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과업 1-12 이번 생 마지막 과업 2
by
꿈꾸는 노마드
Sep 21. 2024
“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내가 골이 비었냐? 뭐 하러 자수해? 여길 벗어나자마자 난 그 길로”
이로써 기남은 자신이 마음을 다해 집중하면 할 수 있는 게 꽤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상대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상대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도 맘대로 상대를 고통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의 말은 물론 마음 역시 듣거나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즉, 그는 생각만으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말을 더 들어줄 수 없었던 기남은 동수를 죽도록 패기 시작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그는 동수를 때리고 또 때렸다.
물론 생각만으로도 그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는 있었지만, 손맛을 보고 싶었다.
그에게 직접 자기 손으로 고통을 가하고 그걸 느끼고 싶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자수도 하고 으윽!”
기남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다 읽었다는 걸 알 수 없는 동수는 무척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받아내야 했다.
“너 같은 쓰레기는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 재활용이 절대 안 되는구나! 그래도 난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어. 인간이길 포기하는 널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넌!”
눈물을 삼키던 기남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희의 삶을 생각할수록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걸 잃고 다시 잘 살아보고 싶었던 착한 그녀가 잘 못 한 거라면 그저 이런 쓰레기를 믿었다는 그것밖에 없었다.
‘왜? 왜 착한 사람은 늘 선량함을 이용당하고 악인들에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건데!’
분노에 휩싸인 기남은 동수 입이 터지고 얼굴이 부어올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때까지 쉬지 않고 그를 팼다.
자기 손이 피범벅이 되도록 동수를 단죄한 기남이 숨을 헐떡이며 쓰러진 동수 옆에 주저앉았다.
“가서 자수해! 안 그러면 이번엔 정말 목숨 내놓아야 할 거야!”
***
기남은 결심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인희를 살려내기로.
하지만 이번 생을 마치기 전 그는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기남은 아주 오랜만에 자기가 어린 시절 지냈던 성북동집으로 향했다.
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마침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던 진희와 정남이 차를 타고 그의 옆으로 스쳐 지나치더니 차가 집 앞에서 멈췄다.
“어머, 이게 누구야? 너 혹시?”
여전히 호들갑스럽고 가볍디가벼운 진희가 차에서 내리면서 동시에 기남을 눈부시다는 듯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어! 기남이야? 와! 완전 180도 달라졌네? 궁상맞던 기남인 흔적도 없네!”
그때 차에서 내린 정남이 끼어들었다.
“뭐 하고 지내냐?”
“아이 얜! 딱 보면 모르겠니? 번지르한 얼굴로 뭐 잘난 년 하나 물었나 보지!”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길로 기남을 위아래로 훑으며 진희가 톡 쏘아붙였다.
“아버진 언제 들어오지?”
기남이 그들과 말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건조하게 물었다.
그 누굴 향해서라기보다 누구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어머 얘 좀 봐! 신수는 달라져도 어린 시절 그때 그 독한 마음 여전한가 보네! 어째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한테 말하는 본새 하곤”
“요즘도 여자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집구석에 붙어 있는 날이 별로 없으시나? 아버지란 양반?”
“야! 너 말이 좀 심하다! 이게 오랜만에 봐서 건방 떠는 거 좀 봐주려고 했더니”
정남이 기세 높게 기남을 향해 윽박지르자 기남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대꾸했다.
“그럼, 너도 말본새 좀 고쳐 봐! 엄밀히 난 니 형이니까!”
“어머 어머! 얘 정말 여전하네! 우리 정남이 시샘하고 늘 시궁창에서 나는 냄새로 우리 가족한테 악취 풍기던 그때 그대로야!”
진희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얇은 주둥이를 놀리며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아 당착적 멘트를 뱉고 있었다.
기남은 그들과 말을 섞고 있다는 자체가 갑자기 피곤해졌다.
아무런 말 없이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 터벅터벅 내려갔다.
그런 기남을 보며 진희와 정남은 자기들끼리 찧고 까불고를 계속 해댔다.
며칠 후 기남은 아버지 회사에 들러 아버지 남두철을 만났다.
신수 훤하게 변한 아들을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남두철 입에서 무겁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잘 자란 듯 보이는군! 그래도 이 애비 덕에 그만큼 자랄 수 있었다는 거 잘 알고 있겠지?”
“네. 감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요.”
“어째 말에 가시가 돋쳐 있네! 좋아! 사나이 자존심이라고 해 두지! 흐흐.”
“이제 제발 사람답게 사셨음 좋겠습니다.”
기남의 이 말에 이번엔 눈빛에서 날카로운 가시를 내뿜으며 그가 반박했다.
“이 녀석이 보자 보자 했더니! 네까짓 게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아니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완전 개조하려 합니다!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요!”
기남이 정신을 집중했고, 그는 분명 보았다.
아버지 남두철 눈빛이 순간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변해 버린 것을.
기남은 과거
아버지와의 일을 회상했다.
***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뒤 두철은 진희와 함께 회사 망년회에 참석했다.
그날 저녁 정남과 기남은 생전 처음으로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모처럼 기남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정남과 형제애를 다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좋았다.
그리고 웬일인지 그날만큼은 정남도 기분이 좋아 보이며 기남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먹다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먹어볼래?”
하면서 소시지 하나를 기남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둘은 함께 밥을 먹은 후 소파에 앉아 만화책을 함께 봤다.
밖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서 이렇게 동생과 만화책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포근한 행복감이 기남에게 밀려왔다.
그때 만화책을 보던 정남이 기남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형! 그거 알아? 이 만화에 나왔는데 개한텐 초콜릿 주면 안 된대.”
정남이 기남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보통 기남이라고 불렀지만 아주 가끔 기분이 좋을 땐 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싶었다.
“그래? 몰랐는데. 근데 어떻게 된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대. 우리 한번 시험해 보자. 밖에 있는 허스한테.”
정남의 눈이 평상시와 다르게 묘하게 빛을 발했다.
“안돼! 아빠가 아끼는 갠데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아니 괜찮을 거야.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초콜릿이 나한테 있거든. 그거 조금만 줘 보자.”
며칠 후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라 기남은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잠시 후 기남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남두철 얼굴이 드러났다.
“이 새끼! 네가 감히 허스를! 너 같은 거 백 개 가져와도 바꿀 수 없는 내 귀하디 귀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던 기남의 눈에 아버지 남두철을 뒤따라온 정남의 겁에 질린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두철의 큰 손바닥이 기남의 뺨에 내리 꽂혔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잡으려는 기남의 얼굴에 이번엔 두철의 큰 주먹이 날아들었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 기남을 보곤 정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난 하지 말자고 했는데... 기남이가 어떻게 되나 보자고 해서...”
저 멀리 이 광경을 바라보던 진희가 급기야 기남의 방으로 뛰어 들어와 정남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알아. 네 잘못 아닌 거 아빠랑 엄마는 다 알아. 그럼! 허스를 아빠가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아는 네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 세상에 모를 사람 하나도 없어!”
그녀의 손은 다정하게 정남을 안고 있지만 표독스러운 표정과 눈빛만은 기남을 잡아먹을 듯 기남을 향했다.
기남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해도 소용없다는 걸 기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기남의 걱정은 자신의 앞날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에 관한 것뿐이었다.
<역시 그랬다. 나는 개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정원 한쪽에 마련된 허스 산소 앞에서 아버지는 그날 하루를 꼬박 보냈다.
회사 퇴근 후에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개 산소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개가 죽자 난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제대로 된 사정을 들어보기도 전에 아버지란 작자는 개를 죽게 한 범인으로 날 지목했고, 거기에 정남의 엄마까지 합세해 결국 날 집에서 내쫓는 걸로 결론을 내버렸으니까.
내가 집을 나온 날은 근래 보기 드물게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이었다.
한 손에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책가방을 메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그렇게 난 그 집에서 나왔다.>
기남이 며칠 뒤 자기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이다.
초등학교 5학년 짜리가 쓴 글치고는 단어 선택하며 많이 문학적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그 집에 기거하면서 책을 읽어왔던 기남이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할 만했다.
대신 그 사건 이후 기남의 가슴속엔 분노와 적개심이라는 검은 뿌리가 깊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부당한 걸 잊어버리고 먹고살기에만 매달렸다면 신문 1면을 도배하는 흉악범으로 신문과 방송을 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기남은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했다.
그리고 그는 이미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아끼던 개를 잃은 분노를 참지 못했던 두철은 기남을 어떤 여자 손에 맡기고 대신 달마다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으로 기남에 대한 책임감을 퉁쳤다.
게다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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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회귀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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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과업 1-10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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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과업 1-11 이번 생 마지막 과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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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과업 1-12 이번 생 마지막 과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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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귀 1- 빌런으로 돌아온 기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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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귀 2- 빌런으로 돌아온 기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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