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파리, 몬트리올 이야기

나의 의지와 열정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를 깨닫게 해 준 '1Q84'

by 꿈꾸는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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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도 그러했겠지만 난 이 책 세 권 중 두 권을 먼저 읽고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마지막 3권을 읽을 수 있었는데, 먼저 두 권을 다 읽고 나서 뭔가 허전하고 아직 말끔하게 정리가 안 된 듯한 느낌을 받긴 했었지만 당시엔 3권이 나올 것을 기대하지도 못했고, 설사 3권이 나온다 하더라도 언제 읽을 수 있을지(왜냐면 난 한국에서 아주 멀리 살고 있으니까)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터라 그냥 속으로만 그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3권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첨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지만 뭔가 여전히 미진함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가졌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건 왜냐면 결국 두 사람의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두 사람을 맺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마침내 그간의 나의 기다림이 보상을 받았다고 느꼈던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해피엔딩에 마냥 박수만 칠 순 없었던 건 약간의 의심스러운 구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감상문은 처음 두 권에 대한 것과 마지막 3권에 대한 것, 이렇게 두 가지로 분리를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고 그러므로 1, 2권에 대한 나의 감상을 먼저 이야기하는 걸로 시작해 볼까 한다.


우선, 이 소설의 제목을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아이큐 84”로 잘못 읽었었다. 그러다 가만히 책을 들여다 보고 첫 글자가 분명 영어 “아이”가 아니고 숫자 “1”이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는 그제야 이게 무슨 뜻? 했던 기억이 난다. 왜 다 숫자이고 가운데 글자만 영어일까 이게 우선 궁금했는데 책 어디에선가 1984년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있었던 그 해가 새로운 해로 바뀐 걸 느낀 주인공이 “84년에 대한 하나의 질문, 즉 Question”으로 부르기 시작해고, 그걸로 제목을 정한 거로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1984년 말고 또 하나의 상징적인 1984를 말함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제목에 관한 해석이 있는데 영어의 “Q”와 일본어로 숫자 “9” 는 발음이 같은 동음이의어라 약간의 언어적 장난을 가미해 제목을 이리 정했다는 “설”도 있다는 거. 그리고 내용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1984”에서부터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감을 받아 이제부터는 세계가 조지 오웰의 “1984”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1984”를 기억해주길 원해서 이런 제목을 붙인 건 아닐까 란 생각을 나 혼자 또 한 번 해 봤다.

이 또한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이젠 정말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아오마메라는 여자와 덴고라는 남자, 이 둘은 어려서 있었던 아주 짧은 한 순간의 강렬한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두 주인공이다. 그건 그들이 그 당시 갈망했었던 순수한 인간애, 결국 사랑에 대한 기억이기도 한데 이 단 한 번의 어설픈 듯, 하지만 몹시도 강렬했던 순도 높은 순간의 해프닝이 이 둘을 평생 따라다니고 급기야는 그러한 사랑에 대한 추억, 또 서로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 한 편의 소설은 탄생하게 된 거라고 여겨진다.


소설은 이 두 주인공의 이름과 소제목을 교차로 편집하여 내용을 진행시키는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1,2권까지는).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 소설인 건 분명한데, 그 형식은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고, 또한 단순한 판타지만이 아니라 곳곳에 작가가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많은 주제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정말 말 그대로 방대하고 묵직한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바로 사랑이 우리를 살아나가게 하는 힘이고, 세상의 변화가, 환경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의지라는 걸로 해석했다. 세상에 달이 하나이든, 두 개든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하나하나에 의해서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그것, 그게 바로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여겨졌던 거다.

그러니 맨 첫 장의 제목으로 쓴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은 그야말로 딱! 인 제목이 아닐까 싶고, 그런 이유로 작가는 맨 첫 제목으로 그걸 쓴 게 아닐까 란 생각을 한 번 해 봤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나왔던 빅 브라더가 이미 25년이 훌쩍 넘어버린 작금의 세상에서도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역사는 고쳐 써지고 있고,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통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라는 걸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 덴고(고쳐 쓰는 그의 행위)와 그를 조종하는 고마쓰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또 종교집단 “선구”의 리더를 통해서도 인간 개개인의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상징을 보여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자기 의지대로 글을 쓸 특권도 있지만,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모자라는 독자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그의 좀 더 친절한 결말을 나는 기대해 본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능과 재치, 센스, 그의 사려 깊음을 믿고 있기에 그가 좀 더 선명하게 그의 작품 세계에서 “비전”을 우리들에게 비춰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전”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그게 바로 흔히 말하는 많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기 작가, 유명 작가들이 그들의 독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보답이 아닐까 싶다.

책이라는 게 꼭 교훈을 전제로 하여 읽힐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뭔가를 얻었다는 만족감 정도는 줘야 하는 게 맞다고 보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나니까…


이번에 읽었던 두 권의 책에는 우리 인간사에서 보이는 종교와 역사의 문제, 그리고 모든 선행과 악행, 그 배경이 되는 개개인의 또는 가족 간의 결합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 다 녹아들어 있어 인간들의 세계를 절절히 보여주고 있고, 그 밖에 우리 인간들의 원초적인 이야기들, 예를 들어 성과 식욕,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은 군중 심리와 또 그와는 반대로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통해 결국 작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물론, 쏠쏠한 재미 또한 많이 선사했다고 여겨지기에 더욱 그의 후속 작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책에 나왔던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나 체홉의 순방기 “사할린 섬”이나 그밖에 거기에 등장했던 길랴크 인, 또 그다지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짧은 내용을 통해서도 지극히 일본답다!라는 걸 느끼게 만들었던 “헤이케 이야기” 같은 보너스까지 덧붙여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고, 우리들에게 더 알고자 하는 지식욕을 불러일으켜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독자들에게 더해줄 수 있는 서비스일 듯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감사했다.


또 하나의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난 사실은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우리의 작가인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작품에서 풍기는 뉘앙스 내지 상통하는 주제의식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니, 출판 연도를 봤을 때 김영하의 작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보다 먼저 쓰였으니 하루키의 작품에서 김영하의 주제의식을 발견했다고 말해야 옳으려나?^^


하지만 뭐가 먼저가 됐든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에 대한 주제의식은 존재하고, 그걸 포착해낼 줄 아는 작가들의 예리한 눈빛 또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던, 행복한 순간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작가 정신에 힘입어 그들의 작품 속에서 삶에 대한 의식을 재정비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향해 두려움을 떨치고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하기에 작가는 마지막 제목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에”로 지어놓고 우리들에게 희망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온기를 느끼며 세상을 차분히 응시하라고?


자, 그럼 이제는 마지막 3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


작가의 전작 1, 2권의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런 이유로 3권에 대한 기대가 너무 과해서였을까? 아무튼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맞아떨어졌는데, 물론 나는 주인공인 아오마메와 덴고의 해후를 무척이나 바랬었지만 왠지 3 권을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가 처음에 계획하지 않았던 짓(?)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의심을 내내 품게 되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사랑의 온기에 대해 우리들에게 재인식시키는 것까지만 계획하고 그다음엔 그저 독자들 개개인의 취향에 결론을 맡겨버리려고 했었는데 그만 일이 너무 커져버린(폭풍과도 같은 인기몰이) 탓에 애써 3권을 급조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처럼 나 또한 처음에는 내가 원래 하루키의 문체와 글들을 좋아했었다는 흥분감에 도취되어 그의 팬터지적 사유에 넉넉한 마음이 되었다가 황당함과 신비로움이라는 경계의 모호함에 진력이 나버렸던 거였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3권은 1, 2 권만큼 감동스럽지 않았었다는 거다.


나는 그래서 마침내 ‘아! 그냥 1, 2권만 존재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란 내 멋대로의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나는 결국 이렇게 맘을 고쳐먹었다. ‘많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 하루키가 그냥 대충 무계획적으로 이런 글들을 지었던 건 절대 아닐 거야. 그는 아마도 그가 보여주는 구경거리를 우리들 독자들 각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나의 의지와 열정이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라는 교훈을 얻기를 바랐었을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걸로 자신의 임무는 모두 마친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아마가 아니라 확실히 그랬던 거라고 믿어. 아니 꼭 그렇게 믿고 싶어…’로.


그리고 내가 2010년 읽었던 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친밀하게 온 마음을 집중해 탐독했던 하루키의 “1Q84”의 주제는 결국 이것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의 모든 현상 중에서 단 하나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미치도록 열정을 쏟아붓는 그것이라는 것.

그건 사랑일 수도 있고, 또 자신만의 소중한 그 무엇일 수도 있겠는데, 우리가 최선을 다해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기운이 힘을 합쳐 우리를 도와줄 거라는 그 믿음까지도 놀랍게도 우리 안에 자리할 거라는 것. 그것이 비록 비현실적으로 들리고, 이해될 지라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끝까지 견지하라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말이다.


바로 이렇게 나의 하루키, 우리의 하루키는 내게 깊이 다가와 내게 "한 뼘의 성장"이라는 선물을 또 선사했다. 이전의 나보단 조금 더 발전한 나를 믿을 수 있었던 건 바로 하루키가 내게 준 그 선물, 즉 최선을 다해 내가 뭔가를 찾으려고 한다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기운이 힘을 합쳐 날 도와줄 거라는 그 믿음이 놀랍게도 내 안에 자리하고, 바로 그러한 믿음으로 인해 난 결국 그로부터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바로 그것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하루키의 또 다른 작품을 목 빼고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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