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없이 들뜨게 만든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심오하면서도 알아듣기 쉽게 우리들에게 얘기를 건네는 타고난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달 속을 둥둥 떠다니는 그런 느낌으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뭔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또 한 편으론 너무도 환상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마치 제가 평소 소망했던 그런 세상을 제게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니 가슴이 마구 벅차올랐던 거다.
우선 이 작가는 어찌나 이야기를 교묘하게 끌어 맞추고 재미나게 펼치는지 그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밤새 지겹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아니 그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물론 그가 기꺼이 나를 상대해주겠다고 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ㅎ
아무튼 그의 독특하면서도, 자유로운 사색의 혜택을 독자가 고스란히 받을 수 있음은 진정 행운임을, 그런 독자 중 하나가 된 자체가 아주 많이 감사해야 할 일임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이게 바로 또 책을 읽는 사람의 기쁨 중 최고의 기쁨에 해당되는 일일 테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 '달의 궁전'은 책의 내용 중 나오는 중국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얻어 살던 후진 집에서 유일하게 그가 마음에 들어 하던 공간을 장식했던, 그의 희망의 상징이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듯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나마 그에게 위안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가 '달의 궁전'이란 네온사인을 보면서 행복한 과거의 한 편린들을 차례로 들추어낼 때다.
그는 마치 고행자처럼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단한 실험정신으로 무장하곤 버텨내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난 가끔은 얼토당토 하지도 않게 머리로만 생각하되, 직접 행동으론 옮기지 못하는 것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주인공에게 한 없는 존경을 보내는 마음이 되곤 했다.
그는 진정 용감한 사람이었고,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그가 해야 할 일을 하므로 우리들에게 끈기의 결과가 어떻다란 걸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가도 궁극엔 받았다고 여겨진다.
세세한 내용을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지만 그의 삶을 통해 역시 우리 인생이란 우연과 필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는 확신을 더하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우리말에 있는 ‘뿌리는 대로 거둔다’의 냉엄한 진리를 다시 또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 폴 오스터에게 또 한 번 더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늘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조금만 사고의 영역을 넓히면 무한한 새로움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옴을 가르쳐준다는 것, 수박 겉핥기식의 사고와 태도의 경박함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또한 우리들이 느끼고, 또 배우려고만 한다면 우리 주위에는 넘치고 넘치는 게 바로 교육의 질료라는 것, 예를 들어 심술궂어 보이고, 아주 많이 왜곡된 듯한 까칠한 노인네를 통해서도 우리는 선의와 인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것, 반면교사라는 걸 통해서도 우리의 내적 강인함을 쌓아갈 수 있는 것 등을 보여준 것도 이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이렇듯 삶에서 거저(사실 이건 완전히 거저는 아니다. 자신이 찾아보려는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니까) 얻어지는(듯 보이는) 무한한 교훈과 가르침은 우리들의 영혼을 살 찌우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은 게 맞다.
그밖에 많고도 많은 이 소설의 미덕 중에서 특히 한 인간의 선한 의지, 그리고 기꺼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한 인간의 고귀한 자긍심, 늘 ‘정당함’에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쿨함’이고, 바로 멋진 인간의 조건이라고 여겨지기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