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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Dec 05. 2024

세 번째 회귀 19- 딜레마

“나, 임신 5주 차래!”

“응?”     


기남의 목소리가 떨렸다.

임신이란 단어를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그는 이렇게 되물음 했다.     


“반응이 왜 이러지? 기쁘지 않아? 우리 아기가 생겼는데?”

“사람이 너무 기쁘거나 당황하면 말이 안 나오기도 하지!”     


인희가 이렇게 기남을 변호했다.     


“많이 놀랬지? 오늘 내가 연주 데리고 병원 다녀왔는데”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기남이 양해를 구하고 급히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기남은 욕실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자기가 보기에도 얼굴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밤 연주가 침대에 누워 있는 기남 옆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이 많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미안해!”     


연주가 기남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기남을 등지고 누우며 말했다.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걸로 알게. 내일 말하자.”     


기남은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도 기남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수선한 심사를 다스리려는 그때 최진혁 부장이 대표실로 들어섰다.     


“대표님! 며칠 후 채유라 데뷔하는데...”     


기남의 안색을 살피던 최진혁이 말을 멈추고 기남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뗐다.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네? 아, 네. 그래 주실래요?”     


최진혁이 나가고 기남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정남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저 드릴 말씀이...”

“...”

“이번에 채유라 데뷔하는데 지우랑 라디오 방송에 같이 출연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남대리! 그런 문제는 나랑 말고 최 부장님 하고 의논해야지. 안 그래?”    

 

다소 까칠한 대응에 정남이 무안해져 있는 그때 기남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공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거 알지? 여긴 직장이고 무조건 일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네! 물론입니다.”     


일부러 정남은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지우가 작곡을 거의 해줘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알았어. 사심 아니면 됐으니까 나가봐.”

“네.”     


나가는 정남의 뒤통수에 대고 기남은 작게 혼잣말을 했다.     


“미안하다! 지금 내 심사가 좀 그렇다!”     


그때 갑자기 또 머리가 아파왔다.

요 며칠간 계속 머리가 아프면서 기남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마치 희미하나마 손에 잡힐 듯 그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 이미지는 바로 어떤 젊은이가 나이 든 사람들을 해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집에 불을 지르는 모습, 불로 활활 타는 집이 보였다.

그는 피곤해져 고개를 저었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외쳤다.     


“그래! 그 사건이야!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막아야 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기남을 보게 된 박흥식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기남 옆으로 다가왔다.     


“자식!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기남 표정을 보더니 박흥식이 잠시 주춤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형! 나 좀 도와줘야겠어!”

“무슨 일인데 그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암튼 내 말 믿고 좀 도와줘!”     


박흥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 소리야?”

“무조건 내 말 믿고 형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

“경찰이든 어디든 연락 가능한 곳 다 동원해서 막아야 할 일이 있어!”
 “뭘?”

“며칠 후 사건 하나가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좀 알기 쉽게 말하면 안 되겠냐? 네가 그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됐다든지 뭐 그런 얘기부터”

“그건 말하기가 좀 어려워. 하지만”

“왜 어려운데?”     


박흥식이 몹시 궁금하며 이상하다는 듯 기남을 쳐다봤다.     


“그게... 말하자면 내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일종의 예지력 비슷한 게 생긴 거 같아.”

“예지력?”

“응. 암튼 그 사건이 난다는 걸 알게 됐어. 예지력을 통해서.”

“...”

“믿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꼭 내 말 믿고 형이 액션을 취해줘야만 해. 그래야 희생자들을 막을 수 있어.”

“희생자들?”

“응.”

“희생자가 몇 명인데?”

“세 명!”

“어떤 사건인지도 말해 줄 수 있어?”     


***     


박흥식을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기남이 소파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 놓여 있는 물 잔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신 후 기남은 생각에 잠겼다.     


‘흥식이 형이 그럴 능력이 있을까? 

내가 너무 과한 걸 부탁한 건 아닐까?’     


기남은 곧 다시 자기 문제를 되짚기 시작했다.     


‘연주가 임신을 했다.

도의적으로 연주에게 낙태를 권할 순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생을 언젠가는 끝내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게다가 현생에서 아들 둘을 두고 난 사형을 당했다.

그런데 이생에서도 또 다른 아이를 갖게 됐다니!

이럴 때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때 문득 기남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참! 연주가 이미 내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 연주를 설득해 보는 거야!’     


그는 서둘러 퇴근해 집으로 향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기남이 현관을 지나자마자 연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인희가 주방 쪽에서 나오며 기남에게 말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네. 집사람 아직 퇴근 전인가요, 어머니?”

“응. 아직 안 왔는데.”

“아...”     


인희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너 연주 아이 가진 거 기쁘지 않니? 어제 표정이 좀...”

“네. 그게...”

“왜? 너도 이제 아이 생각할 나인데.”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에이. 애는 연주가 가졌는데 너 바쁜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넌 하던 대로 일 열심히 하면 되지.”

“그건 그렇죠. 어머니! 저 옷 좀 갈아입을게요.”

“어, 그래.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았다! 들어가 봐.”    

 

기남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 끝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날 밤 다른 때에 비해 조금 늦게 들어온 연주가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누워있던 기남이 몸을 일으켰다.     


“오늘 좀 늦었네?”

“응. 성북동 들렀다 오는 길이야.”

“아버님 뵙고 온 거야?”

“응. 아이 소식 많이 기다리셨잖아. 알려드려야지.”

“...”

“아주 좋아하시더라. 이름 지으시겠대.”

“나 당신한테 할 말이 있는데...”

“잠깐만. 금방 씻고 나올게.”     


연주가 샤워하는 동안 기남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얼마 후 연주가 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말린 후 기남 곁으로 다가왔다.     


“당신 내 상황 알잖아. 그치?”

“응.”

“그런데도 아일 낳고 싶은 거야?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미안한 맘 반, 걱정스러운 맘 반으로 기남이 말했다.

그 말에 연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 봤어.”

“...”

“당신 다시 과거로 꼭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라는 그런 생각.”

“...”

“만약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 그리고 또”

“...”

“만약 당신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낳겠다고 결심했어. 그래서 난 아이를 낳을 거야.”

“...”     


연주가 촉촉한 눈빛으로 기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꼭 그래야 한다면 당신을 닮은 아이라도 내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남은 무너졌다.

연주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주며 뛰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애썼다.     


“연주야! 정말 미안하다!”

“아니! 당신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연주가 지그시 기남을 바라보다 생각난 듯 내뱉었다.     


“이 상황에 좀 웃긴 얘기긴 하지만 우리 사실 계약 결혼이었던 거 기억나?”     


연주가 일부러 옅은 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그런 모습에 기남은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다.     


“당신이 떠나든 남든 난 일단 우리의 분신을 낳아서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어.”

“...”

“그리고 태교 열심히 해서 당신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

“...”

“그러니까 이제 나 아이 낳는 거 당신도 응원해 줄 거지?”

“그래.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생각해 보면 아이 문제에 있어 기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는 두 사람의 합작품이긴 하지만 여자의 의사가 더 반영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런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었던 행위를 한 사람은 본인이었다.

물론 처음엔 다음 회귀를 생각해 기남도 애써 자제했었다.

연주가 상처 입을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남은 잠자리 가질 때 각별히 신경을 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연주가 눈치채고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남은 자신의 조심스러워하는, 그런 행동이 연주에겐 상처라는 걸 곧 깨달았다.

해서 언젠가부터 기남은 연주가 원하는 대로 했다.

연주는 기남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그와의 합일은 단순한 행위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기남과 함께 온전히 나누길 원했다.

기남은 자신도 연주를 연주 못지않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에 연주의 의사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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