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거룩함에 대한 깨우침을 던져준 책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을 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사람 조르바를 직접 만난 적이 있고, 그와의 만남과 생활을 추억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펼쳐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이 '그리스인 조르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작가가 화자라는 제3의 인물을 통해 조르바를 만난 것으로 했을 지라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투박하되, 확실하게 땅에 두발을 디디고 견고하게 서있는 인물 조르바, 때로는 비린내 날 정도의 날것으로 드러나는 그를 향한 작가의 깊은 사랑은 바로 자신의 이성적이고 냉정한 이면에 숨은 또 다른 모습, 다시 말해 격정적이고 도발적인, 말 그대로 자연적이고도 적나라한 인간 본연적인 모습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가 조르바에게 빠진 건 바로 자신이 늘 꿈꾼다고 생각하는 것이 알고 보면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면, 조르바의 삶 속에는 모든 것이 사실적이면서도 너무도 생생하여 실체 그 자체이고, 또한 그의 격렬하지만 숭고한 인간애에 대해 한 없는 존경심을 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르바의 자연적이면서도 본능적인 감각, 하나를 향한 무서운 집중력,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그의 단호함과 결단력에 마치 엄숙한 의식 앞에 섰을 때의 그러한 흠숭의 마음이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알고 보면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사랑하고 빠져든다는 것은 말로써는 표현하기 힘든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인 듯한데, 바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대리만족시켜줄 인물 조르바를 발견하고 그와의 흡족했던 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런 그가 참 많이 부러웠다. 조르바가 부러웠던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든 걸 다 내던질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나 일을 찾아낸다는 게 누구에게나 돌아오는 행운은 아니라고 평소 생각하기에 그랬다.
행운이란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고, 바로 작가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그것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겨졌다. 그랬기에 그는 결국 그의 정신을 더한층 고양시키는 정신의 스승, 참다운 벗, 영혼의 표식이 같지만 겉으로 드러남에는 완연히 달라 보이는 도플갱어, 조르바를 만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르바의 매력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그의 무뚝뚝함과 대조되는 그의 맑은 영혼이 진정 부러움을 넘어 경이스럽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거친 남자에게서 매일매일 보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건져내는 순수함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일까?
또한 그는 여자를 무시하는 듯 보이면서도 끝없이 보살펴줘야 할 가녀린 존재로 의식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만용이 아니라, 진실로 아껴주고 싶어 하는 아주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확신이 들며 이 매력적인 인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음이다.
평소 난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바로 외로움과 그리움의 표현이 아닐까 라는. 예를 들어 글쓰기, 그림 그리기, 수다 떨기, 남 험담하기까지 이 모두가 다 우리 자신이 많이 외롭고 서글프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몸짓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다가 자신과 코드가 맞는, 다시 말해 영혼의 표식이 같은 사람이란 징표가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반가워서 접근하기도 하고, 친근감을 드러내기도 하다가 때론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다른 말로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와 표식이 같은 존재는 성도, 나이도, 그 무엇도 제약이 될 수 없다. 말 그대로 그냥 끌리는 건데, 거기엔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대상의 모든 게 다 받아들여진다. 물론 환상이 깨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주 오래갈 수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미칠 지경이 된다.
그게 바로 사랑의 정체 아닐까? 무모한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열정과 미칠 것 같은 격정의 감성 말이다.
바로 이 사랑이 이 책의 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계산 없는, 한 인간(조르바)에 대한 지극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조르바의 여자들을 향한 헌신적이고도 본질적인 사랑, 거기에 한 편으론 냉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내는 그의 인간애. 그리고 여자들이 드러내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까지...
그중에서 난 이 두 남자가 나누는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랑 이야기가 참 신선하고 상큼하게 느껴졌다. 아무 연고 없이 만나 그렇게 서로를 내비치고 깊이 사랑할 수 있다니~ 하면서 경이로웠다. 흔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성큼 다가왔다.
또 하나, 난 이 책이 내포하고 있는 명제가 바로 우리가 흔히 그럴 것이라 여기는 것들을 뒤엎고 참된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흔쾌하게 보여주며 아주 실제적으로 우리 자신이 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거룩하게 되는 것>, 즉 '성화'라고 여겨졌다.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문구 "... 신이 내 속에 있으며, 또 내가 신 속에 있음을 믿는다... 또 인간의 참된 행복은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에 있으며 신의 의지라는 것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남을 자기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사상인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 신과 통한다는 철저한 믿음을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확인한 셈인데, 그런 이유로 난 이 책을 곁에 두고 자주 찾을 것 같단 강력한 예감이 들었었고 그건 어김없이 지금까지도 사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