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내 MBTI는 ‘I’로 시작한다.
이 한 글자가 내 성격을 꽤 정확하게 요약한다.
조용하고, 낯가림 심하고, 사람 많은 자리에선 배터리가 눈에 띄게 닳는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나는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야 하는 영어 학원 원장이다.
세상은 가끔 성향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를 던져놓는다.
학원 문을 열면 웃음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 뒤에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줄을 서 있다.
“숙제가 너무 많아요.”
“에어컨이 너무 추워요.”
“이 학생 통제가 안 됩니다.”
“교재비 결제가 늦어요.”
이 모든 소식이 결국 내 방으로 향한다. 마치 ‘컴플레인 택배’의 종착지처럼.
문제는, 나는 그 택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컴플레인 처리란 내향형 인간에게 마라톤과 같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숨이 차오른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듣고, 끄덕이고, 또 듣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남의 말을, 그것도 감정이 실린 말을 잘 들어준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신기하다.
어떤 분은 내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셨군요” 한마디만 해도 얼굴이 부드러워진다.
그 짧은 반응이, 마음속 막힌 밸브를 열어주는 듯하다.
반면 어떤 분은 눈빛이 반짝이며 말한다.
“그래서 원장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순간 내 머릿속 회로가 살짝 멈춘다.
‘아, 이분은 내게 위로가 아닌 해결을 원하셨구나.’
세월이 흐르며 깨달은 건 하나다.
대부분의 문제는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이미 반쯤 해결된다는 사실.
사람은 말을 하면서 스스로 정리되고, 감정의 먼지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짐한다. 오늘은 조금 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물론 항상 성공하진 못한다.
가끔 내 안의 ‘I’가 방어막을 치며 외친다.
“그만! 오늘은 인간 모드 종료!”
그럴 때면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고, 다음 날 아침 샤워하며 후회한다.
“어제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괜찮다.
듣는다는 건 완벽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진심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따뜻하게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학부모님께는 신뢰를, 학생들에게는 이해를, 선생님들에게는 든든함을 주는 그런 사람.
어쩌면 내향형인 나에게 이 일은 매일의 연습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을 헤 아르고, 다시 내 마음을 다잡는 연습.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문을 열며, 속으로 다짐한다.
“자, 오늘은 조금 더 따뜻한 ‘I형 해결사’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