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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15. 2024

두 번째 회귀 14- 결심

지우는 다행스럽게도 특수학교에 잘 적응했다.

원래 숫자와 기억력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지우가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음악에까지 재능을 보였다.

특별활동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실력 느는 속도가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우리 지우는 정말 천재구나! 피아노까지 그렇게 잘 치게 되다니!”     


인희가 놀라워하며 칭찬했다.     


“피아노 치는 거.... 넘넘 좋아요!”

“우리 지우! 못 하는 게 없으니 엄마가 오늘 뭐 맛난 거 해줄까?”

“엄마가 해주는.. 계란말이.... 최고!”

“계란말이 정도론 안 되지! 딴 것도 말해봐! 먹고 싶은 거!”

“지우는 계란말이.... 제일 좋아요!”

“그래! 계란말이 특으로 해줄게. 후후.”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지우 피아노 소식을 인희로부터 듣게 됐다.

지난번 일로 연주는 슬금슬금 기남을 피하고 있었고, 기남 역시 굳이 연주를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어색했고, 연주와 그런 관계가 되는 게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지우가 특수학교에 적응을 잘하는 거 같아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

“그러니까! 우리 지우는 정말 못 하는 게 없는 거 아니니? 뭐든 원하는 거 다 시켜보고 싶더라.”

“연주도 좋아하겠네요!”

“근데 요즘 연주랑 무슨 일 있니?”

“네? 무슨 일이 있냐니요?”

“너랑 연주랑 요즘 좀 거리 두는 거 같아 보여서. 뭔 일 있어?”

“아뇨! 그런 거 없어요.”

“그래? 그런데 왜 연주나 너나 서로 피하는 느낌이 들지?”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사이좋으니까.”

“그래야지! 가족이라고 많지도 않고 달랑 넷인데... 근데 참 기남아!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너, 연주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너 기억 안 나? 엄마랑 고기 먹으러 갔을 때 우리 우연히 연주 봤었잖아?”

“네. 그랬죠.”

“그때 난 네가 연주 좋아하는 걸로 오해했었거든. 근데 가만 보니까 또 그런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나도 헷갈려서 말이야. 너 연주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해서.”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연주는 그냥 동생 같은... 내 말은, 우린 동갑이긴 하지만 어쩐지 지우랑 같이 보살펴 줘야 할 거 같단 얘기예요. 여자기도 하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그럼, 혹시 연주가 너 좋아하는 건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연주도 절”

“아냐! 너희들 요즘 뭔가 이상해! 너 아니면 연주가 너한테”     


기남이 잘라 말했다.     


“연주랑 저랑은 절대 그런 관계될 수 없어요, 엄마!”

“왜? 왜 너희 둘이 서로 좋아하면 안 되는 건데? 연주가 딸 같긴 하지만 딸 같은 며느리가 되지 말란 법이”

“엄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나 연주나 전혀 그런 생각 없으니까요.”

“그래? 내가 보기엔 아닌데...”     


기남은 인희가 뭔가 눈치를 챈 거 같아 민망해졌다.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운을 인희가 알아챌 만큼 연주나 본인이 티를 냈다는 것도 그렇고, 가족으로 이어진 돈독한 관계가 망쳐질까 그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연주는 좋은 아이긴 하지만 그녀와 그런 관계를 맺고 싶진 않았다.

민식이 윤식이 엄마에게도 도리가 아니었고, 그저 자긴 연주에게 좋은 오빠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며칠 후 기남은 오랜만에 박흥식을 만나 고민을 털어놨다.     


“형, 오늘 내 고민 좀 들어줘!”

“그래! 뭔 고민인데 그래? 말해봐!”

“연주 말이야. 내겐 동생 같은 아인데, 걔가 만약 혹시라도 말이야. 이건 만약인데... 날 좋아한다거나 그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사귀면 되지!”

“안 돼, 그건!”

“어? 꼭 안 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어?”

“그게... 암튼 난 절대 아니야! 연주도 아닐 거야!”

“왜? 연주가 너한테 무슨 신호라도 보낸 거야? 뭔데?”

“그건 아니지만...”

“뭐가 있긴 있었구나! 말해봐! 어서!”

“아냐! 아무것도 없었어! 형, 나 말이야! 미국 유학 생각하고 있는데 형은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기남이 화제를 급하게 들렸다.     


“미국 유학? 뭘 공부하려는데?”

“물론 경제지. 가서 경제를 확실히 좀 배워오려고. 가능하면 MBA까지도 하고.”

“MBA까지? 음... 그러려면 도대체 몇 년 걸리려나?”

“글쎄... 이제 군대 더 연기하는 것도 그렇고, 공부하고 와서 석사장교 가려고.”

“그래. 그것도 괜찮지! 근데 너 없는 동안 연주랑 지우랑 다 괜찮겠지?”

“그럼! 엄마가 잘 보살펴 주실 거야. 난 우리 엄마 믿거든!”

“네 계획 말씀은 드렸어?”

“아직! 근데 곧 말씀드려야겠어! 연주랑 지우한테도!”     


기남은 확고하게 결심이 선 듯 다부지게 말을 마쳤다.


***     


기남은 유학 준비에 몰두했다.

영어는 이전부터도 좋아했고,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강의 들을 실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 실력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고등학교 성적이나 대학 성적도 이미 관리를 잘해왔고, 대학원에서도 수업을 착실히 받아왔기에 걱정될 건 없었다.

그는 미국 유학에 필요한 서류와 시험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게 다 준비된 상태에서 아버지 남두철을 만나러 갔다.     


“잘 생각했다! 유학 가서 견문도 넓히고 전문경영인 공부 마치고 와서 회사 운영하면 좋지!”

“회사 운영 문젠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경제 공부부터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시작이 반이니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인희와 연주, 지우와 저녁을 먹으며 유학 이야길 꺼냈다.     


“기남아! 그러면 몇 년이나 널 못 본다는 거야? 얼마나?”     


인희가 갑작스러운 결정에 놀란 듯 기남에게 물었다.     


“그게... 제가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할지 거기 가서 확실히 결정해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긴 하지만... 일단은 적어도 5년 정도는 꼼짝없이 거기 있어야 하지 싶어요.”     


연주는 아무 말 없이 인희와 기남의 대화만 듣고 있었다.

평소 먹기에 극도로 집중하는 지우가 먹기를 멈추고 입을 뗐다.     


“형! 보고 싶으면... 어떡해?”

“전화하면 되지! 편지도 있고!”

“전화, 편지는... 보는 게... 아닌데!”

“그래 맞지! 우리 지우가 바른 소리 하네! 편지랑 전화하는 거랑 사람 얼굴 보는 거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어.”     


인희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쳤다.

연주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연주 넌 어떻게 생각하니? 기남이 유학 간다는 거?”     


인희가 연주에게 묻자 연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 생각이 뭐 중요한가요? 본인이 맘먹고 결정한 건데 가족으로 응원해 줘야죠!”     


그제야 연주는 기남을 바라보면서 억지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엄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린 결정이에요.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제가 없는 동안 엄마가 연주랑 지우랑 잘 지내실 거라는 거 전 확신하고 있고요.”

“네가 없으면 우리 셋 더 단단해질 수도 있겠지. 그리고 네 말대로 미래가 나아진다는 것도 확실할 테고. 알긴 뻔히 다 아는데 그래도 널 못 본다고 생각하니 자꾸 슬퍼져서... 미안하다!”

“엄마가 절 얼마나 위하시는 분인지 제가 잘 아는데 미안은요. 제가 오히려 죄송하죠! 미리 말씀 못 드린 것도 그렇고요.”

“아니야! 넌 나름대로 신중하게 결정하느라 그랬겠지. 내 반응이 이럴 줄 또 알았을 테고. 이제 너 못 본다는 생각보단 더 잘 돼서 돌아온 널 생각하면서 견딜게. 우리 모두 그러자 응? 연주야, 지우야!”     


지우는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기남의 결정을 응원하려 했고, 반면 연주는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남이 지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우야! 형이 전화 자주 하고, 사진도 자주 찍어 보낼게. 그럼, 형 얼굴 볼 수 있잖아!”

“사진은 실제... 얼굴 하고.... 다르죠? 그래도... 알았어요! 고마워요, 형!”     


그러면서 지우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만 하는 지우가 기남이 맘 쓸까 나름 신경 쓰는 건데 익숙지 않다 보니 그 표정이 매우 어색했다.

그래서 인희는 그런 지우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됐다.     


***     


드디어 기남이 떠나는 날이 왔다.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인희와 연주, 지우도 그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기남 아버지 남두철이 보낸 자가용을 타고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전날 기남은 아버지께 인사하기 위해 성북동집을 방문했다.

심통이 난 진희가 그를 보자마자 쏘아붙였다.     


“넌 팔자가 아주 늘어졌구나! 니가 유학까지 갈 줄 난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저, 저 또 곧 떠날 애한테 에미라는 사람이 말본새 하곤.”     


남두철이 혀를 끌끌 차는데도 불구하고 진희는 멈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우리 정남이는 언제 보내줄 건데요?”

“누가 보내줘? 지가 알아서 준비해도 될까 말 깐데. 기남인 지가 다 알아서 한 거 아냐! 정남이도 준비만 해봐. 내가 안 보내주나!”     


할 말이 없어진 진희가 그래도 심사가 뒤틀린 티를 거두지 않고 기남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너, 지금 우리 정남이가 너보다 좀 못 해 보인다고 정남이한테 함부로 했다간 내가 그냥 안 둬! 알았어? 엄연히 정실 자식은 우리 정남이야! 너 같은 천한 것하고 근본이 다르다고! 알아?”     


남두철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소릴 냅다 질렀다.     


“야, 홍진희! 이 여편네가 정말 보자 보자 하니 그만두지 못하겠어!”

“아버지! 전 괜찮으니까 염려 마세요!”

“야! 너 똑똑히 들어! 아무리 니가 유학을 다녀와도 절대 회사는 니 게 될 수 없어! 알아?”     


진희가 남두철의 외침에도 겁먹지 않고 계속 쫑알거렸다.     


“네! 명심하죠!”     


기남이 영혼 1도 들어가지 않은 어투로 대답을 했고, 진희는 더욱 화가 돋는 듯 기어이 소릴 고래고래 질러가며 눈물을 짜냈다.     


“아!~ 내가 그날 저 물건 끝내 내치고 받지 않는 건데! 다 내 잘못이지! 미안하다, 정남아! 흑흑~”     


그런 진희를 남두철이 한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다 기남을 보면서 난처해했다.

기남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려고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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