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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Feb 06. 2024

오래전 베를린 여행 8

화려함과 가슴 싸함이 공존했던 마지막 날

드디어 베를린 여행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이들과 동생네 가족이 기다리는 몬트리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한 편으로는 왠지 베를린을 떠나기가 싫은 야릇한 마음이 되었다.

그동안 집안일에서 정말 벗어나 자유부인처럼 살았던 게 꿈만 같아지면서 말이다.  

매일 외식하고, 호텔방은 메이드가 알아서 청소해주고 했던 그런 편안함에 길들여져 버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좋은 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   그리웠던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을 위로삼아 애써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남편은 그날따라 일찍 누굴 만나러 다녀와야 했기에 어차피 나 혼자 베를린 관광의 마지막 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해서 나는 이참에 지하철도 타 보고, 가보지 못한 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녀야지 결심했는데 남편은 지하철이 몬트리올보다 복잡하니 그냥 택시를 타고 구경하란다.  

워낙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괜스레 일하러 가는데 근심 끼치지 않으려고 알았다고 하곤 일단 택시를 타고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쇼핑몰 'Quartier 206'으로 갔다.



택시기사 양반이 터어키 출신에 처음엔 친절하게 잘 대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사람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부터 일본사람이냐고 물어봐서 조금 기분을 잡치게 하더니만 결국엔 택시비 낼 때 내가 20유로를 줬고, 요금은 10유로가 조금 넘게 나왔는데 여행객이니까 유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거스름돈으로 3유로만 먼저 주는 거다.  

내가 거스름돈이 잘못되었다고 하니까 그제야 5유로를 내주면서 나머지 잔돈은 또 안 주려고 했다.  웬만하면 나도 베푸는 스타일이지만 소행이 괘씸해서 그냥 다 받고 동전 몇 개만 팁으로 줬다.  그것도 안 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아량을 베풀기로 한 것이었다.


남편 말로는 넉넉잡아 5유로쯤 나올 거라고 했었는데 며칠 돌아다녀본 내가 생각해도 조금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면서 여태껏 좋았던 독일의 이미지가 바로 그 운전기사 때문에 조금 떨어졌다. 

그 사람이 오리지널 독일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일에 사는 사람은 확실한데 그런 사람 때문에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떨어진다면 베를린의 입장에서도 괘 억울한 일일 뿐만 아니라,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이민자들이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워졌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민자로 어디 살든 모국을 욕 먹이는 행동은 자제해야 할 이유를 또 발견한 셈이었다.



일단 그렇게 시작이 좀 안 좋긴 했지만 워낙 금방 잊어버리는 나는 룰루랄라 하면서 길거리를 쏘다녔다.  

그렇게 '갤러리 라파예트'라는 멋진 건축미가 돋보이는 백화점을 지나, 멋진 디자인으로 유명한 'Quartier 206'를 찾아들어갔다.  

그 두 곳은 알고 보니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냥 일층으로만 보고 와서 몰랐었던 걸 나중에 알게 됐다. 


그곳을 나와 아래로 천천히 걷다 보니 첫날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갔던 베를린 장벽을 다시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좀 걸어서 그곳을 찾아갔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중요한 전시가 야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다름 아닌 독일의 잔인했던 과거사를 고백하는 'Topography of Terror'(공포의 지형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었는데, 운 좋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구경을 하다 보니 길게 늘어져 사진과 글들로 이루어진 전시가 처음에는 공포를, 나중에는 가슴 저림을 던져주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역사와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의 우리들이 새겨야 할 교훈을 깊이 묵상하면서 걷다 보니 저 멀리 지하철역이 보이는데 아까 경험했던 안 좋은 기억도 있고, 또 요금도 예상외로 많이 비쌌고, 그리고 한 번쯤은 지하철을 타보는 경험도 좋을 듯해서 호텔로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워낙 오래전이라 다 잊어버린 독일에서 지하철 타는 법을 기억해 내긴 했는데 막상 표를 사려니 독일어로만 되어있어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나가는 여대생에게 물어서 겨우 표를 사고는 방향을 잡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무사히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로 내가 머무는 호텔 근처의 역에 내려서 호텔 주변을 조금 찬찬히 돌면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는 호텔로 돌아와 잠시 있다 보니 남편이 돌아왔다.  

우린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늘 가는, 하지만 오늘로 마지막인 '카데베 백화점'으로 갔는데 감회가 좀 색달랐다. 남편이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기념하는 의미로 제일 맛난 걸 먹자고 하는데 내게 맛난 음식은 해산물요리라 결국 나는 바닷가재가 들어간 프랑스식 '해물 스프'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요리 하나를 주문했다. 거기에 입가심으로 다시 생굴을 또 먹으러 갔다


드디어 다음 날 남편 곁을 떠나온다는 아쉬움과 가족을 재회한다는 기쁨이 교차되는 묘한 기분으로 너무도 작은 베를린 공항으로 향했고, 남편과 작별인사를 하고는 티켓팅하는 곳을 바로 넘으니 비행기 승강장이자 세상에서 제일 작아 보이는 면세점이 있었다.  

홀로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며 비행기에 속히 올라 잠잘 수 있기를 기다리다 보니 마침내 보딩이 시작되었고, 짧지만 즐거웠던 베를린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난 비행기와 함께 날아올랐다가 곧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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