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는 푸른 세상
거창한 등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원 산책로나 동네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바람에 살랑거리는 잎사귀 소리, 흙냄새에 섞여 오는 풀내음까지…
예전엔 이런 게 뭐가 좋다고 다들 난리였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 순간들이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20대, 30대 때의 나는 산도, 자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굳이 땀 흘리며 올라야 하나 싶었고,
주말이면 카페에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도심의 불빛을 구경하는 게 훨씬 좋았다.
그땐 산보다 네온사인이, 나무보다 사람의 얼굴이 더 반짝여 보였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숲길이 눈부시게 예쁘다.
초록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일렁인다.
나무 한 그루, 풀잎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고,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면 괜히 미소가 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왜 이렇게 자연이 좋아졌을까?’
아마도 내 안의 초록이 조금씩 옅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대, 30대 때는 내가 푸르렀다.
내 안이 이미 싱그럽고 생기로 가득했으니까,
세상의 초록이 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이제 내 안의 푸름이 서서히 사라지는 시기가 되니,
세상의 푸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건지, 이제야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희는 지금 푸르니까, 그 푸름을 마음껏 누려라.
그게 얼마나 눈부신 건지, 지금은 모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 안의 초록이 사라졌다고 해도 괜찮아.
세상은 여전히 푸르니까. 나는 그걸 바라보며 감사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오늘도 나는 천천히 걷는다.
내 안의 초록이 머물던 자리에, 이제는 세상의 초록이 찾아와 앉는다.
그 푸름이 나를 위로하고,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여전히 아름답잖아.”