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친과 함께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몬트리올에선 당연히 추운 겨울임에도 1월 말에서 2월 중순부터 시작해 3월 초 정도가 되면 온몸이 뒤틀린다!
밖에서 오는 냉기와 집안의 온기로 인한 부조화스러운 겨울의 기운이 날 뒤엎어 온몸이 온통 쑤시는 듯한 느낌! 너무 긴 겨울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앞으로도 이어질 겨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온천지가 따뜻한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듯 그렇게 기운이 쭉쭉 빠지곤 한다.
말을 하다 보니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그런 이유로 보통 나와 남편은 2월이나 적어도 3월 초 정도에 겨울을 피하는 피한 여행을 계획하곤 했었고, 몇 년 전 한국에 나와 있을 때도 어김없이 이쯤이 되니 몸이 슬슬 그 반응을 보여 나 혼자라도 어디론가 떠나야겠다 맘을 먹었었다.
그러다가 혹시 함께 할 친구가 있을까 싶어 찾다 보니 초등동창 여자 친구 한 명이 기꺼이 동참을 결심했고, 그 결과 우리 둘은 초등학교 남자동창이 살고 있는 필리핀 세부로 피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로서는 내가 이전에 주로 찾던 카리브 연안이나 멕시코의 휴양도시와 동남아 휴양도시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더라도 어린 시절 친구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특별한 감회까지 더해져 이전부터 자못 기대가 컸다. 물론 나와 함께 한 친구도 그러했겠지만…
내가 직접 익스페디아에서 예약을 하다 보니 비행기는 가장 저렴한 에어아시아로, 호텔은 5성급 호텔인 '크림슨 리조트'를 선택하게 됐고, 저렴하다 보니 비행기는 한국시간 밤에 출발해 세부엔 새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이 배당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루치 호텔비를 더 지불하느니 우리 같은 여행객을 위해 마련된 한국인 주인 스파에 들러 마사지도 받고 잠도 자기로 합의하고 한국에서부터 예약을 하고 세부로 떠났다.
그리고 4시간 조금 지나 세부에 도착하고 보니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알게 된 정보는 그야말로 너무 과한(?) 정보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즉, 면세점에서 산 물건에는 담배와 술 제외 과한 세금을 매긴다, 경찰이 일단 찜한 짐에는 손을 절대 대면 안된다 등과 같은 겁이 덜컥 나는 이야기들이 지극히 과장된 정보였단 걸 알게 됐단 이야기다.
물론 그런 경우를 당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목격한 공항의 풍경은 지극히 평화롭고 한가로워 보였다. 아무튼…
우린 한국에서부터 조사한 대로 미터기를 단 엘로우택시, 즉 공항택시를 찾았고, 친절하게 우릴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공항택시에 올라 우리가 예약한 ‘트리쉐이드 스파’로 향했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미터기를 열심히 찾아(우리와 다르게 중앙에 미터기가 있는 게 아니라 왼쪽 윗편에 미터기가 달려있다!) 미터기를 확인해 보니 0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80이란 숫자부터 시작을 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택시에 올랐으니 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가격보단 조금 더 비싼 가격(400페소)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고 예약자 이름을 대고 마사지를 받기 전 세족식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운 좋게 지배인이라는 한국분이 방 하나가 여유 있으니 마사지를 받고 샤워실이 갖추어진 그곳에서 잠을 자도 된다고 혜택을 베풀어줘 기분 좋게 세부에서의 첫 경험을 갖게 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싼 게 비지떡이라고 마사지는 그냥저냥, 침대는 괜찮았지만 이불은 없이 마사지받던 큰 타월 두 개를 덮고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에어컨 리모트컨트롤까지 고장인지 잠자다 쌀쌀한 기를 느낀 친구가 위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직접 꺼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친구가 우릴 픽업하기로 한 다음날 아침, 우린 일찍 눈을 떠 준비를 하고 로비에서 친구를 기다렸는데 분명 도착했다는 친구는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인가 했더니 글쎄 친구는 세부가 아닌 막탄 트리쉐이드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내게 이곳을 소개해준 사람이 친구라 난 당연히 막탄 트리쉐이드는 새벽 운영을 하지 않고 세부에만 새벽운영이 가능하단 걸 친구가 알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던 거였고, 그러니 당연히 트리쉐이드에 도착했단 말만 했지 어디라는 말을 빼먹었던 거였다.
첫 만남부터 친구에게 큰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너무너무 미안해졌는데 그래도 성격 좋은 친구는 한걸음에 한 시간 걸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줘 너무 미안하면서도 너무 기뻤다는 개인적 감상을 또 덧붙이며, 다음 편으로 이야기를 넘길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