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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Mar 03. 2024

무지한 이들을 일깨우는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사적인 견해로 무지한 이들을 일깨워주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그저 알아들을 때까지 차근차근 깨우쳐주는 친절한 방법, 또 하나는 통렬한 유머와 해학으로 스스로가 언젠가는 깨우치게 만드는 불친절한 방법 이렇게 두 가지. 

그중 바로 이 작품 '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후자에 해당된다.


해학과 풍자의 대가로 알려지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 유명한 인문학적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으로'의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이제 겨우 두 번 접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판단일진 모르겠지만, 그는 특히 이 작품에서 아주 많이 불친절한 작가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는 아주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은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옳은 이야기라 여겨져 이렇게 일갈하는 그에게 일말의 섭섭함이나 적대감보다는 스스로를 많이 반성하게 되면서, 그 앞에서 왜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지 그게 안타깝기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원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아주 그럴듯한 제목은 순전히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만들어낸 제목이고, 실제로 이 책은 작가가 책임자로 있던 문학잡지의 칼럼에 기재했던 내용에 파스티슈(패러디와 비슷한 뜻의 모방작품을 가리키는 말)들을 더해 펼쳐낸 <디아리오 미니모 2권>이 원제목이란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다양한 칼럼 형식의 글들과 패러디가 포함되어 있는데, 최근에 읽었던 그 어느 책 보다 웃음을 자아내다 못해 박장대소하게까지 만들었던, 정말 진지하게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적어도 중반부를 넘어서 까진 그랬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나의 가볍고도 얄팍한 지식이 도저히 작품의 심오함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음을 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솔직하게 뒷부분에 가선 건너뛰다, 다시 돌아오다를 몇 번 반복하다가, 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건 말 그대로 ‘글자’만 읽기도 하면서 결국 한 권을 다 읽어내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 아님 틀린 말일까 그게 무척 헷갈리기도 했다.  

물론 그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얼마 간은 나 자신의 무식함에 반성하면서 기가 팍 죽기도 했단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의 이해력이나 지식과 상관없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를 그저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음, 또 이런 책을 접할 수 있음도 큰 기쁨일 수 있다는 구겨진 겸허함 내지 합리화를 거쳐 나는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을 내 아이들을 비롯해 주변 분들에게, 그 밖에 가능하다면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해서 나의 완전한 이해력과는 별개로 이렇게 책을 읽고 난 다음의 감상을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기도 했는데,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특별히 불친절한 것은 정말 깊은 뜻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 뭐냐,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모자람을 그저 이해의 눈빛으로 감싸는 것과 달리 아버지들은 엄격하고도 호되게 꾸짖고 단련시키듯 진정 독자들이 좀 더 똑똑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는 친절함보다는 불친절한 방식을 채택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 것.  

즉,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으면 공부도 좀 하면서 따라오란 말이야~’ 하는 그런 맘 말이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패러디라는 장치를 통해 재미를 줬다고 밝히고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어리석지 않게 반응하기 위해 씨실과 날실의 미묘한 짜임새를 음미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고 말하고 있는 점.  

또 하나, 작가는 걔 중에는 비판을 하거나 교훈을 전달할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순수한 재미를 위해서만 쓴 글도 있다고 밝히므로 어쩜 약간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주 솔직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확신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런 확신이 들었음을 밝혀야겠다. 


물론 작가나 작품에 대한 판단은 읽는 이들 각자의 자유일 수도 있겠고, 호불호 역시 각자의 취향과 선택이겠지만 내겐 이 한없이 오만하면서도 촌철살인적인 표현의 대가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만이 흘러넘쳤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장을 덮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그가 확실히 매력적이며 동시에 닮고 싶은 사람임이 분명 하단 걸 거듭 확인했고, 그러므로 나도 그처럼 글쓰기를 해봐야겠단 결심을 굳혔으며, 또한 나 자신을 그쪽(?)으로 더욱 연마하고 채찍질하게 만든 그로 하여금 한 뼘쯤은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또한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는 소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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