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은 그 순간이었다.
우리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좋아한다.
뭘 먹고 싶은지 물으면 “아무거나”가 자동 응답이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먹는 건 아니다.
차려주면 맛있게 먹고, 배부르면 끝.
먹을 걸로 고민하거나 맛집을 미리 검색해 두거나,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먹는 걸 좋아하되 ‘집착’ 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나는 좀 다르다. 항상 뭔가 먹고 싶은 게 있고, 새로운 음식이나 유명하다는 집은 꼭 가봐야 한다.
‘줄 서서 먹는다’는 말에 줄을 서보고 싶고, 누가 “거기 맛있더라” 하면 멀어도 마음이 끌린다.
여행지를 고를 때도 음식이 반은 된다. 그런 나와 ‘아무거나’ 파 남편은 참 다르게 먹고, 다르게 기억한다.
어제 남편에게 물었다. "살면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야?"
잠깐 생각하더니 이런다. "글쎄… 난 음식 자체보다 그걸 먹던 때, 같이 있던 사람, 그런 게 더 기억나. 음식은 잘 생각 안 나."
처음엔 그냥 무심한 답변인 줄 알았는데, 곱씹을수록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남편은 음식보다 그 음식을 둘러싼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맛'으로 기억을 분류하는 사람이다. 뭔가 정반대인데,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우리가 미국 유학 시절에 먹었던 인 앤 아웃 버거. 지금도 맛있다고 소문난 버거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맛보다도, 그때 우리가 드라이브스루에서 햄버거를 받아 들고 밤늦게 차 안에서 먹던 기억을 더 생생히 말한다. 나도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는데, 그래서 생각한다.
지금 다시 인 앤 아웃에 간다면 과연 그때 그 맛일까? 버거는 여전히 맛있겠지.
그런데도 그 맛이 ‘그 맛’ 일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는 남편 학교 카페테리아의 퀘사디아.
로컬 식당도 아닌 학교 카페테리아지만, 정말 맛있다고 소문났던 메뉴다.
나도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다시 거기 가서 똑같은 퀘사디아를 먹는다면, 그때처럼 감탄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결론도 따라왔다.
음식은 독립변수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맛’만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시간, 상황, 감정, 그리고 누구와 먹었는지가 함께 작용해서 ‘그때의 맛’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어떤 날의 컵라면은 이상하게 감동적이고, 어떤 날의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밍밍하다.
생일날 혼자 먹는 케이크는 왠지 덜 달고, 평범한 오후 친구와 나눈 분식은 괜히 특별하다.
그러니까 결국 맛이라는 건 입으로 먹지만, 마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내게 “제일 맛있었던 음식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메뉴보다 장면부터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날의 공기, 테이블 너머의 표정, 그때 흘렀던 음악까지.
맛은 혀에 닿았다가 사라지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 맛은, 결국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