다 사고를 당한 그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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