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회귀한 기남이 자기 방에서 눈을 떴다.
‘엄마를 먼저 구해야 해!’
마음이 급해진 기남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는 엄마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어머! 기남아!”
기남을 보자마자 반갑게 맞은 인희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인희를 보자 제일 먼저 기남에게 들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살아있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다니!’
기남은 인희를 안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엄마! 그동안 제 걱정 많이 하셨죠? 이제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래. 고맙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널 찾을 수 없었어.”
“알아요. 엄마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전 다 알고 있었어요. 가끔 와서 봤거든요.”
“그랬어?”
인희는 반가운 듯, 그러다 혹시 동수와 있었던 일까지 알고 있나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말 안 하셔도 돼요. 제집으로 가요. 이제 여기는 더는 오실 생각하지 말고요.”
“어떻게 그래?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
“천천히 해요. 정 오시려면 저랑 함께 와요. 우선은 갈아입으실 옷만 챙기세요.”
그들은 옷가지를 챙긴 후 함께 인희가 살던 집을 떠나왔다.
지쳐있던 인희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남에게 고마워하며 그를 따라나섰다.
기남의 집으로 온 인희는 그동안 기남이 어떻게 지냈는지 그게 궁금해 질문을 쏟아냈다.
“이 집은 어떻게 구한 거야?”
“성북동 그분한테 돈 받아 최소한으로 생활비 쓰고 다 저금했어요. 그땐 하숙했고요.
그리고 제가 아는 분한테 돈 좀 굴려 달라고 부탁해서...”
“그랬어? 그래도 그렇지 니 나이에 어떻게 집을 장만했어? 대단하다!”
“코딱지 만한 집인데요, 뭘!”
“이만한 코딱지가 어딨어? 방도 두 개나 되고. 자그맣지만 마당도 있고.”
“이제 여기서 저랑 편안하게 지내세요. 절대 그 집 다시 가지 마시고요.”
“그래. 알았어.”
“참, 그리고 혼자 계실 때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요.”
“그건 왜? 혹시 우편배달부가 올 수도 있고, 사람 사는 집에”
“아뇨! 우편배달도 제가 다 처리할 거니까 우리 집에 올 사람 없어요. 그러니 절대로”
“왜 그러는데? 너 뭐 나한테 속이는 거 있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없어요. 다만 걱정돼서 그래요. 그 인간이 또 엄마 찾아 여기까지 올까 봐.”
그 말에 다시 기남에게 미안한 기색을 하면서 인희가 말을 이었다.
“그 인간이 여기까지 설마? 그래도 니 말대로 절대 문 안 열어줄 거야.”
“꼭 그러셔야 해요! 꼭요!”
인희는 기남 곁에서 점점 활기를 찾아갔다.
***
며칠 후 기남은 아버지 남두철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 그의 회사를 찾았다.
기남은 자신을 맞는 차가운 눈빛의 남두철을 보고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첫 번째 회귀가 끝나기 바로 전 난 아버지를 변화시켰지.
하지만 그건 엄마가 살인당한 후의 일이었어.
두 번째 회귀를 하자마자 엄마를 살리려는 중이니 그 후의 일은 당연히 변하는 게 맞겠지.
다시 말해 그 인간은 여전히 예전의 그 비열하고 안하무인 인간일 테지.’
“무슨 일이냐, 네가?”
오랜만에 본 아들을 반가워하긴커녕 지난번에 비해 오늘은 더 냉랭했다.
순간 기남의 눈에서 실망의 내색을 읽은 남두철이 차갑게 내뱉었다.
“요즘 사업도 그렇고 정신 사나운 일 많으니 돈 얘기 하려거든 그만 돌아가거라!”
기남은 자신의 능력이 여전히 유효한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해서 정신을 집중해 아버지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잠시 후 남두철이 기남에게 말했다.
“아직도 뭔가 할 말이 남은 게냐?”
기남은 아무 말하지 않고 돌아서 회장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람이 내겐 4번의 회귀와 4가지 능력이 부여됐다고 말했었지.
능력은 한꺼번에 사용할 수도 있고 각각 회귀 때마다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첫 번째 회귀와 함께 사라진 걸까?’
생각에 잠긴 기남 곁으로 인희가 다가왔다.
기남의 눈에 불안에 떨고 있는 인희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응. 그게... 너 말대로 누군가 문을 두드려 나가 대문 틈으로 보니 그 인간이 서 있더라고. 그래서 놀라서 방으로 다시 들어왔어. 왜 온 걸까?”
“잘했어요! 문 안 열어준 건 일단 아주 잘하신 거예요. 제가 한 번 만나러 가야겠네요.”
“니가? 니가 갔다가 혹시”
“걱정 마세요! 제가 이번엔 아주 혼찌검을 내 줄 거니까요.”
“혼찌검? 어떻게?”
“제가 다 해결할 거니까 엄마는 걱정 마시고 여기서 편안히 계세요.”
“알았어. 난 이제부터 너만 의지하면서 니 말만 따를 테니까.”
다음 날 아침 당장 기남은 동수의 집을 찾았다.
대문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기남은 동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두말하지 않고 즉시 그의 두 손모가지를 뒤틀리게 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휩싸인 동수는 바닥을 구르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아! 아! 으윽!”
기남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그게 먹혔다.
기남은 더 생각할 거 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에게 차갑게 내뱉었다.
“너 같은 인간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어! 이래도 정신 못 차리면 다음번엔 두 다리몽뎅이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릴 거야.”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무슨”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엄말 살해하고, 찾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경고했었는데도”
“뭔 소리야? 내가 언제 인희를 죽였다는 거야? 아!~”
“의처증도 모자라 불순한 의도로 엄말 살해할 계획 세운 거 내가 이미 다 알고 있거든.”
“아니, 어떻게? 아!~”
그는 고통이 너무 심한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고통에서 뒹구는 그를 기남은 차갑게 쏘아보다 돌아섰다.
***
이번 생에서 기남은 대학 공부는 건성으로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냥 졸업장만 따자는 맘으로 바꾸곤 대신 다른 공부에 힘썼다.
“요즘 공부 어떻게 돼 가고 있니? 사시 공부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지?”
“아니!”
오랜만에 만난 박흥식 질문에 기남이 잘라 말했다.
“어, 왜? 너 나와 같은 길 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어차피 대학 나와 고생 끝에 사시 붙어봤자 법의 한계에서 맴돌아야 하는 삶보단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고 싶어져서.”
“어? 다른 방식? 그게 무슨... 어떤 방식을 말하는 건데?”
“법으로 할 수 없는 것들 나만의 방식으로!”
“하지만 그건 너무 모호하고 위험하게 들리는데 어째?”
“흐흐. 형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느끼겠지. 하지만 법이 만사는 아니더라고.”
불안한 표정의 박흥식이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도 일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듣고 보니 너 다 살아본 사람 같다? 흐.”
기남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의 삶에서 살인을 하고도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동수 케이스도 그렇고, 그 이전 박흥식 사건에서도 그렇고 법이 만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기남은 정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뭐가 어찌 되든 형은 내게 산 같은 존재야! 멋진 사람이면서 큰 산 같이 날 품어주는!”
“뭘 하기로 결정했든 나 걱정시키진 않을 거지? 나 너 믿는다!”
“형은 형이 할 수 있는 거 최선 다하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거 하고, 그러자고.”
“그래 그러자! 각자 잘하는 걸 하면 되는 거겠지 뭐! 맞지?”
의심스러워하는 박흥식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기남은 더 이상의 대화를 회피했다.
박흥식에게 솔직한 자기 심정을 밝히고 나니 기남은 어느 정도 맘이 편해졌다.
자기 능력 덕으로 박흥식은 새로운 삶을 맞아 잘 지내고 있고 자기 몫을 다 하고 있으니 더는 바랄 게 없었다.
그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기남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절체절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어떤 이의 생각을 더는 조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그런 이유로 아버지 남두철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고, 그게 첫 번째 회귀 능력과 차별화된 거라고 믿게 됐다.
여전히 자신이 겪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믿기 어렵지만 그 안에도 엄연히 룰은 존재하는 듯보였다.
자신은 그 룰에 따라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기남은 깨달았다.
‘어차피 내 능력이란 건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즉 법의 심판을 벗어나는 인간 말종들에게 유효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 능력이 쓰였던 걸 보면 그게 확실해!
이제부턴 그런 악인들을 내 방식, 아니 내게 부여된 룰에 따라 처단한다!’
이렇게 기남은 선인들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롭지만 악행을 일삼는 인간 말종들에겐 자비가 없는 빌런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