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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17. 2024

두 번째 회귀 15- 유학 생활 시작

공항에 도착한 기남과 일행은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입국장 앞에 섰다.

지우가 기남 곁으로 가더니 기남을 꼭 껴안았다.

기남 역시 지우를 꼭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였다.     


“우리 지우! 형 없이도 엄마 잘 모시고 누나 잘 돌볼 수 있지? 이제 집 안에 남잔 너 하나니까?”

“네! 형 없으면... 남잔 나 하나! 잘하겠습니다! 엄마, 누나... 잘... 돌보겠습니다!”

“그래! 난 우리 지우만 믿고 떠난다!”

“잘 다녀... 오세요!”     


인희가 곁으로 와 기남을 안았다.     


“기남아! 엄마가 반찬 넣은 거 아끼지 말고 먹어! 다 먹으면 연락하고. 또 부쳐줄 테니까. 알았지?”

“네. 엄마!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 너도 건강이 우선이니까 너무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네.”     


연주가 뒤에 서 있다가 앞으로 나오며 기남을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 걱정은 말고 공부에만 신경 써! 여긴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 지우 걱정 말고!”

“알았어! 고맙다! 너가 잘할 거라는 거 알아!”     


기남은 입국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남은 사람들은 그의 발길을 쫓다 그가 안 보이자 안타까운 표정을 내보였다.

지우는 섭섭한 표정과 함께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인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연주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인희와 지우를 어깨동무하며 감싸 안았다.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 보딩 타임을 기다리며 기남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꼭 성공해서 돌아와야 해! 그래야 엄마도, 지우도, 연주도 외롭게 보낸 시간 보상받는 걸 테니까.’     


얼마 후 탑승이 시작되었고, 그는 생전 처음 타 보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실내에선 뭔가 색다른 냄새가 풍겨 나왔다.

첨이라 다소 긴장하며 그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기남은 박흥식이 자기한테 했던 농담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 지었다.     


“기남아! 비행기 첨 타면 비행기 안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거야! 알지?”

“정말? 아무리...”

“너 안 그러면 항공법에 걸려! 미국도 가기 전에 감방부터 가는 수가 있으니 잊지 마!”

“그래? 알았어!”     


잠시 후 박흥식이 큭큭거리다 결국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녀석! 순진하긴! 야! 누가 예전에 그랬다는 얘기가 있어서 내가 그냥 해 본 소리야! 너 대학생 맞냐?”

“대학생 아니라 대학생 할아버지라도 경험이 없으니 혹시나 했지! 형, 그렇게 사람 놀리는 거 아니다! 그러는 형은 비행기 타봤어?”

“나야, 신혼여행 갈 때 제주도 가는 비행기 타봤지!”     


이렇게 기남은 박흥식의 농담에 장단을 맞췄었고, 그걸 기억해 낸 거였다.

다시 기남은 현실의 광경으로 돌아와 주변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운 비행기가 하늘 위로 떠오른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 그는 밖을 계속 내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굉장한 소음이 나더니 비행기가 속도를 내며 달리다 위로 치솟는 느낌이 확연히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밖을 내다보며 지면과 점점 멀어지는 비행기를 몸으로 느꼈다.

드디어 자신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나 기남은 다소 긴장됐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길! 내가 돌아올 땐 전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모두 안녕!’     


식사를 마치고 기남은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가 눈을 떴다.

꽤 오랜 시간 잔 거 같았다.

사위가 모두 어두워져 있었고, 간혹 작은 불빛을 켜놓은 곳이 눈에 띄었다.

목이 마른 기남이 지나가던 스튜어디스에게 요구했다.     


“저, 물 한 잔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곧 갖다 드리겠습니다.”     


기남은 테이블을 꺼내놓고 노트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뭔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기가 미국에 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미국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 등 계획을 일일이 노트에 적었다.

곧 스튜어디스가 물 한 잔을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뉴욕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죠?”

“앞으로 4시간 후면 도착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둠에 잠긴 비행기 안, 거의 모든 이들이 잠에 빠져 있는 이 시간, 기남은 다시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가득 적힌 노트를 내려다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상하게 영어도 낯설지 않았는데, 얼마 후 그는 그게 그의 능력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영어 말고도 다른 나라에서 유학 온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그 나라 말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학 온 얼마 후 기남 본인은 몰랐지만,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 하나가 제법 수업을 잘 따라간다는 소문이 유학생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기남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멀끔한 용모의 동양인 남학생이 그 앞으로 식판을 들고 와 물었다.     


“여기 자리 임자 있나?”

“아니.”

“그럼 내가 좀 앉아도 될까?”

“응.”     


기남은 식사에 집중하면서 교재를 보고 있었다.

그때까지 영어로 말하던 그 남학생이 한국말로 기남에게 물었다.     


“그쪽 한국 출신 맞죠?”

“네? 네.”

“그런데 밥 먹을 때도 공부하는 건가? 야! 소문대로 정말 대단하군!”

“....”

“나한테 잠깐 시간 좀 내주면 안 될까요?”

“네? 내가 좀 봐야 할 게 있어서요. 미안합니다!”     


하면서 기남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자, 그가 아무 말 없이 식사하곤 자리를 떴다.     

그리고 며칠 후 둘은 다시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마주쳤다.

기남이 식사하며 여전히 책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그때, 그가 기남에게 다가와 영어로 똑같이 물었다.     


“여기 자리 임자 있나?”

“아니.”     


역시 기남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엔 더 묻지 않고 그가 앞자리에 앉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오늘도 책 보면서 밥 먹는 건 똑같군요!”

“네?”     


기남의 눈은 잠깐 그를 스쳐 다시 책에 고정되었다.

기남은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섭섭해지려고 하네...”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주시하던 기남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가 기남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걸 의식한 기남이 무안해하며 말했다.     


“오늘도 미안하다고 하기 정말 미안한데... 아니다! 난 남기남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이름이?”

“난 정완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습니다! 참,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난 빠른 62. 그쪽은요?”

“아! 나도 62인데!”

“그럼, 우리 편하게 말 놓을까? 그런데 늘 그렇게 식사하면서 공부하니, 넌?”

“응, 아니! 요즘 좀 해야 할 게 많아서 그래.”

“그래? 난 너같이 공부 잘하는 애는 늘 그런가 했지. 흐흐.”

“넌 뭘 공부하고 있어?”

“나도 너랑 같은 거.”

“그래? 그런데 한 번도 얼굴 본 적이... 미안! 내가 좀 그래.”

“늘 보면 넌 바빠 보였어. 다른 거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그게 바로 너의 큰 능력이란 생각을 했지. 엄청난 집중력 말이야!”

“좋게 봐줘서 고맙네!”

“좋게 봐주는 게 아니라 그게 팩튼데 뭐! 암튼 부럽다!”

“...”

“난 억지로 떠밀려 유학 와서 도무지 공부에 재밀 못 붙이겠어!”

“...”

“근데 넌 집중력도 뛰어나지만 수업 시간에 보면 공부에 정말 재미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어.”

“그래?”

“응. 특히 비해이비오럴 이코노믹 시간엔!”

“내가 그랬었나?”

“응. 다들 한물간 경제 이론이라고 해서 나도 들을까 말까 했던 건데 넌 아니었어! 굉장히 집중하던데. 늘 그런가?”

“난 심리학적으로 경제를 설명하는 그 부분이 참 좋던데. 뭐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     


정완수가 기남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바쁜 거 같은데 다음에 너 덜 바쁠 때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놔줄게. 이제 그만 보던 책 봐!”    

 

기남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될까? 많이 미안하지만?”

“미안하긴! 내가 네 시간 빼앗아서 미안하지. 만나서 반가웠다!”     


그가 자리를 뜨자 기남은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고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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