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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Nov 04. 2024

이번 생일은 조금 색다르게?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과 티룸(Tea Room) 방문기

여러모로 이번 생일은 예년과 달랐다.

우선 대상포진으로 난 캐나다 추수감사절인 10월 14일부터 고생을 하고 있다.

처음엔 왼쪽 가슴 아래가 아프더니 며칠 지나 발진이 발견됐고, 다음날 급하게 병원에 예약해 의사를 만났다.

병원에 가기 전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처음엔 앨러지인가 하더니 곧 대상포진 같다는 말을 했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 역시 대상포진이 맞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의사에게 가서 결국 대상포진이란 진단을 받았고, 곧장 약을 지어먹기 시작했다.

항바이러스약을 10일간 복용하라 했고, 동시에 진통제도 받았다.

발진 부분이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던 것보다 더 날 괴롭힌 건 두통이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처음엔 알리브를, 그리고 두통약 타이레놀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평소 약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내 생애 이렇게나 오랫동안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있는 건 첨이다.

암튼 신기하게도 타이레놀을 먹으니 두통이 사라졌고, 약효가 떨어지는 시점엔 다시 어김없이 두통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런 와중에 생일이 왔고, 몸이 불편해 어디 가서 외식하기도 생일을 축하하기도 버거워 생일파티를 미뤘다.

그리고 아프기 전 아들로부터의 이번 내 생일 선물은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에서 하는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으로 결정했었다.


이곳 시간으로 바로 어제 오후 3시 공연이 있었는데, 그전까진 비교적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 어제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 공연이다 보니 드레스 코드가 있을 듯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드레스 코드가 존재했는데, 난 비교적 간단하게 원피스에 오우버코트를 입고 실크 머플러에 롱부츠를 신기로 했다.

남편은 슈트에 가죽재킷을 입고 캐시미어 머플러를 두른 후 우린 둘째 녀석의 차를 타고 노르트담 성당으로 향했다.



입장을 예상해 30분 전쯤에 도착했는데 이미 성당 앞에는 길고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깜짝 놀라 난 뛰다시피 해서 줄에 합류했고, 아무래도 이상해 앞에 있는 분들에게 물었더니 티켓 소지자 역시 이 줄에 서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이 촉을 발동해 입구 쪽으로 다녀오더니 이미 예매를 한 이들이 입장하는 걸 봤다고 했다.

해서 우린 입구 쪽으로 옮겨 줄을 섰고 비교적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 눈에 이미 어느 정도 정렬이 된 아티스트들이 보였다.

3시가 공연 시작 시간이었는데, 3시가 넘어도 계속 사람들은 입장을 하고 분주해 보였다.

그러다 결국 3시 20분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드레스 코드는 차치하고 공연 시작 후에도 사람들이 드나들어 음악감상을 저어하게 만들었다.

다소 원칙주의자인 나로서는 꽤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공연은 두 시간 예정이라 되어 있었지만 5시가 되기 전에 끝났고, 한 번의 앙코르 공연 끝에 우리는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쐬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 장소는 생파 장소로 예정된 티룸 'Paparmane'였다.

성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해 있어 쌀쌀한 날씨였지만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 올드 몬트리올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프렌치식 티룸으로 간단한 먹을 것과 스콘, 디저트를 내놓는 곳이었다. 물론 티룸이니까 티가 가장 메인이 되는 게 맞고, 일 인당 클래식 티룸 가격이 $54달러에 티를 포함하고 있었다.

큰 아들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굳이 사양해서 작은 아들과 다미안, 남편과 나 이렇세 네 명이 방문했고, 다미안을 위해서는 어린이 메뉴를 선택해 주문했다.



티를 선택하고 다미안은 자기가 좋아하는 마차 라테를 주문한 후 우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전형적인 애프터눈 티 세트 대로 삼단 캐리어에 아기자기한 음식들이 실려 나왔다.

실용적이라기보다는 눈에 보기에 예쁜, 인스타 감성 취향저격 그 자체로 보였는데, 예상외로 음식 맛이 괜찮아 조금 놀랐고, 량도 적당해 우린 만족했다.

특히 다미안이 마차 라테를 좋아했고, 남편은 스콘을, 아들은 평소 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선택한 티를 아주 맘에 들어했다. 



나는 늘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 샌드위치나 핸디푸드, 디저트가 인상적이었다기보다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특히 다미안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게 기뻤다.

사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많이 여성스러워 다소 어색해하던 다미안이 만족스러워해 더욱 좋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저녁을 간단하게 먹는 남편과 나로서는 음식 자체가 무겁지 않다는 그 점이었다.

오랜만에 둘째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진 것도 빼놓을 수 없겠고 말이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난 음식과 티로 행복한 경험을 한 후 둘째 아들의 차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편과 나는 흔쾌한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밤에 운전하는 게 편치 않은 남편으로서는 그 점도 좋았겠고, 역시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하고 다미안이 흡족해하는 것을 만족해 한 듯싶다.

나로서도 첫째 아들이 빠진 건 조금 아쉬웠지만 나머지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그리고 좋은 공연을 감상한 것 모두 아주 좋았다.

이렇게 2024년 62번째 내 생일파티는 예전과 많이 다른 그런 날이었고, 비록 몸은 성치 않았지만 고통보단 기쁨이 훨씬 앞섰던 날이었다!


노트르담 바실리카 성당에서의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 일부 영상
티룸 Paparmane 클래식 티 메뉴와 어린이 메뉴, 그리고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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