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파리, 몬트리올 이야기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의 조건을 깨닫게 해 준 책. '토니오 크뢰거'

by 꿈꾸는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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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책의 종류는 너무도 많다.
크게 소설, 수필, 동화, 전기물, 시 등으로 구분도 가능하겠고, 소설만 해도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여러 장르로 나누기도 한다. 거기다 시대를 구분하고 동 서양을 구분하고 또 좋은 책, 나쁜 책 이렇게까지 분류한다면 아무리 해도 끝이 안 보이는 실로 방대하고 대단한 작업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은 책과 나쁜 책으로 나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책을 쓰는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결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면 좋은 책은 많을 수 있지만 굳이 나쁘다고 해야 할 책이 있을까... 나쁜 내용 안에서도 깨달을 게 있고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책 효용의 한몫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책을 읽을 때 우린 그저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는 책도 있지만 대개는 책을 쓴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려는 노력도 기울인다고 본다. 아마 책을 많이 좋아하고 그렇게 책을 좋아하다 보니 자신도 언젠가는 책을 써 보고 싶다고 소망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겠지. 그런 점에서 책을 읽되, 책 자체를 그저 즐기려는 자세와 더 나아가 책에서 꼭 교훈을 발견하려는 분석적 책 읽기의 자세는 읽는 속도와 집중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어떤 책은 후딱 읽어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몇 번을 읽으며 정독하기도 한다. 주로 나의 책 읽기 습관은 전자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으면서 그 행간의 뜻을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특히나 좋다고 느끼는(순전히 나 자신의 판단으로) 책은 그저 읽어 내려가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고 그래도 또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으면 다시 한번 더 읽기도 하고 있다.


요즘 읽었던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말하고 싶은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책과 영향을 준 책으로 많이 언급하고 있는 책 중 하나이며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므로 작가의 정신을 비롯 예술가의 정신까지 깊이 사색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소년의 일종의 성장소설인 이 책은 작가로 운명 지어진 사람들을 '길을 잘못 든 속인'으로 표현하며 우리에게 과연 진정한 작가나 예술가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들고 그를 통해서 과연 우리 인간들이 추구해야 하는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꿈을 꾸고 꾸는 사람들의 궁극적 꿈이라는 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 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책들이 너무도 많지만 난 이 책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표현의 사실감과 더불어 진지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걸 글로써 충실히 표현해 놓은 그의 노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글에선 전혀 허구의 냄새가 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표현하여 바로 그 당시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공감할 수 있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나 자신의 의무감으로까지 여겨져서 함부로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책을 탐구하며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읽었던 게 과연 얼마만이었던가. 이 책이 나의 큰 단점을 가히 부끄럽고 잘못된 습관으로 인정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 줬다는 것 외 읽는 내내 글자 하나하나에 이토록 신경을 쓰고 되짚어 보며 읽었던 책은 진정 흔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일반적으로 선한 사람들, 더 나아가 진과 미에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 또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란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인간적인 것, 생명 있는 것, 그리고 평범한 것에 대한 시민적 애정, 바로 그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애정으로부터 모든 온정, 선의, 유머가 나오는 것이고 이 애정은 성경에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지라도 애정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으니라'라고 할 때의 그런 애정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말이 가장 내게 충격적이면서도 평소 내가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떤 한 마디로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사상을 대변해 준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찌나 기쁘고 뿌듯하던 지... 내가 꿈꾸고 바로 지향했던 목표나 가치관이 이렇듯 선대의 작가에 의해 이미 표출되어 있었음에 대해 얼마나 가슴 벅찬 환희를 맛보았는지....


어찌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사랑을 삶의 큰 명제로 삼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의 소망과 탐구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진정 위대한 사상은 시대를 관통해 흐르고 있음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이 책 안에 녹아져 흐르는 것은 어떤 특이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닌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형이면서 잡다한 군상들의 그림자와 같은 것들이다.


또한 우리네 삶이란 작가가 드러내는 '희극과 비참'에 다름 아니지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모순과 희극과 비참한 요소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임을 이 책은 또 한 번 입증하고 있다.

'희극과 비참'일 수밖에 없는 삶의 본질을 결국은 뛰어넘을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그것이 우리가 구현해야 할, 또한 작가라고 이름 지워진 사람들이 실현해야 할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우리 모두의 명제인 것이다.


결국 작가란 존재는 그러한 것들을 새롭게 탄생시켜 선량하게 만들고 결실을 맺고 동경과 우울한 선망, 그리고 약간의 경멸과 아주 순수한 행복감, 다시 말해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는 그런 평범을 드러내 보이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들이란 확신을 이 책을 통해 갖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 작가가 말하는 인간을 멸시하는 교만하고 냉정한 예술가들에게 감탄을 할지언정 부러워하지 않으며 꿋꿋이 좀 더 나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꼭 그리 하려는 진정한 작가, 예술가, 인간의 조건인 것이고, 바로 이러함으로 우린 오늘도 희망적인 전진을 하며 축복된 삶으로의 행진을 미룰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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