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파리, 몬트리올 이야기

사람이 왜 아름다운지를 확인시켜준 ‘The Lives of Others

by 꿈꾸는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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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서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하여 그 당시의 암울했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참다운 자유의 정의와 그 중요성, 거기에 한 인간이 서서히 변화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을 조망하므로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숙고를 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그 결과 명성에 걸맞은 상을 여러 곳에서 받았는데, 2006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유럽 영화 최우수 영화상, 최우수 남자 배우상, 각본상, 독일 최우수 영화상, 배우상, 조연배우상 등등의 수상이 그것이다.


우연히도 베를린을 방문하고 돌아온 얼마 후에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를 관람하게 돼 더욱 애틋한 마음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또한 동, 서로 나뉘어 너무도 다른 체제 속에서 다른 삶을 추구했었던 독일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와도 무관하지 않다 여겨지기에 내 마음속에 애련함을 자아내었던 것 또한 이 영화에 애정을 갖게 만든 한 요소가 되었다.


그럼 개인적 감상은 이쯤에서 접고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대충 이야기해 보자면...


유머도 용인되지 않을 만큼 경직되고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산정권 하의 동베를린에서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충성스러운 스타시 당원 비즐러는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고 그의 집에 도청장치를, 또 자신은 근처에서 잠복근무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는 출세에 눈이 먼 옛 동료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신념이 대단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게오르그에게는 함께 사는 여배우 크리스타-마리아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다름 아닌 실세 문화부 장관이고, 그는 어떻게든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사실 게오르그에게 어떤 의심의 여지가 있어서라기보다 여자를 가로채고자 하는 사악한 심뽀로 어떻게든 털어서 먼지를 내 보겠다는 것이 본래 그의 의도였다.


그런데 열혈 당원이었던 비즐러는 시간이 흐르면서 게오르그와 그의 여자 친구의 삶(이게 바로 제목이 의미하는 타인의 삶)에서 점차 자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그들을 통해 문학을 이해하게 되고(자신의 감성을 이데올로기라는 한 줄기 외길만을 위해 꽁꽁 묶어 처박아두었던 걸 그들로 인해 서서히 풀어간다), 남녀 간의 사랑을 알게 되고(도청과 감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곁엔 그 누구도 없으니 그는 참으로 무료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마침내는 자유로운 생각과 그걸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참자유란 것에 대해 눈을 떠가게 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는 게오르그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그가 아끼는 책까지 들고 나와 읽게 된다.


자기 안에 뭔가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면서 비즐러는 당황스러워하고, 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덧 자유로운 정신을 동경하게까지 돼버린다. 또한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몸으로 장관과 흥정을 벌이고 있는 여배우 크리스타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유까지 하고 만다. 그러지 않고도 충분히 능력이 있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확신시켜주므로 결국 그녀가 다시 게오르그에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곤 마침내 열혈 당원이었던 그가 조국을 배신하는 행위까지 하게 되는데, 게오르그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독이 감추려고 하는 진실을 밝혀내는 기사(동독의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자 1070년부터는 자살률에 대한 보고를 멈춘 것)를 서독 스피겔 잡지에 제보하는 작업을 한 증거를 없애준 것이 그것이다.

게오르그의 여자 친구인 배우 크리스타가 자신의 안위에 위협을 받자 그만 타자기가 숨겨진 장소를 불어버렸는데 그가 먼저 가서 타자기를 치워버린 것이었다.


평범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극작에만 매달리던 게오르그는 절친하고 존경했던 친구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한 것을 목격하곤 비로소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념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게 된 것이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없어진 타자기의 행방을 궁금해하다가 시간이 흘러 두 독일이 통독된 후 그는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집에 도청선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고 그를 도운 스타시가 있었음을, 그가 바로 HGW XX/7 임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인물이 스타시에서 쫓겨나 인쇄물들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까지 알아내곤 찾아가 확인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들이 가장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고도, 가슴 짜릿했던, 멋진 장면이었는데. 바로 그의 존재를 확인한 게오르그가 택시기사에게 멈춰달라고 요청하다가 다시 택시에 올라타 사라지는 장면, 그리고 2년 후 우리의 히어로 비즐러가 길을 걷다 우연히 게오르그가 쓴 소설을 발견하고 책방에 들어가 책을 펼쳐보는데 거기에서 바로 자기 이름인 HGW XX/7을 발견하고 은은히 미소 짓는 장면, 제목이 ‘좋은 사람을 위한 소나타’

였는데 그 책 첫 장에 바로 ‘감사와 함께 HGW XX/7에게’라는 헌정사가 있었고, 그가 책을 집어 들고 판매원에게 가 판매원이 포장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아뇨. 이건 나를 위한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 바로 이 대목들이 가장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느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울컥해지면서 ‘아~ 역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맞아. 꽃보다 아름다운 게 맞고 말고~’라는 감탄이 절로 솟아났다. 바로 이게 오늘도 우리 모두가 아비규환 같은 현실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고, 인간임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라 느꼈다. 왜 그토록 많은 문학 작품에서, 또 예술 장르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지를 발견한, 섬광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었다.


바로 이렇게 우리 삶의 굽이굽이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고 , 그걸 발견하고 그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자는 바로 이와 같은 자, 즉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만한 소양이 있는 자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질 때 이 영화를 꼭 보시라고 거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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