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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그리고 응급실 행

끝없는 기다림 끝에 끝난 시술

by 꿈꾸는 노마드

캐나다는 건강보험이 무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워낙 월급에서 세금을 많이 떼고(차등 배분), 또 생필품을 구입할 때도 세금(퀘벡은 15%)을 내는데, 그게 바로 모든 복지 혜택의 근간이 된다(다행인 건 상속세, 증여세 이런 세금은 아예 없다).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은 Child Benefit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복지 혜택이 주어지는데, 아이를 많이 낳아 그걸로 생활을 하는 가정이 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밖에 보통 일반인들이 받는 복지 혜택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현재는 만 65세지만 이게 67세로 늘어난다는 전망도 있고) 나이가 되면 대중교통 무료 혜택, 의약품 구입이나 뮤지엄 혹은 국공립 공원 할인이라든지, 주 정부나 연방정부에서 주는 연금 외 장애인이나 한부모 가정 등 사회 약자를 위한 다양한 복지 혜택도 물론 존재한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지만 결론적으로 건강보험이 무료라고 인식되서인진 모르겠지만 병원에는 늘 사람들이 붐비고, 전문의를 보기 위해선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분명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처럼 다이렉트로 큰 병원을 찾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고, 패밀리 닥터의 레퍼런스를 받은 후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하는 게 원칙인데, 그 과정이 지난하기 그지없다.

해서 오죽하면 <캐나다에선 암환자도 기다리다 죽는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결코 웃을 수만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또한 응급실 상황도 심각하다는 얘길 듣고 있는데, 지난 일요일 캐나다에 온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응급실을 찾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내 문제는 아니었고, 남편의 등에 혹 같은 게 있는데 시술로 제거해도 다시 되살아난 게 이번으로 세 번째였다.

그동안은 가까운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전날 밤 갑자기 남편이 등을 보여주는데 벌겋고 군데군데 염증의 흔적까지 보여 심히 걱정스러워졌었다.

얼마 전부터 혹이 커지고 있다는 말을 해서 병원에 가보자 권유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그 사달이 난 거였고,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우린 집에서 가까운 개인 클리닉을 먼저 찾아갔다.

일요일이라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없다는 말을 듣고 우린 일단 약국을 방문해 약사의 견해를 들었는데, 상처를 보더니 응급실을 방문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길로 남편과 나는 집 근처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그때부터 기나긴 기다림이 지속됐다.


하필 그날은 첫눈이, 그것도 아이스레인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기다림과 함께 마음이 점점 무거워져 갔다.

주차장은 만차였지만 운 좋게 자리를 하나 얻었는데, 그게 2시간까지만 무료주차라 난 시간에 맞춰 나갔다 들어갔다를 반복해야 했다.

눈발이 아주 조금 흩날리다 곧이어 예보대로 아이스레인이 내렸고, 차를 옮길 때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스크립퍼로 얼음을 긁어내야 했다.

그렇게 약 6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가 남편의 상태를 보더니 아무래도 인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 같다면서 15분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떠났다.

약 30분이 지난 후 드디어 인턴과 함께 나타난 의사가 시술을 시작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모든 과정이 다 끝이 났다.

그동안 나는 집에 가서 남편의 약과 약간의 간식을 챙겨 왔고, 오는 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샌드위치도 하나 사와 남편과 나눠 먹는 등 나름 바쁘게 보냈고.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린 배고픈지도 모르겠고 해서 저녁도 거른 채 각자 소파에 누워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남편의 상처를 소독하고 드레싱 하기 위해 우린 보건소를 찾았다.

어제저녁부터 본격적으로 눈이 내렸는데(이게 바로 올해의 첫눈이라고 난 생각한다!) 오늘 아침 보건소로 향할 때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보건소에서 치료와 드레싱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린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남편 왈 "단풍잎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함박눈이 내린 건 또 첨 보네!"란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런 광경은 생전 첨이라 참으로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설원과 비현실적으로 낙엽 위에 얹어진 눈 광경을 실컷 감상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숲으로 향하던 중 아직 발자국이 나지 않은 그곳을 통과하기엔 좀 애로사항이 있을 듯해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전날 밤 눈이 야간조명이 되어줬다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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