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파리, 몬트리올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by 꿈꾸는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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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부터 소설 중에서도 추리소설을 제일 좋아했었다. 아가타 크리스티의 작품도 좋아했고, 셜록 홈스와 괴도 루팡 이야기, 그리고 좀 유명하단 추리소설은 대개 다 읽어본 듯하다.


추리소설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책을 읽으며 스릴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추리하는 것이 작가의 것과 일치할 때 느끼는 쾌감이 대단하며, 설혹 틀리더라도 내 머리 회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는 지적 욕심이 많은 게 사실인 듯싶다. ㅎ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난 영화도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한다.


그럼 이쯤에서,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살인사건, 또는 수도사들의 죽음을 둘러싼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 책을 접어든 순간 추리소설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장미의 이름'이 왜 책 제목일까 란 것에 먼저 주목하게 됐다는 말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봐야겠다.


그에 대한 답은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는데, 사실 명확한 건 아니고 독자의 판단에 맡긴듯한 느낌이 우세하긴 하다.

어쨌든 거기에 대해 나는 내 나름대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장미’란 우리가 과거의 영광을 노래할 때 주로 찾게 되는 '장밋빛 어쩌고저쩌고~' 하는 바로 그 <장미>를 말함이 아닐까 라는 것으로, 다시 말해 자신들의 혼과 열정을 다해 받들거나 최고의 덕으로 쳤던 그 무엇을 <장미>란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으로 말이다.


덧붙이자면, 바로 그러한 최고의 <무엇>이 실질적으로 보자면 너무도 덧없는, 아름답게 피었다가 지고 마는 자연의 조물(造物)인 장미처럼 절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걸 말함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나의 추리 혹은 추측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종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상이 바로 자신들의 지적인 오류에 대한 회의감, 즉 일말의 의심도 없이 너무도 확고한 주장을 펴는 수도회의 수도사들(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이 논쟁에서 보여주는 행태, 누구보다 고결하고 겸손해야 할 신분을 지닌 그들의 지적인 허영심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독단적 해석의 극치를 통해서도 작가의 심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목숨을 걸어서까지 사수하고 싶어 했던 '지식의 보고인 장서관의 도서들'이 불에 홀라당 다 타버린 것 또한 이러한 나의 추론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로 보았다.


작가 움베르또 에코는 작중 인물인 윌리암이나 아드소의 입을 통해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그의 방대한 지식 앞에서 입이 시종 다물어지지 않았었지만 그러한 그의 박식함보다는 사실 그의 객관적인 조율에 힘쓰는 듯한 '선의'가 내겐 더 관심이었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또 읽어보고 싶단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자기 사상을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들려주며 독자로 하여금 각자 판단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지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한 작가정신에 탄복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우리들의 독선과 아집을 경계하자는 것과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습관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고의 유연성과 사물을 바로 보려는 의지를 소홀히 하지 말 것, 동시에 절대성과 영원성에 대한 여지를 남겨 놓으라는 것으로 나는 보았다.


단순히 책이 주는 재미에 대해 덧붙이자면, 근엄한 수도사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범인(凡人)들보다도 못한 비난과 비틀림, 그리고 촌철살인적 대사에서 심각한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문판을 다시 읽어보고 싶단 욕구도 일어났는데 아무리 번역이 잘되었다 하더라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세세한 뉘앙스까지 글로 다 옮기기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원본인 이탤리어판을 구해 읽어야 하는 게 맞지 싶다.


그나저나 작가인 움베르또 에코는 외국어를 한두 개도 아닌 몇 개를 한다니 갑자기 더욱 존경스러워졌다는 사족을 또 덧붙여본다.


이 책은 훗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정독하고 싶다. 지금 당장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놓친 것이 분명 있을 듯싶어 그렇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또 다른 시선으로 감상하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여겨지기에 말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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