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감정 사이,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냉장고 앞에 멀뚱히 서서 생각한다. “내가 왜 여길 왔지?”
커피를 데워놓고는 또 식혀버린다.
50대 중반, 갱년기의 중심에서 나는 뇌의 삐걱거림을 느낀다.
“역시 나이 탓이겠지…” 하고 조용히 한숨을 쉰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은 뜻밖의 말을 건넨다.
“당신의 뇌는 지금 전성기입니다.”
20대의 속도와 암기력은 줄었지만, 50대 중반부터 60대까지는 깊이와 통찰력이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지금 가장 현명한 나이라니!"
대학원생이자 영어학원 원장으로 보내는 하루하루는 여전히 분주하다.
예전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빠르게 외우고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맥락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논문을 읽을 때도 정답을 찾기보다 여러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을 오래 고민하게 된다.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대신 오랜 경험들이 더 넓은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기 기억력은 흐려졌지만, 경험적 통찰력이라는 고급 와인은 지금 가장 깊은 향을 낸다.
하지만 전성기 뇌 곁에는 갱년기 감정의 폭죽이 함께한다.
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라 하지만, 호르몬은 뜻밖의 타이밍에 눈물과 분노를 터뜨린다.
지휘자는 완벽한 연주를 원하지만, 감정의 현악 파트는 자꾸 삐걱댄다.
나는 미성숙한 전성기 뇌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혼돈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께 건너는 성장통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커피 한 잔을 손에 든다.
“지혜로운 뇌에게 잠시 휴전을 선포하는 중이다.”
이 향기로운 커피처럼, 갱년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깊은 챕터를 읽고 있는 중이다.
내 뇌는 지금 전성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