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Life must be going on~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서 내 개인적인 일상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자제하고 있는데(오래전부터 블로그에 익숙해 지금도 여전히 브런치라는 공간과 블로그라는 공간의 차이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사실임에도), 오늘은 내 사적인 얘길 조금 해야겠다.
2024년 1월 아버지께서 타계하셨고, 한국에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기거하고 있었다.
내 여동생은 캐나다 영주권자로 2013년부터 한국에 머물렀는데, 중간에 영주권을 몰수당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영주권을 재발급받았고, 올해 3월 초에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영주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작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물론 그 이전에 동생 거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도착 다음날 난데없이 동생이 어머니 사후 유산 문제에 대해 말문을 열었고, 영주권을 포기하고 어머니 옆에 있겠다고 하면서 내게 뭔가 확답을 받고 싶어 해 동생의 제안에 동의해 줬다.
장녀로서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많은 압박감을 받았던 나로서는 집안의 평화가 더 중요하다 여겼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동생이 캐나다로 돌아오기로 결정하면서 출발 단 일주일을 남기고 어머니께 통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와 남편은 그 소식에 무척 놀랬는데, 이유는 동생이 어떻게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께 떠나기 단 일주일 전에 자신의 출국 소식을 알릴 수 있었느냐는 거였다.
내 어머니는 척추마비 환자로 처녀시절부터 휠체어를 타신 분이시다.
그런 몸으로 우릴 낳으셨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우릴 길러주셨다.
내가 3살 때 우리 집에 와서 우리와 식구로 지낸 이모가 2005년에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를 계속 돌보셨다.
몸은 불편하시지만 우리 어머니 역시 가만히 계시는 스타일이 아니시라 앉아서 쓸고 닦으며 집안을 돌보셨지만, 서서 해야 하는 일에서만큼은 아버지께서 다 하신 셈이었다.
동생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사실 집안일에 대해서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동생이 대신 하긴 했지만 그건 아버지께서 하던 일에 비하면 거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도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말 아침에 양배추 갈아드리고 과일 준비해 드리고 계란 삶아 드리고 가끔 국도 끓여 드리고 하면서 어머니를 돌봐 왔던 동생이 떠나게 되면 주말(주중에는 요양사님이 방문하신다)에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이 당장 필요한 게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주말에 어머니를 도와줄 분을 구하려고 노력, 아니면 적어도 어머니께 구하라는 말씀도 드리지 않고
내빼듯 출국을 한다는 동생의 행동이 기가 막혔지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동생의 행동이 많이 괘씸했지만 언젠가부터 변해버린 동생의 행동을 보면서 느끼는 게 있었서였다.
그러다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어 카톡에 글을 남기며 너가 이렇게 떠나는 건 정말 유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역시나 동생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라 이번엔 여과 없이 나의 느낌을 표현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엔 발만 동동 구르며 당장 한국으로 뛰어나갈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남편의 건강 문제 때문이다.
남편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 중인데, 새롭게 나타난 증상을 보더니 신경과 의사가 다른 검사를 좀 더 해보자는 의견을 냈고, 그 검사들을 다 마치고 의사와 다시 만나야 하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터져버렸다.
여전히 남편의 병명에 대해선 오리무중이고, 언제 한국 으로 떠날 수 있을지 역시 그렇다.
동생이 떠난다는 걸 알게 된 그날 이후 나의 정신은 온통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로 향하고 있다.
매일 카톡으로 어머니와 대화하던 걸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바꿨는데, 나중에 어머니께서는 별 할 말도 없으니 하루에 한 번만 하자고 하셨다.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 혹시라도 전화를 안 받으시거 나 늦게 받으시면 걱정이 하늘을 찔렀다.
한 번은 하도 카톡을 안 받으시길래 집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받으시면서 전화기를 차에 두고 내리셨다고 말씀하셨다(우리 어머니께서는 장애인차를 1970년대 말부터 운전하고 계신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멘탈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겐 또 일상이 존재하기에 내 안에선 어느덧 분열의 조짐이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다.
남편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언제나 우뚝 서있는 아들의 엄마, 손자의 할머니여야 하고, 어머니로 인해 걱정을 짊어지지 않아야 하는 딸이어야 하고와 같은 나의 일상적 의무와 어머니를 향한 죄송한 마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감으로부터 비롯된!
내향인도 아니고 외향인도 아닌 이향인, MBTI 중 INTJ인 나지만 몹시도 힘든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